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토리묵 / 김명렬

by 관리자 posted Nov 11,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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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묵.jpg

 

 

<김명렬 / 문필가>

 

도토리묵

 

 

<김명렬 / 문필가>

 

우리집 정원 앞에는 커다란 도토리 나무 (졸참나무=Oak Tree)가 있는데 금년에는 도토리가 너무 많이 열려 가을이 되어 땅 위로 떨어지는 바람에 아침 저녁으로 그것을 줍고 잎사귀와 함께 청소를 하느라고 고생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작년에는 도토리가 하나도 열리지 않아서 도토리가 열리지 않았을까고 궁금히 여겼는데 금년에는 너무나 많이 열려서 떨어진 도토리를 처리하느라고 힘이 너무나 든다. 떨어진 도토리는 애써 공들여 가꾼 잔디밭 위에 아무렇게나 떨어져 잔디 사이로 파고 들어가 잔디를 망치고 다음 해가 되면 싹이 돋아나 그것을 뽑아내는데도 애를 먹인다. 특히 도토리를 그대로 두면 잔디 깎는 사람들의 기계를 망가뜨리기가 쉽다.

올해는 도토리가 너무 많이 달려서 그 양이 어림잡아 서너 말은 족히 될 것 같다소쿠리에 담아 쓰레기통에 버리는데, 옛날에는 도토리가 간식이나 주전부리, 또는 나아가서 일용할 양식의 대용품으로 애용됐던 귀하신 몸인데 지금은 이렇게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었으니 격세지감이라고나 할까, 어쨌거나 그대로 버리기가 아까운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나의 어린 시절 나의 고향에서는 이맘때가 되면 많은 집들이 도토리묵을 만들기 위해 절구공이로 도토리를 부수고 찧어서 껍질을 분리하고 물에 담가 쓰고 떫은 맛을 여러 번을 우려내어 도토리묵을 만들어 먹었다. 날에는 도토리가 영양

분이 충분하고 우리 몸에 좋다는 것을 알고 도토리묵을 만들어 먹은 것이 아니라, 기나 긴 겨울밤의 밤참으로, 아니면

기진 배를 채우기 위한 한끼의 식사대용으로 많이 애식 (愛食)되어 왔다.

현대의 지식과 영양학적 측면에서 도토리에 대해 설명을 드린다면, 도토리묵의 효능은 가히 놀라울 정도로 탁월한 효과가 있다. 도토리묵의 칼로리는 100g 40Kcal, 열량이 적 수분함량이80% 여서 적은 양으로도 포만감을 주기 때문에 다이어트에도 도움을 준다고 한다. 그리고 도토리 속에 함유되어 있는 아콘산은 우리 몸 속에 있는 중금속 성분을 배출시켜주는 뛰어난 무공해 식품이고, 피를 맑게 해주며 위와 장을 보호해 주는 작용을 하고, 피로 회복과 숙취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설사에도 도움을 주며 도토리 열매는 하혈과 혈통을 멎게 하고 치질을 다스려 준다. 아울러 입안이 헐고 잇몸에 출혈이 있을 때 치료가 잘 된다고 한다. 화상을 입은 부위에도 도토리 가루를 바르고 나면 통증이 감소되고 상처의 치유가 빨리 된다고 한다. 특히 여성들에게도 도토리묵은 여성의 냉증과 생리통, 축농증을 다스리는 데 효과가 있다. 도토리묵은 성질이 따뜻하고 속이 찬 사람이 먹으면 좋다고 한다

초가을이 되면 마을의 뒷산이나 일반 야산에서 참나무나 갈참나무에서 떨어지는 도토리를 열심히 물어 나르는 다람쥐의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도토리는 다람쥐의 훌륭한 겨울나기 음식이다. 그런데 우리 조상들은 다람쥐의 먹이인 도토리를 주워서 새로운 식품을 만들어 냈다. 도토리를 갈아서 그냥 찌거나 삶아 먹으면 단지 굶주림을 면하려는 구황음식에 지나지 않는다. 조선시대 홍만선은 도토리의 껍질을 제거하고 삶으면 속이 꽉 차고 실해서 배가 고프지 않다고 했다. 굶지 않기 위해 가난한 백성들이 먹는 열매로 묘사해 놓았다. 그런데 이것으로 묵을 만들어 먹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보통 인류가 발명한 건강식품 중에 최고의 식품은 두부라고 하는데, 조선후기의 실학자 이규경은 오주연문장전산고(五州衍文長篆散稿)에서 도토리묵을 도토리로 만든 두부 표현했다. 그는 가을철에 도토리를 따서 껍질을 벗기고 갈아서 체로 거른 후 끓여서 굳히면 두부가 된다고 했다.  

