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봉주 / 하늘소리 편집장> 옛날 제가 어렸을 때는 한국에서 한창 축구 열기가 대단했었습니다. 한국에서 주최하는 아시아 축구대회가 ‘박스컵’이라는 이름으로 열렸었고, 그 당시 유명했던 축구선수들로는
박이천, 이회택 등, 미남 골키퍼로 인기를 끌었던 이세연,
이어 차범근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그때에도 한국 축구팀은 어이없게 약체 팀에게는
정말 어처구니 없게 무너져 실망을 시키다가도, 강팀과의 경기에서는 의외로 선전하여 승리하기도 하여 당시 한국
축구팀에게는 “강한 자에게는 강하고, 약한 자에게는 약하다”는 징크스가 있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우리의 인생에서, 특히 우리의 인간관계에서는 이 말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강한 자에게 강하여 인생의 역경을 헤쳐나가야 하며, 약한 자에게는 약하여 약한 이들을
돌보고 선을 베풀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금년에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을 보며, 세상에는 아직도 인간을 인간 그 자체로서 대우하는
평등의 세상은 언제 실현이 될지, 그것이 세계 최강대국이며 민주주의 국가임을 자랑하는 이 미국땅에서도 실현이
되고 있지 못함은 참 아이러니입니다. 제가 처음 미국에 와서 경험한 미국의 경찰들은 시민들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해 주며, 안전을 보장해주는, 친절한 모습의 경찰들이었습니다. 어두운 밤에 동네 길 모퉁이에 차를 세우고
교통 표지판을 보려는 제 차에 와서는,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보며 안전을 확인하고는 친절히 손전등을
비춰줬던, 자동차에 개스가 떨어져 길 한가운데에 서 있는 제게 다가와서는, 지나가는 차들이 제 차를 안전하게 비켜갈 수 있도록 경찰차로 막아주고 손수 수신호를 해주며 교통을 정리해주던, 경찰들이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피부색깔에 관계없이, 똑같은 법의 보호를 받으며 인권이 보장되는, 태초에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아름다운 세상이 되기를 원합니다. 내가 가진 힘과 권력으로 남을 해치는 그런 힘과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것으로
남을 돌보며 도울 수 있는, 선을 위하여 사용되는 힘과 권력과 물질이 되기를 원합니다. 진정으로 정의를 이루기 위하여 강한 자 앞에서 강하여 질 수 있는, 오직 성령이 부어주시는
능력으로 승리할 수 있게 되기를, 그런 좋은 날이 오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때에 곧 강함이니라” (고후 12:10) 내 주는 강한 성이요 (찬송가 384) 이땅에 마귀 들끓어 우리를 삼키려하나 겁내지 말고 섰거라 진리로 이기리로다 친척과 재물과 명예와 생명을 다 빼앗긴대도
진리는 살아서 그 나라 영원하리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