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기독 미술사 3 : 이미지 분쟁의 시작

by skyvoice posted Jul 20,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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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근 목사 / 문화사역자>

초대교회 이후로 제1차 니케아 종교회의 (First Council of Nicaea, 325) 부터 6차 콘스탄티노플 종교회의 (Third Council of Constantinople, 680)까지 기독교내에서 이미지에 대한 논쟁이 있긴 했지만 종교회의 차원에서 다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미지 분쟁이 본격화 된 8세기에 7차 니케아 종교회의 (Second Council of Nicaea ,787)에서 심도 있게 다루어 집니다. 오랜 기간 동안 종교회의에서 다루어지지 않은 이유는 이미지가 초대교회에 큰 위협이 되지 않았다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분쟁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초대 교회에서 이미지를 반대하던 이유들을 본다면:

첫째, 이분법적인 사고에서 비롯되었던 것입니다.
초기 이단들 (Gnostics, the Marcionites, and the Manichees)의 특성을 보면 영적인 세계를 귀중히 여기고 육신에 속한 물질계는 천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피조물이나 육신을 가진 인간, 그리고 인간이 만들어낸 이미지는 육에 속한 것으로 그 가치를 평가절하 하였던 것입니다. 이런 이분법적인 사고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적 존재를 강조하고 인간의 육신으로 오신 것은 부인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영적이고 육체적인 임재를 믿는 신앙은 삼위일체에 근거하며, 당시 이분법적 이단들과 대조적이었습니다. 삼위 하나님 중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통하여 자연계와 물질계를 악하게만 보는 시각에 문제를 제기하여 줍니다. 하나님의 창조물들은 성부 하나님의 보시기에도 (심히) 좋은 것들이었습니다. 

둘째, 성경의 다른 해석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신명기 20:4-6, 요한복음 4:24, 로마서 1:23-25 등을 근거로 하여 어떠한 형상을 만들지 말고 여호와 하나님 한 분만을 섬길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미지와 형상에 대한 생각 자체가 사탄에 의해 소개되고 성도들을 정도에서 벗어나게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성서와 십자가 등 몇 가지에는 예외를 두었습니다.

성서의 해석차이 이겠지만 형상을 만들지 않는 것이 목적이기 보다는 여호와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참 신이 아닌 다른 것들, 인간이 만든 신들에게 현혹되거나 섬기거나, 그 신들의 형상을 만들어 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들은 하나님 외에 우상숭배에 빠지지 않도록 금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재능으로 예술 창작 자체를 금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셋째, 각기 다른 초대 교부들의 지원이 있었습니다.
오리진, 유세비우스, 에피파니우스 (Eusebius, and Epiphanius of Salamis)는 이미지를 만들거나 사용하는 것을 금지되었다고 믿었습니다. 자료가 분실되기는 하였지만 Florilegia는 이런 교부들의 가르침을 모은 자료였습니다.

초대 교부들 중에는 아타나시우스, 바실, 존 크리소스톰 (Athanasius, Basil and John Chrysostom) 등은 성육신의 견해와 성서해석 등에서 이미지를 사용하는 것에 동조하였습니다.

위의 상이한 견해들은 교회내의 이미지 분쟁을 불씨로 자라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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