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영 목사 / 하늘소리 문화원장>
“나를 행복하게 해 준 가수라……. 셀 수 없죠. 많아요.
한번은 TV 가요 프로그램을 보는데 내가 가르친 가수들로
시작부터 끝 무대까지 다 채워진 것을 보았어요. 그때 참 행복했죠.
아, 가수 휘성은 나를 긴장시키는 가수예요.
어떻게 하면 노래를 더 잘할 수 있는지
끊임없이 방법을 찾고, 질문하거든요.”
보통은 내가 빛나는 자리에 서 있을 때 '성공'이라고 하죠.
하지만 남을 빛나게 세워 주는 인생도 정말 멋지구나, 깨닫게 해 준 사람이 있습니다.
얼마 전 문화 강좌에서 성시경, 휘성, 윤하, 다비치 등 쟁쟁한 가수들을 가르친 보컬 코치, 노영주 씨를 만났습니다.
전북 정읍의 자그마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무작정 상경해 연극을 하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앨범을 낸 적도 있지만, 우리 기억에 없는 것을 보면 그는 실패한 가수였죠.
생활고에 시달리던 그는 우연히 아는 선배로부터 “데뷔 준비 중인 가수를 가르쳐 보라” 라는 제안을 받습니다.
비록 가수 데뷔에는 실패했지만, 노래만큼은 자신 있었거든요.
그는 노래를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알기 위해 이비인후과 의사를 찾아다니며 성대를 연구하고, 보컬 강의 책을 낸 저자를 찾아 미국까지 무작정 날아갔습니다.
결국 그는 열정만큼 승승장구했고, 몇 백 억 규모의 회사를 차렸습니다.
하지만 그는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경험하며 공허했습니다.
갑작스러운 아들의 죽음으로 인생의 아픔도 겪었습니다.
아무리 모아도 채워지지 않기에 그는 거꾸로 나눠 보기로 했습니다.
회사를 경영할 최소 운영비만 남기고, 이윤은 하나도 남기지 않는 엉뚱한 기업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그는 그렇게 타인을 빛내고, 어려운 사람을 도왔습니다.
좋아했던 가수가 되진 못했지만,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았습니다.
사람을 돈 벌어다 줄 '상품'이 아닌 귀한 '사람'으로 대하는 노영주 씨.
갑자기 그에게 노래를 배우고 싶어졌습니다.
- 배성분 기자-
굿모닝~!!!!!
1차로 선택했던 중학교를 떨어지고 2차로 들어갔을 때 사촌형은 물었습니다: "앞으로 무얼 하고 싶으냐" 고.
나는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했습니다. 세 번의 미술시간이 지나고 미술선생님은 한 반에서 소질 있는 세 사람씩 선택해서 미술반으로 오라고 했습니다. 멋도 모르고 미술반에 들어가서는 공부하고는 영영 이별하고 열심히 그림을 그렸습니다.
잘 그리는 친구들이 많아서 쫒아 가느라고 열심히 그렸습니다. 여름방학, 겨울방학에도 미술반에 갔습니다.
세 친구가 서울예고에 시험을 봤는데 한 명만 붙었습니다. 그 친구는 하도 뛰어나서 중학교 때 전국에서 두, 세 번째 되는 상을 받았고 예고에 들어가서도 알아주는 실력이었습니다.
한 친구는 조각에 뛰어나서 석고로 무엇을 만들면 얼마나 정교한지 부러울 지경이었습니다.
그렇게 뛰어난 친구들이 많았지만 지금 이름 있는 화가가 된 사람은 없습니다.
후배 중에 한 명은 소질이 그렇게 뛰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성실함은 타의 주종을 불허했습니다. 공부도 잘했던 그 친구는 예고에 갔습니다. 타고난 성실함으로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대상을 받고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기사가 나온 적도 있습니다. 서울대 미대와 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모 대학에서 예술대학장을 지내고 지금은 정교수로 작품 활동을 열심히 하는 작가가 되었습니다.
재주 있는 사람이 즐기는 사람을 따라가지 못하고 즐기는 사람이 열정을 가지고 하는
사람을 따라가지 못합니다.
중학교 때 ‘한국의 피카소’가 되겠다고 했던 저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다른 직업을 전전하다 늙으막에 문화센타 미술선생이 되었습니다.
유명한 화가가 되지 못하고 선생으로 남았지만 제게 배운 분들은 짧은 시간에 부쩍 실력이 늘어 잘 가르친다고 소문이 났습니다. 화단에 발을 들여놓지는 못했지만 가르치는데 소질이 있나 봅니다.
하고 싶은 꿈이 제대로 이루어 지지 않았다 해도 좌절하지 마십시오.
또 다른 길을 신은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사실 나의 적성인지 모릅니다.
인생이라는 연극은 주인공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주어진 자기 역할에 충실한 것, 그 사람이 곧 승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