옛날 나의 고향 시골에서는 도토리묵을 가늘게 썰어서 초장에 찍어 먹거나 간장에 무쳐 먹거나 파를 듬뿍 썰어 넣어 무쳐서 반찬 겸 술안주로도 먹었다. 김칫국에 말아 먹으면 그 맛이 참으로 좋았던 것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국수나 율무와 함께 섞어 먹으면 묘한 맛이 더해져서 입 안에서 향기가 그윽하고 시원한 맛이 한결 입맛을 북돋아 주기도 했다. 그외 도토리 가루와 멥쌀가루를 섞어서 거기에 쑥이나 갓 돋아난 느티나무의 잎을 함께 넣어 떡을 만들면 먹기 좋은 시골 농촌의 별미가 되었다. 때문에 나의 어린 시절 고향 마을의 가난하고 먹을 것이 넉넉치 못했던 사람들은 가을에 부지런히 도토리를 주워 모아 십 여 가마니만 준비해 놓으면 5~6식구의 겨울 양식은 충분히 준비된 상태로 그해 겨울은 양식 걱정 없이 느긋하게 등 따습고 배부르게 걱정 없이 보낼 수 있었다

지금은 세상이 변해서 옛날의 배고픔과 굶주림을 면하기 위해 먹던 가난한 서민들의 음식이던 것들이 요즘은 웰빙의 붐을 타고 건강식이나 다이어트 식품으로 둔갑하여 인기리에 부자들의 밥상에 귀하신 몸으로 모셔져 환영을 받고 있다. 춥고 몸이 움츠러드는 기나 긴 겨울밤에 밤참으로 고소하고 알싸하던 배추뿌리나 달콤매콤하고 이빨이 시릴 정도로 시원한 날무를 땅구덩이 속에 저장해둔 무구덩이에서 꺼내 어적 어적 깨물어 먹을 땐 세상의 백만장자가 부럽지 않았다. 거기에 한 술 더 떠 동치미 국물에 손가락만큼이나 굵고 멋없게 자른 도토리묵을 말아먹던 딻따름하고 시원한 어머니의 손맛은 몇 십 년이 흘러간 지금에도 잊을 수가 없다.

시골 농촌에서 가을에 농사가 흉년이 되면 오히려 도토리는 풍년이 되어 가난한 시골의 농민들에겐 위안이 되었었는데, 아마 이것은 하늘이 도우시는 섭리였을 것이라는 각이 든다. 흉년이 되어 가을걷이 할 일이 별로 없는 추수의 계절, 사람들은 모두가 머리 검은 다람쥐가 되어 산의 도토리를 주워 모으러 헤매고 다녔다. 그렇게 부지런히 주워 모으는 이유는 벌레가 구멍을 파고 들어가기 전에 모아서 하루라도 빨리 절구에 넣어 콩콩 부수어 가루로 만들거나 묵을 쑤어 먹어야 했기 때문이다. 우리 집의 경우 어느 때는 힘 좋은 아버지가 떡메로 도토리를 사정없이 내려 찧어 잘근잘근 부수어서 어머니에게 넘기면 어머니는 으스러진 도토리를 커다란 함지박에 옮겨 담아 하루에도 몇 번씩 물을 갈아주며 부지런함을 떨었었다. 탄닌이라는 성분의 떫은 맛을 우려내신 것이다. 그러고 나서 얼마 후 껍질과 떫은 맛이 없어진 순수한 앙금의 녹말로 도토리묵을 만들어 간식으로도 먹고 밤참이나 때로는 식사 대용의 별식으로 먹을 때가 많았다. 나의 어머니의 힘드신 수고와 노력으로 만들어진 도토리묵은 윤기가 자르르 흐르면서 맛이 고소하다. 묵채가 가늘고 길게 썰어온 묵인데도 젓가락으로 집어도 끊어지거나 부서지지 않는다. 웬만한 도토리묵의 경우 젓가락으로 집으면 대개는 끊어지거나 부서진다. 어떻게 이렇게 끊어지지 않고 윤기있게 묵울 만드셨는지 나는 아직도 우리 어머니의 솜씨에 경탄을 하고 있다.

이렇게 맛있게 만든 도토리묵을 밥과 다른 반찬을 마다하고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 도시락으로 싸간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양념장을 별도로 병에 담아 주시고 함께 마른 김을 싸주셨는데 마른 김에 묵을 얹어서 그 위에 양념장을 발라 싸먹는 맛은 산해진미, 진수성찬이 부럽지 않을 정도였으며 점심시간에 교탁에 앉아 함께 도시락을 먹던 선생님도 자기의 도시락과 바꿔 먹자고 해서 마지못해 청을 거절 못 하고 바꿔 먹은 적도 있었다.

아련한 추억 속에 옛날 도토리에 얽힌 추억담을 두서없이 써보았다. 독자들 중에 주부님들은 도토리묵을 만들거나 사와서 가족들을 위해 위와 같은 방법으로 건강식을 만들어 밥상 위에 올려 놓는 것도 좋으리란 생각이 든다. 가을의 향기인 도토리묵의 향기를 맡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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