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영 목사(문화원장)
숙소에서 만나 친해진 첸 부부와 저녁을 함께 먹은 후 바닷가를 거닐었다.
“한국에 출장 갔을 때 업무를 마치고 당일치기로 속초에 놀러 갔어요. 설악산과 바다를 보고 왔는데
그만 차가 막히는 바람에 밤늦게 서울에 도착해서 숙소를 못 잡았어요. 그때 우연히 만난 어떤 대학
생이 가던 길을 멈추고 같이 다니며 도와주었는데 어찌나 고마웠는지 몰라요. 정말 감동받았어요.
그래서 당신이 한국 사람인 걸 알았을 때 잘해 주고 싶고 정이 갔어요.”
그랬구나. 어떤 착한 사람이 베푼 것을 내가 돌려받는구나.
그런데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딜 가든 타이완 사람을 보면 반갑고 정이 갔다. 내가 과거에
받았던 수많은 타이완 사람들의 정 덕분이었다.
정은 그렇게 돌고 돈다.
“언제 한국에 오면 연락하세요. 제가 안내해 드릴게요.”
난 언제부턴가 '나 홀로 여행'을 즐겼다. 경험이 많아지고 가이드북이 풍성해지자 사실 현지인들의
도움이 별로 필요 없어졌다.
그건 여행이 매끄러워지는 것을 의미하면서 동시에 쓸쓸한 것을 의미했다. 다만 상업적 교환 행위만
풍성했다. 그래서 나는 여행 스타일을 점점 바꿔 갔다.
알아도 자꾸 묻고 또 일부러 초보처럼 모른 척 어수룩하게 여행했다. 자연스럽게 현지인들과의 접촉이
많아지면서 내 여행은 점점 예전 같은 활기를 찾게 됐다.
여행한 여러 나라 가운데 나와 가장 접속과 소통이 잘되는 곳이 타이완이었다. 타이완은 우리와 경제·
사회·문화 수준이 비슷하고, 한자 문화권이며, 또 관광객이 많지 않고 한국인에게 호의적이다 보니
조금만 마음을 열면 정을 나눌 수 있었다.
여행 떠나기 전 우울하고 힘들었던 나는 이들의 작은 친절 속에서 점점 본래의 모습을 되찾고 있었다.
-이지상, ‘나는 지금부터 행복해질 것이다’ 중에서-
굿모닝~!!!!!
여행은 참으로 많은 것을 깨닫게 합니다.
신혼여행 때도 비행기를 타지 못한 저는 뒤늦은 대학 졸업여행 때 제주도행 비행기를 탔습니다.
그때가 31살 이었습니다. 그리고 7년 후 인 1990년에 홍콩, 마카오, 태국, 스위스, 오스트리아, 이태리,
이집트, 이스라엘까지 이른바 세계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서야 세계가 크구나 하고 깨달았고 시야의 폭이 넓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좁은 땅에 많은 사람들이 운집해서 살기에 고층 아파트가 즐비한 홍콩을 보고 놀랐고 땅 덩어리에 비해
복잡한 유럽에서 2인승 승용차가 많은 것을 보고 적응력에 감탄했습니다. 태국에서는 열대의 과일을
처음 맛보고 달콤한 맛에 반했고 남북으로 긴 나라이기에 남쪽 사람은 가무잡잡하지만 북쪽 사람들은
희고 미인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이 60이 되어서는 그동안 꿈꿔 왔던 미국 횡단을 혼자서 차를 몰고 이루었는데 주별로 독특한 다른
풍경을 보면서 축복 받은 나라라는 것을 피부로 알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여행은 생각이 깊어지고 깨닫는 것이 많아집니다.
어렸을 때 많이 듣던 노래 가운데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 늙어지면 못 노나니...” 라는 노래가 있었습니다.
그때는 ‘일은 안 하고 놀기만 하면 어쩌누’ 했는데 목표했던 일을 마친 다음에는 쉴 줄도 아는 인식이 있어야
합니다.
마음에 기가 막힌 것을 품었다 해도 행동에 옮기지 못하는 것은 아무 것도 안 한 것과 결과가 동일합니다.
지금 마음에 품은 것, 이제부터 실행에 옮기실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