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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과문.png

이태영 목사(하늘소리 문화원장)

 

벽은 참 소중합니다. 내 집을 외부 침입으로부터 안전하게 지켜 주니까요. 너와 나의 경계

가 설정되니 자유로이 움직일 공간도 만들어집니다. 그렇다고 답답할 일은 없습니다.

벽에 낸 문으로 언제든 왕래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마음의 벽을 쌓으면 문제는 달라집니다. 서로 소통할 마음이 없고 얼굴도 마주치기

싫어, 벽을 더 높게 치게 되지요.

십여 년 전, 우리 집은 이웃집과 담장 없는 경계를 두고 심하게 다투었습니다. 지적도를 들

고 측량까지 해 가며 “경계선은 여기다.” “아니다. 저기가 맞다.” 갈등의 골이 깊어졌습니다.

그러다 이웃이 2층 집을 지으면서 벽을 높이 올렸습니다. 이젠 이웃 아닌 이웃이 되겠다는

 겁니다. 그 모습에 저도 벽을 쌓았습니다.

몇 해가 흘렀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어느샌가 벽에 금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급기야 우리

쪽으로 기울어지더니 자칫하면 사고를 당하기 딱 좋게 되었습니다. 가뜩이나 기분 나쁜

판에 잘 됐다 싶어 2차 전쟁이라도 벌일 마음이었습니다.

이젠 내 머리도 컸으니, 그리 호락호락 당하지 않겠노라 다짐도 했지요.

그러던 어느 날, 담장이 헐리고 있었습니다. 이웃집 아저씨 손에 의해서 무너진 벽은 우리 집

마당으로 쏟아져 내렸습니다. '아니, 우리 집 마당으로 무너뜨리면 어떻게 해!' 아버지에게

이참에 한판 붙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따지려 하자, 아버지는 “괜찮아. 그냥 둬.”라며 말리셨

습니다.

얼마 뒤 벽이 말끔히 사라지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분명 눈에 보이는 벽만 사라졌을

뿐인데, 내 마음의 벽도 녹아내리고 있었습니다. 이웃집 마당도, 그 집 강아지도 담장 안

풍경처럼 포근했습니다. 어쩌면 아버지의 마음은 벽에 금이 가면서부터 달라졌는지도 모릅

니다. 이웃집 아저씨의 마음도…….

몇 달 전, 제주도에 사는 오지연 시인으로부터 천양희 시인의 시집을 선물 받았습니다.

시에 폭 빠져 책장을 넘기는데, 옛날 이웃집 일을 떠올리게 하는 시를 만났습니다.

'벽과 문'이라는 시입니다.

사방을 벽으로 둘러도 하늘을 올려다보면 그처럼 큰 문은 없겠지만, 가로막은 벽에 문을 내는

것은 하늘보다 더 큰 마음의 문을 내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그것을 최고의 일이라

했나 봅니다.

 

벽과 문

이 세상에 옛 벽은 없지요

열리면 문이고 닫히면 벽이 되는

오늘이 있을 뿐 이지요

새로울 것도 없는 이 사실이

사실은 문제지요

닫아걸고 살기는 열어놓고 살기보다

한결 더 강력한 벽이기 때문 이지요

벽만이 벽이 아니라

때론 결벽도 벽이 되고

절벽 또한 벽 이지요

절망이 철벽같을 때

새벽조차 새 벽이 될 때도 없지 않지요

세상에 벽이 많다고 다

낭비벽이 되는 건 아닐 테지요

벽에다 등을 대고 물끄러미 구름을 보다보면

벽처럼 든든한 빽도 없고

허공처럼 큰 문은 없을 듯 하지요

이 세상 최고의 일은 벽에다 문을 내는 것

 

자, 그럼 열쇠 들어갑니다

벽엔들 문을 못 열까

문엔들 벽이 없을까

 

천양희, 《나는 가끔 우두커니가 된다》, 창비

 

-김익겸 편집장-

 

굿모닝~!!!!!!

우리 집과 뒷집 사이는 담이 없습니다. 우리 집에 처음 오는 사람은 옆집 정원도 우리 집인

줄 알고 ‘집이 상당히 크군요.’합니다. 더군다나 정원 관리를 어찌나 잘 하는지 보기에도

아름답습니다. 부지런한 이웃 때문에 덕을 봅니다.

어쩌다 잔디 깍는 날 서로 만나면 "하이"하면서 웃으며 손을 흔듭니다.

 

대화가 안 통하는 사람을 만날 때 벽을 만난듯하다고 합니다. ‘아’하는데 ‘어’로 알아듣고

사랑한다는 표현인데 미워한다는 말로 알아듣습니다. 문제는 소통이고 이해심입니다.

중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미술반 생활을 시작한 이후 그림과 더불어 살았습니다.

또한 중 3때 배운 바둑에 미쳐서 전문가 못지않은 역사와 이론과 실력을 가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림과 바둑은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바둑의 경우, 문외한인 사람들을 가르치다 보면 말귀를 잘 못 알아듣습니다.

기껏 가르쳐 놓고 보면 까맣게 잊어버립니다. 바둑은 이론보다 실전입니다.

많은 실전 경험을 통하여 이런 경우, 저런 경우를 당해봐야 합니다.

일주일에 한 번 강의시간만 와서 듣고 간다면 머리는 커지지만 진보는 없습니다.

미술반의 경우는 초급반, 중급반이 있는데 중급반은 벌써 2학기 이상 배운 분들도 많고

집에서도 열심히 그려 갖고 와서 지도를 받습니다. .

연필과 붓이 손에 익으려면 시간 투자를 해야 합니다.

제 경우는 전시회가 잡혀 있을 때 시간에 쫒겨서 하루에 10시간 이상씩 투자하니 실력이

늘었습니다. 내가 힘을 쏟아도 안 되었던 난관을 헤쳐 나온 경험이 있으니 벽에 부딪친 

사람을 지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벽을 만났을 때 벽을 바라보면 처음엔 벽만 보이지만 한참을 바라보면 거기에 길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나무도 보이고 새가 나는 것도 보일 것입니다.

설혹 사방이 다 벽이라도 하늘은 항상 열려 있습니다.

 

 

* 교회협의회 40주년 기념 미술전이 6월3일(화)에 오픈합니다. 저와 제게 배운 세 분도 함께 출품합니다.

  9일(월)까지 계속 되므로 기간 중에 오셔서 감상해 주시기 바랍니다.

  시간: 월~토 오전 9~오후 5시, 주일 오후 1시~5시

  6월 3일(화)은 오프닝이어서 오후7시에 리셉션이 있습니다. 이날 오시면 출품 작가 모두를 볼 수 있으나

  평일은 약속하지 않으면 만나기 어려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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