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언 변호사>
'물수변에 갈거자'이 암호 같은
‘물수변에 갈거자’는 제가 한국에서 법대 1학년 법학원론 첫시간에 교수님이 칠판에 처음으로 적은 말입니다.
한자에 익숙하신 분들은 금방 눈치채셨겠지만 한자로 ‘법(法)’은 물수변에 갈거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法은 글자 그대로
물이 흐르는 것입니다. 물은 네모진 곳에서는 네모지고
세모진 곳에서는 세모집니다. 법은 마치 물과 같이 , 억지로 길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순리를 따르도록 하는 것이라는 것, 법이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사람이 법을 위해 있지
않다는 교수님의 강의가 아직도 귓가에 남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구약성경 아모스서 5장에는 유명한 “오직 공법을 물같이, 공의를 하수같이 흘릴지로다”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한자문화권이 아닌 이스라엘에서 쓰여져 서양문화의 근원이 된 성경에 동양과 똑같은 법의 개념이
나오고 있으니 놀랍다면 놀라운 것입니다. 인간사이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고안된 법학은 서양에서 신학과 함께
가장 역사가 오래된 학문중 하나입니다.
저는 한국과
미국 두나라에서 법학을 공부한 탓에 두나라의 법학에 무슨 차이가 있느냐는 질문을 가끔 받습니다. 사실 법학이 분쟁이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도구라는
점은 한국과 미국에 다를 것이 없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 방법론에 큰 차이가 있는데, 요약하자면 한국은 이론법학이요, 미국은 실용법학이라는 점입니다.
한국은 법을
크게 공법과 사법으로 나누고 사법은 재산법과 가족법으로 나눕니다. 재산법의 대표인 민법도 채권법이니 물권법이니 나눈뒤, 어떠한 사회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대원칙을
찾아 이를 개념화합니다. 그러다보니 실제 쓰이는 말과는 크게 다른 개념법학의 길을 걸어갑니다.
공법의 대표인 형법에서도 범죄라고 미리 정해진 것을 어겨야만 형벌을 가한다는 이른바 ‘죄형법정주의’를 관철하기 위해, 범죄가 되기 위한 요건을
개념적으로 일일히 나누어 ‘행위’를 분석하고 ‘고의’를 정의합니다. 이 모든 이론에는 늘 통설이 있고
그에 반대하는 소수설이 있습니다. 그리하여 한국의 법대생은 ‘하자담보책임’이니 ‘미필적고의’니 하는 이론의 성곽에 갇혀 학창시절
4년을 보냅니다.
이에 반해 미국의
로스쿨에서는 심지어 공법과 사법에 대한 개념조차도 정확히 분리하여 가르치지 않습니다.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내용으로 계약문구를 작성해야 향후분쟁에서 유리한가, 그리고
어떻게 변론해야 소송에서 유리한가? 입니다. 그리하여 로스쿨 3년동안을
체계적인 이론의 암기없이 끝없이 많은 판례들을 읽어가며 변론능력을 키워가는 것으로 채웁니다. 법률을 개정하는데
있어서도 체계가 중요한 한국식 법문화에서는 법률전체의 틀을 유지하기 위해 수정이 쉽지 않지만, 실용적인 미국인들은
이전의 내용이 현실에 맞지 않으면 새로운 법률을 만들어 자동적으로 이전법률을 폐지하는 식입니다. 한국이 따르고
있는 대륙법에서는 미국의 체계적이지 않은 법학을 수준이 낮다고 폄하하고, 미국을 위시한 영미법에서는 문제해결로
바로 들어가지 않는 대륙법을 고루하다고 비판합니다.
두 법학중 어느쪽이
나은지를 얘기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실제 두 법학은 점차
가운데로 수렴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미국도 판례의 누적이 아닌 점차 대륙법 스타일로 법전을 만드는 경향을
보입니다. 형법도 각주마다 달라 혼란이 많으므로 모범(model)형
법전이라는 것을 만들어 가능한 공통으로 채택하려고 노력중입니다. 미국법 중에서 가장 대륙법과 비슷한 분야
중 하나가 이민법입니다. 미국에서 연방법이 적용되는 분야는 대체로 법률규정이 잘 되어 있습니다.
파산법과 함께 대표적인 연방법인 이민법은 그래서 우선 관련법률을 정확히 이해하고 이를 선례들과 함께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법학도 이렇게
수렴을 하는데 세상 모든 일이 ‘물수변에 갈거자’라는 법의 기본정신에 맞게 순리대로 흘러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성경대로 죄의
결과인지는 몰라도 이미 뒤틀어져 무엇이 옳은지도 알기 어려운 채 돌아가는 세상살이 속에, 선량들조차 개선을
체념한채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으로 도피하는 세태가 아쉽습니다. 제가 아직도 순진한 탓일까요.
김영언 변호사 (법무법인 미래) 847-297-0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