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노예의 아들로 태어난 부커 워싱톤. 흑인이 멸시받던 시대에 태어난 그는 대학에 가서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그의 고향 말덴에서는
흑인을 받아주는 대학이 없었다.
그가 열 다섯 살이 되던 해, 웨스트버지니아의 햄프턴에 흑인을 위한 무료 학교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고향을 떠나 750킬로미터를
걸어서 멀고먼 햄프턴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렇게 도착한 학교에서는 추천장이 없어 그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그가 사정을 말하며 매달리자, 한 선생이 교장을 데려오겠다며
빈 교실에 그를 남겨두었다.
그는 교실이 더러운 것을 보고 바로 교실 청소를 시작했다. 이 모습을 지켜본 교장과 학교 선생들은 그의 성실한 모습에 감탄하며 그를 학교에 입학시키기로 결정한다. 그가 바로 미국 흑인의 아버지이자, 흑인 교육에 평생을 바쳤던 부커 워싱톤이다.
-좋은 글 중에서-
굿모닝~!!!!
2주 째 몸이 개운치 않아 방콕 중입니다.
염려해 주는 메일도 오고 어느 분은 꿀에 잰 도라지를 갖다 줘서 대추차에 타서 먹고 있는데 속이 편안해 지고 있습니다.
사람 마음이 간사한게 세상은 그대로인데 몸이 션찮으니까 왜 서러움이
밀려 오는지요?
부커 워싱톤(1856~1915)은 담배 농장의 노예로 태어나 알라바마의 터스키기 대학교의 총장을 지냈습니다.
그가 총장으로 취임 후 그 지역의 부자 동네를 산책했습니다. 그 때 백인 부인이 그가 워싱톤 박사인줄 모르고 그냥 지나가는 흑인이려니 해서 멈춰 세우고 몇 달러를 줄테니 장작을 패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총장은 그때 특별한 일이 없었고 시간의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웃으며
소매를 걷어붙이고 장작을 패서 벽난로 옆에 차곡차곡 쌓아두었습니다. 일이 다 끝나 그가 돌아간 후 그집 흑인 하녀가 그를 알아보고 주인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그
부인은 너무 부끄럽고 당황해서 다음 날 아침에 총장실로 찾아가 백배 사죄 했습니다.
그러자 부커 워싱톤 총장은,
"부인, 괜찮습니다. 저는 가끔 가벼운
육체 운동을 좋아합니다. 그뿐입니까? 이웃을 위해 돕는 일은 언제나
기쁜 일이지요." 하며 위로를 했다고 합니다.
(네이버 블러그 검색)
오늘은 부커 워싱톤 박사처럼 성실과 겸손으로 살아 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