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픈 이가 빵을 요구하는 것은 인간의 정당한 기본 권리이다.
그러기에 성프랜시스는
"가난한 이가 빵을 달라고 하는 것은 자기 것을 달라고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누군가 하나님께서 먹고 살도록 한 것인데 먹을 것을 요구하는 것은 정당한 권리라는
말이다.
우리 동양에도 옛날부터 내려오는 말 가운데 천불생무록지인 이라는 말이
있다. 하나님께서 녹 없는 사람을 만들지 않으셨다고
하는 뜻이다. 그 비슷한 사상이 여기에 내포된 줄 생각한다.
그러므로 굶주린 이들을 먹이는 것은 사회의 정의이다. 굶주린 사람들에게 먹이기를 거부한다고 하면 그것은 사회 정의를 거부하는 사람들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굶주린 이들을 먹이는 것이 인도이다. 인간으로서 마땅히 할 일이다.
우리는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잘 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불한당을 만났다. 돈을 다 빼앗겼다.
많은 매를 맞고 넘어져 인사불성이 되었다. 그때 마침 어떤 레위 사람이 지나갔다.
그러나 보고만 지나갔다. 그 다음에 제사장이 또한 지나갔다. 그 역시 물끄러미 보고 그냥 지나갔다. 그러다가 유대 사람 아닌 사마리아 사람이 그곳을 지나가게
되었다. 이 외국사람이 그 사람을 불쌍히 여겨서 도와준 이야기를 우리가 잘 알고 있다.
우리 한국에도 여리고로 내려가는 길거리에 굶주려서 쓰러진 동포들이 많이
있다. 그런데 우리 한국 사람 아닌 미국 사람들이
구호품을 가지고 오며 농산물을 보내서 이 굶주리는 사람을 먹여 살리기 위해 애를 쓴다. 바로 이런 때에 한
동포가 된 우리로서 더욱이 레위 사람과 제사장의 지위에 있는 한국의 교회가 이런 광경을 보기만 하고 그저 지나간다고 하면 이것은 인도를 무시하는 것이고, 이웃됨을 무시하는 것이고, 정의를 무시하는 것이다. 굶주리는 이에게 먹이는 것은 인간으로서 마땅히 할 일이다.
그리고 굶주린 동포를 우리가 도와주는 것은 사실 주님을 도와드리는 것이다.
-목사 한경직-
굿모닝~!!!
오래 전에 한경직 목사께서 쓰신 글입니다.
지금의 상황도 그때와 별반 다를 바 없습니다. 중국 국경근처의 북한 도시에 빵 공장, 국수 공장을 세워 어린이들의 허기를 해결해 주는 이들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우리가 봉사를 할 때 순수해야 합니다.
어떤 이득이나 이름 내는 것에 연연 한다면 그것은 이미 봉사가 아닙니다. 봉사는 희생이며 자기 버림입니다. 어떤 형태로든 양식과 함께 보내는 이의 사랑의 마음이 흘러가서
그들의 가슴이
녹아야 합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마음으로 일을 하고 돈을 벌고 나머지 인생을 살아야겠습니다.
오늘은 무슨 명령을 내리실까? 창조주의 말씀에 귀 기울이며 아침을 엽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