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영 목사 (하늘소리 문화원장)
불우 이웃 돕기 모금 공연 때문에 부산역에 발이 묶인 게 벌써 13년째다. 쓰레기통 속 오물을
주워 먹던 노숙인을 위해 시작한 길거리 배식, 노숙인의 억울한 사연을 듣고 발 벗고 나서서
도운 일……. 참 많은 경험을 했다. 그중 한 토막을 소개할까 한다.
몇 시간째 기다렸다는 말에 지금 대구에 있으니 부산으로 출발할 때 연락하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부산역에 도착하니 밤 아홉시, 사무실 앞에서 한 아가씨가 서성이는 모습이 보였다.
“안녕하세요. 강수경(가명)이에요. 늦어서 가 봐야 해요. 집에 도착하면 전화할게요.”
아가씨는 다짜고짜 편지 봉투를 내밀더니 부산역을 향해 뛰어갔다. 봉투를 뜯어보니 만 원짜리
열 장이 있었다. 영문을 몰라 수경씨에게 전화하니 “저 모르시겠어요?” 하고 물었다. 사연인즉,
수경씨는 8년 전 어머니와 별거 중인 아버지를 만나러 외할머니와 부산에 왔단다. 그러나
아버지의 외면으로 다시 경주로 가야 했다. 차표를 끊고 남은 돈이라곤 역에서 집에 갈 버스비
뿐이었다. 수경씨와 외할머니는 두 끼를 굶은 채 부산역 광장 벤치에 앉아 기차 시간을 기다렸다.
그런데 어둑어둑해지자 몇몇 노숙인이 라면을 끓이더라는 것이다. 길거리 배식 당시 밥이
모자라면 라면을 끓였다. 배를 곯던 손녀와 외할머니의 사정을 들은 사람들은 자신이 먹기에도
부족한 라면을 덜어 줬단다.
그제야 나를 힐끔힐끔 보며 라면을 깨작거리던 꼬맹이가 기억났다. 심부름시켜 사온 삶은달걀
세 개와 우유 두 개, 만 원짜리 지폐를 주며 “훌륭한 사람 되어서 갚아라.” 하고 말했단다.
수경씨는 유학 갈 날이 가까워질수록 끝내지 못한 숙제 때문에 마음이 무거웠단다. 그러다
《예술 밥 먹는 사람들》이란 책에서 기타를 연주하는 내 사진을 본 뒤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을
쥐고 부산으로 왔다고 했다. 나는 봉투에 든 십만 원으로 한 장애노숙인의 주민등록을 살리고
장애인 복지카드를 재발급 받아 생활 보호 대상자가 되도록 도왔다. 덕분에 그는 6년 동안의
거리 생활을 청산했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외할머니는 돌아가시고 부모의 이혼과 재혼으로
많이 힘들었다는 수경씨를 다시 볼 수 있을까?
-이호준 님|실직노숙인조합 위원장-
굿모닝~!!!!!!
은혜를 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요. 작은 것에도 감사한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얼마 전에 교회에서 어떤 분한테 인사를 들었습니다. 교회 식당에 그림을 걸어 줘서 고맙다구요.
그리고 보니 까맣게 잊어버린 일인데 교회를 신축하고 하얀 벽이 너무 썰렁해서 제가 갖고 있던
그림 10점을 교회 식당에 걸었습니다. 제법 규모가 있다 보니 작은 그림으로는 안 되어서 큰 그림
으로 걸었고 분위기를 살리느라고 꽃그림 위주로 걸었던 것입니다.
그림액자 수집이 취미여서 있던 것에서 걸었던 것뿐인데 칭찬을 받으니 “ 아 그렇지..내가 그림을
걸었구나.” 하며 기억이 되살아납니다. 벌써 2년 지난 일이기에 잊어 버리고 살았던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감사할 때 감사를 하지 않는 사람을 보면 정이 다 떨어지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수입에 반을 꼬박꼬박 아내에게 주었습니다. 나머지 반을 가지고 아파트 비를 지출
하고 그 나머지를 용돈으로 썼습니다. 어느 날 언쟁이 벌어지다 “내게 해준 것이 뭐 있어” 하는
아내의 소리에 “수입의 반을 주었잖아” 하니까 “그까짓 얼마?”
하는 소리에 깊은 상처를 입었답니다. 수입이 얼마 되지 않아도 수입의 반을 준 것은 큰 것입니다.
우리는 작은 것에 감사를 잊어버리고 삽니다.
감사의 계절에 감사의 조건을 찾아서 감사를 드려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