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명량=The Admiral”을 관람하고 / 김명렬

by 관리자 posted Sep 08,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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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렬 / 문필가>

 

요즘 한국에서는 영화 명랑대첩을 주제로 한 이순신 장군의 을들목 해전을 소재로 엮은 명량 사람들의 최고 관심사로 부각되어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다고 한다. 한국 영화 최초로 1700만명에 육박하는 관객을 넘어서며 한국 영화의 새로운역사를 쓰고 있는 이순신 장군의 해전(海戰)을 다룬 영화 명량 얼마 전에는 미국 본토에도 상륙하여 흥행 속에 몇몇 도시에서 인기리에 상영되고 있다. 일부 도시에서는 상영 날짜를 연장하면서까지 롱런의 흥행 기록을 세우고 있는데, 시카고나 뉴욕, L..A, 등의 대도시에서만 상영되고 있던 명량 다행스럽게도 이곳로리다의파와 마이애미 지역에서도 상영되고 있어 근교에 살고 있는 많은 한인들과 관심있는 외국인들이 영화관을 찾아 한국의 역사관을 새롭게 인식하고 자부심을

키우며 한민족의 정체성을 일깨워주는 민족의 역사 영화에 많은 시선이 쏠리고있다

지난5, 나도 이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서둘러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파시에 있는 AMC영화관을 찾게 되었다. 95일부터 시작되는 개봉 상영 시간에 맞춰 나는 첫번 째로 상영되는 낮 시간 1230분에 맞춰서 10여분전에 도착하여 기다리다가 2시간8분동안 상영되는 명량 재미있고 흥미롭게 관람했다

1597 임진왜란6, 오랜 전쟁으로 인해 혼란이 극에 달한 조선, 무서운 속도로 한양을 향해 북상하는 왜군에 의해 국가 존망이 위기에 처하자 누명을 쓰고 파면 당했던 이순신장군 (배우 최민식 ) 삼도 수군통제사로 재임명 된다. 하지만 그에게 남은 건 전의를 상실한 병사와 두려움에 가득찬 백성, 그리고 12척의 배 뿐, 마지막 희망이었던 거북선 마저 불타고, 잔혹한 성격과 뛰어난 지략을 지닌 용병 구루지마 (배우 류승룡 ) 왜군 수장으로 나서 이순신 장군과 울들목 해전을 펼친다.

"조선은 내가 먹을 것이다"라는 말로 압도적 카리스마를 보여주는 구루지마와 불가능한 전쟁에 대한 두려움에 휩싸인 조선 수군(水軍) 모습에도 불구하고 이순신 장군은 "아직도 신에게는 12척의배가 남아 있사옵니다"라는 말과 함께 "만일 그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 있다면 말이다" 실현되어 330척의 왜군들의 배를 격침 및 퇴격시키는, 세계의 해전 전사(戰史)에도 길이 남을 역사를 바꾼 위대한 명량대첩을 그려낸 훌륭한 영화이다.

울들목(명량해협) 수심이 얕아서 배가 항해할 수 있는 범위는 좁고 그 중에서도 밀물 때 넓은 남해의 바닷물이 좁은 울들목으로 한꺼번에 밀려와서 서해로 빠져 나가면서 해안의 양쪽 바닷가와 급경사를 이뤄 물이 쏟아지듯 빠른 조류가 흐른다. 울들목 물살의 또 다른 특징은 수십 개의 크고 작은 암초가 솟아 있다는 점이다. 급조류로 흐르던 물살이 암초에 부딪쳐 방향을 잡지 못하고 소용돌이 치게 되는 것이다. 조선 수군은 이 울들목에서 결전을 벌일 계획이었으나 작전을 노출시키지 않기 위해서 5Km 떨어진 벽파진에서 진을 치고 15일간이나 왜군의 수군을 유인하여 신경전을 벌였다. 그러나 일본 수군 역시 그런 급류에는 이미 어느 정도 적응되어 있었고 오히려 그런 급류를 타고 숫자가 적은 조선 수군을 단숨에 제압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일본 수군의 탄생지라 할 수 있는 일본의 시코쿠의 미야쿠보 지역은 울들목과 마찬가지로 엄청난 조류가 흐르며 물의 속도 또한 울들목에 못지 않다고 한다. 구루시마 수군은 원래 해적 출신으로 이 지역을 근거로 했던 바 빠른 물살에 익숙한 이들은 명량 해전에서 무리 없이 전개할 수 있으리라 자신했다. 이순신 장군은 일본군이 조선군을 가볍게 보고 있다는 점을 이용하여 그들을 유인하고자 했다. 음력97 조선 수군은 벽파진 근처에서 일본 수군의 소함대를 격파했다. 조선수군이 12척뿐임을 알고 해상의적 이순신과 조선 수군을 완전히 제거하기로 결심했다. 벽파진으로 우수영을 옮긴 이튿날인 음력916일 오전 일본 수군330여척이 순조(順潮)를 타고 울들목으로 접근했다. 일본 지휘부는 대형 군선인 아타케부네가 협수로를 통과하기가 어렵다고 보고 중형 군선인 관선 (세키부네) 133척으로 진영을 짜고 협수로를 통과, 조선 수군을 향해 진격했다. 이때 조류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고 있었다. 일본 수군의 진격 방향이 조류의 흐름과 일치하는 순방향이었다. 조선 수군12척의 전선(戰船) 해협으로 들어 서서 일본 수군을 맞이했다. 전투가 시작되자 조선 수군 일부가 적의 기세에 밀려 겁을 먹고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이 탑승한 기함은 계속 자리를 고수하며 부하들을 독려했고 초요기를 올려 뒤로 물러나 있던 중군장 첨사 김응함과 거제도 현령 안위를 진격해 오도록 한 뒤 그들을 심하게 다그쳤다. 두 사람의 배가 적진으로 공격하기 시작하자 평산포 대장 정응두와 멀리 대략1Km정도 물러나 있던 전라우수사 김억추도 돌격에 가세했다. 특히 안위의 군선으로 일본 수군의 공격이 집중되었다.

