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봉주 / 하늘소리 편집장> 지난 주말엔 갑자기 그동안 담을 쌓고 지내던 옛 친구들을 온라인상으로 만나게 되어
오랜만에 가슴이 훈훈했던 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요새 ‘밴드’라는 온라인 그룹이 있어서 옛날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친구들이 다시 만나고 모임을 갖는다는 얘기를 듣고 있었는데, 제게도 그 기회가 온 겁니다. 미국에 온지 벌써 20년이
훌쩍 넘었는데 그동안 저는 너무 무미건조하게 살았었나 봅니다. 제가 여기 왔을 때엔 국제전화 요금도 비싸
가족들에게 전화 걸기도 분초를 따지며 얼른 끊기에 바빴으니, 애들 키우고 사는데 분주하여 친구들과 여유있게
수다를 떨고 앉아 있을 마음이 못되어 친구들을 거의 잃어버린 상태였습니다. 그러던 차에 우연히 한 친구를 시카고에서 만나게 되고 그 친구와 끊어질 듯 말
듯 이어져 가는 우정으로 가끔 마음의 호강을 누리던 차에,
귀국한 그 친구가 옛 친구들이 그리워 밴드로 친구들을 찾고 제게도 연결을 해주었습니다. 거의 40년만에 만난 어렸을 적 친구들, 지금은 얼굴도
몰라보게 세월의 흔적이 지나간 모습들, 그렇지만 자세히 보면 어렸을 적 모습이 가물가물 보여 옛날 생각들이
쏘옥쏘옥 피어났습니다. 수도 없이 나를 놀려대던 “웬수 같던”
장난꾸러기 동근이, 유치원때부터 나름 “남자친구”라고 마음을 주고 받던 성기, 모든 일에 경쟁 상대로 맞섰지만 사실 알고 보니 나의 진짜 친구였던
윤미, 내 뒷자리에 앉아 연필로 콕콕 찌르며 장난치던 원무가 이젠 으젓하게 동창회 회장이 되어 지도력을 발휘하는
어른이 되었고, 초등학교 시절엔 별로 눈에 띄지 않게 조용하던 세은이, 재영이들이 아직도 나를 반겨 주었고, 그밖에 은숙이, 성혜, 건화, 영식이, 활이 등등이 활발하게 밴드에서 움직이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이젠 사회의 중추로서 이일
저일로 자리 잡은 모습들이 보기 좋았습니다. 시간을 내어 밴드를 뒤져 보니, 저를 아껴주시고 사랑해 주시던 존경하는 은사님이 이번
3월에 돌아가신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은숙이 아버지이기도 하신 안재륜 선생님.
친구 아버지라서 친구 집에 놀러가서 뵈면 늘 그러듯이 말씀은 없으셨지만 그 지긋이 웃으시던 모습 속에 “봉주 왔구나” 라는 말씀을 안 들어도 듣는 듯 하였습니다. 초등학교 졸업 하고도 선생님들 찾아 뵙고 인사 드려야지, 학교에도 가끔 들러야지 하면서도,
미루다 미루다 그여 찾아뵙지 못한 분, 그러다 이렇게 돌아가셨단 소식을 뒤늦게 전해
듣고 가슴을 치게 되었습니다. 40년이란 세월, 강산이 네 번 바뀔 긴 시간입니다. 그 시간동안 저는 무에 그렇게 여유가 없고 바빴는지,
친구들, 주위 사람들 돌아보지 않고 메마르게 살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제, 그제 창문을
후두둑 치며 내리던 비에, 바람에, 그래서 한층 더 쌀쌀해진 날씨에
단풍이 더욱 짙어지고 이젠 낙엽이 되어 떨어집니다. 화려했던 젊음을 꽃으로, 푸르름으로 자랑하던 여름의 그 녹음도 시간이 되니 애초에 왔던 원래의 자리, 땅으로 다시 돌아갑니다.
제가 가을의 정취에 젖어 너무 센치에 진 걸까요? 아님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 때문에
향수에 젖은 걸까요? 아무래도 나이 탓 (?)인가 봅니다.
가을, 가을은 가을인가 봅니다. 여기 저기서 음악회다, 북 콘써드다, 전시회다,
문화 행사가 곳곳에서 열리고 있는 이 곳. 이번 주말 또 바쁘게 이곳 저곳을 발
빠지게 쫓아다니며 그래도 제가 하여야 할 일을 해야 했습니다. 가을에 젖어 센치해질 시간도 없이.
“본향을 떠나 유리하는 사람은 보금자리를 떠나 떠도는
새와 같으니라 기름과 향이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하나니 친구의 충성된 권고가 이와 같이 아름다우니라” (잠언
27: 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