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기독교 미술에 대한 오해

by skyvoice posted Jun 30,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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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콤~1.JPG

 

 

<최원근 /문화사역자>

 

년에 졸업한 복음주의 계열의 신학대학원에서 초기 기독교에 대한 설명을 듣게 되었습니다. ‘초기 기독교는 이미지가 없는 순수한 교회라는 것입니다. 이를 뒷받침 해주는 것이 몇 교부들(Origen, Eusebius, and Epiphanius of Salamis)의 견해와 존 칼빈(John Calvin)기독교 강요(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Book I, Chapter XI, 13)이었습니다. 로마제국 콘스탄티누스 (Constantinus I) 황제의 밀라노 칙령에 의해 기독교가 공인된(AD 313) 이후 이미지가 본격적으로 도입되었다는 것입니다. 공인 이전의 이미지들이 있다 하더라도 대체적으로 타락한 인간의 본성에서 비롯되거나 이방 문화와 종교에 타협했다는 지적입니다. 일반 미술계의 미적인 관점에서는 초기 기독교 미술들은 수준이 낮은 일종의 천박한 그림들이라 인식하고 있습니다.

 

1)    초기 기독교는 이미지가 없는 순수한 교회?

 

4세기 초반 기독교 공인이 이뤄지기 전까지의 초대 교회는 핍박과 도피의 와중에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을 지키기 위해 기회, 재산, 생명 등을 빼앗기는 순교자들이 나왔습니다. 신자들은 모든 것을 잃고 무덤가인 카타콤(Catacomb)에서 목숨을 부지하며 신앙을 지켜 나갔습니다. 카타콤에는 신앙을 표현하는 다양한 심벌들을 사용한 흔적들이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익투스 (ΙΧΘΥΣ, 하나님의 아들,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약자)입니다. 그림으로서는 선한 목자에 대한 표현 등이 있습니다. 고통의 와중에 처한 성도들에게 이생에의 삶을 인도하시며 내생에 있는 영생의 기쁨을 예비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목자상이 강조된 것입니다. 신앙에 대한 다양한 표현들 중에 고통의 십자가 상은 시간이 지난 후에 보편화된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초기 기독교는 이미지가 없던 순수한 기독교라기 보다는 이미지를 적절히 활용하여 고통과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 나라와 의를 바라고 천국을 소망하도록 이끌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2)    수준이 낮은 천박한 표현이다?

 

일반적으로 미술사에서 말하는 미적인 차원에서는 초기 기독교 미술의 수준이 낮은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당시의 상황을 살펴보면 모든 것을 버리고 카타콤으로 몰려 든 사람들에게 화려하고 빼어나게 치장한 삶과 표현은 기피의 대상이었습니다. 핍박 중 힘겨운 처지에 있던 초기 크리스챤들에게는 미적 수려함은 오히려 세속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던 것입니다. 당시에 함께한 크리스챤 예술가들은 간결함과 단순함이 그 특징이었습니다.

익투스.png  

 

3)    이방종교와의 혼합이다?

 

초기 기독교 미술에서도 당시의 화가와 장인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면서 카타콤으로 모이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단순화된 표현으로 그들의 신앙을 표현할 때 유대적인 바탕이 아닌 로마 문화적인 방식으로 표현했습니다. 목자는 목자인데 로마식 복장을 입은 로마인들이 인식하던 목자였던 것입니다. 이런 이방문화적인 표현들이 확대 해석되고 와전되어 본래 표현하고자 했던 것보다는 이방종교와의 혼합으로 강조 되어진 것입니다. 그중에 세상종교와 타협한 흔적들이 전혀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 표현들에 대해 정죄하기 전에 우선 이방땅에서 예수를 영접하고 구원된 사람들의 배경을 살펴야 합니다. 그들의 신앙표현을 단순히 이방종교와의 혼합으로만 해석하는 것은 순교를 각오하고 카타콤에 모여든 사람들에 대한 일종의 모욕입니다. 그 중에 이미지 자체가 하나님 자리를 탐하거나 대신하게 된다면 우상 숭배에 빠지게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인들이 주로 속한 개혁주의 신앙노선과 이미지문화가 서로 친숙하지 않은 것은 그 역사적인 배경이 있습니다. 16세기 종교개혁이 진행되고 있을 당시 카톨릭의 이미지와 형상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와 그에 따른 파괴행위들이 발생하고 있었습니다. 성서 지식을 바탕으로 한 지식인들의 개인적인 결단이기 했지만 그 보다는 국가적인 결단에 의해 종교 이미지들을 파괴하며 카톨릭과 차별을 두고자 한 것입니다. 신학적이기도 하지만 이미지 파괴와 병행되는 종교개혁은 다소 정치적인 결정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교회 안에서 그림이나 회화 같은 이미지 자체가 우상이다라는 등식이 성립하던 시기였습니다. 이런 역사적 배경에서 개혁교회의 시각문화에 대한 관점이 발전을 하게 된 점을 고려하여 오늘날의 예술문화를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초기 기독교 미술은 이미지가 없는 순수한 교회라기 보다는 이미지를 적절히 활용하여 신앙을 표현하고 전달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단순미와 간결미를 강조하고 화려함을 피하다 보니 미적으로 낮은 수준이었지만 조악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기독교로 개종한 이방인 크리스챤들에 의한 표현들이 있었지만 모든 이미지가 이방종교와의 타협은 아니었습니다.

 

*익트수 (ΙΧΘΥΣ)는 그리이스어(Greek)로 원래 물고기라는 뜻으로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비밀리에 통용되던 두 개의 선으로 그려진 물고기 그림 은어입니다. ΙΧΘΥΣ Ιησους Χριστος Θεου Υιος Σωτηρ의 약자로 그 뜻은 하나님의 아들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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