격전의 와중에 대포와 화살에 맞아 일본군들 일부가 바다에 빠졌는데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이순신 기함에 타고있던 항왜 준사(俊沙) "저기 그림 무늬 붉은 비단옷을 입은 자가 구루시마다"라고 알렸다. 그를 향한 조선군의 총공격으로 그는 화살을 여러 대 맞고 쓰러졌다. 끝까지 항쟁하는 구르시마의 목을 베고 몸은 토막을 내어 작살을 내었다. 그리고 (수급) 잘라 내어 높은 견대 위에 매어 달아서 적의 눈에 잘 보이게 했다. 왜군은 전의(戰意)를 상실했고 그로 인해 아군의 사기는 충천했다. 일본군에게 또 하나의 악재로 오후가 되자 점차 조류의 방향이 바뀌기 시작하였다. 이번에는 조류의 방향이 조선 수군에게는 순조가 되고 일본군에게는 역조(譯潮)가 되어서 일본 수군에게는 대단히 불리한 상황이 조성되었다. 역류가 흐르는 상황에서 군선이 첨저선이었던 일본 수군은 배가 선회하려면 많은 공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좁은 해협에 많은 수의 전선을 끌고 왔던 일본 수군에게 급한 역류가 흐르는 상황에서 배를 운신하며 전열을 정비하는 것은 매우 어려웠다. 이에 조선 수군은 포격전과 충파 (배를 부딪쳐서 부수는 것) 거듭했고 일본 수군은 조류의 역조와 조선 수군의 포격전과 충파로 인해 반격할 수 없었으며 또한 군선이 많은 것이 오히려 독이 되어서 저희들끼리 서로 부딪쳐서 배가 파손되고 물에 빠져 죽기까

지 했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군감 모리 다카마사는 바다에 빠졌다가 구조되었고 전투의 총사령관 도도 다카토라가 부상을 당했다. 결국 333척의 대함대를 12척으로 추격하는 형세가 되었고 일본 수군은 유시(酉時=오후5~7) 무렵 물살이 느려지고 바람이 일본 수군 쪽으로 부는 것을 이용하여 퇴각하고 말았다.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조선 수군의 승리 요인은 울들목의 지형과 시간에 따른 조류의 변화를

용한 이순신 장군의 뛰어난 전술과 잘 훈련된 병사들이었다. 또한 파옥선을 앞세우고 그 뒤에는 백성들이 피난하고자 타던 배를 열지어 늘어 놓아 더 많은 배가 있는 것처럼 위장전술을 편 것이 주효했다. 실제 전투에 참여한 일본 수군의 전선 130여척중 30여척이 격침되었고 왜군의 중형 군선에는 60명씩 타고 있었으므로 최소 1800여명이 죽었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반면 조선 수군의 전선은 한 척도

침되지 않았다. 다만 순천 감목관 김탁과 이순신 장군의 종 계생이 전사하였고 안위의 전함에 타고 있던 격군7~8명이 물에 빠져 죽은 것과 조총에 맞아 죽은 것을 합산하여 추산할 때 1백 명 안팎의 전사자가 있었을 것으로 예상한다. 이 명량 해전은 나중에 조선이 정유재란을 승리로 이끄는 결정적 전투가 되었다

이제 끝으로 덧붙일 말로 영화의 내용 중 일부가 사실이 아닌 허구가 섞인 장면이 있는데 이것은 관객들의 흥미와 재미와 관심을 끌고 흥행을 목적으로 한 상업성의 영화로 제작되었기에 충분히 이해하고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양념이라 할 수 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마지막 장면에 거북선의 포화로 일본 수군의 함장의 놀란 얼굴과 전선이 박살나는 장면을 섬광과 함께 끝을 맺었는데, 이순신 장군의 장렬한 전사 장면이 가미되었다면,"나의 죽음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 끝까지 사후(死後) 전쟁에 대하여 승리로 이끌기 위한 장군의 구국적인 충정심과 전략적 지혜를 좀 더 돋보이게 했으며 모든 사람들에게 사실(史實) 역사관의 인식을 가슴과 머리 속에 영원토록 심어 놓았을 것이다.

아무튼 어렵고 힘든 역경 속에서도 오로지 나라와 백성을 위한 헌신과 인내와 희생 정신은 우리 나라 모든 국민들이 본받아야 할 고귀한 민족의 얼이 담긴 살신성인의 영웅적인 행동이였으며 후세들에게도 애국과 구국의 표본이 되는 거울과 잣대이다

특히 최근 일본의 아베 정권이 들어선 이후 더욱 더 우경화 되어가는 극우분자들의 경거망동에 대해서도 우리가 단호하고 결연히 맞서 싸워서 이길 필수적 정신무장의 지침이 되는 교육과 교훈이 되는 대한민국의 국민 모두의 교과서이다

나는 이번에 명량(The  Admiral)의 영화를 보고난 후 이 영화를 보기 위해 1천만이넘는 수많은 사람들이 영화관으로 몰리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한마디로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한번 쯤은 봐야하는 좋은 영화이다

참고의 말씀은 이 영화를 관람하신 분이나 혹은 앞으로 계획이 있는 분에게 지금 써올리는 글이 역사인식을 위해서도 도움이 될까해서 그 내용들을 세세히 열거했으니 독자들의 넓으신 해량을 바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