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섭 / 장의사> 끊임없이 흐르는 강물처럼 시간도 연속적으로 이어지는데 유한한 우리들은 이 연결된 시간을 한 토막 한
토막 잘라서 숫자를 부칩니다. 2000년, 2001년, ……, 2014년. 그리고 우리는 잘라온 시간의 한 토막을 붙잡고 우리의 모든 감정을 도배합니다. 연말이다,
연시다, 즐기기도 하고 아쉬워하기도 하고. 잘라온 시간의 한 토막을 보낸다 하나 결국은 시간의 거대한 흐름 속에 다시금 제자리에 돌려 놓는 것인데. 죽음이란 영혼과 육신의 분리이지요. 우리가 사는 인생도, 끝없이 존재하는 영원한
영혼의 삶 속에서, 잠시 육신이란 장막을 입고 허락하신 주어진 시간 속에서 살다가 제자리로 되돌아 가는 것입니다.
육신을 떠난 영혼은 영혼의 큰 세계에 또 다시 합류하여 영원히 존재하게 되지요. 제가 유가족들로부터 자주 듣는 말은 “고인께서 며칠은 더 계실 줄 알았다” 입니다. 그래서 장례를 준비하지 못하신 유가족들은 더욱 더 당황해 합니다. 우리가 장례준비를 미루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 중 하나는 우리가 젊어 생동력이 왕성할 때에 죽지 않으려는 생각이 잠재의식 속에
자리잡기 때문이고, 그러기에 나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피동적으로 죽임을 당한다고 생각합니다. 만화에 나오듯이 죽음의 사신이 와서 데리고 간다고 은연 중에 생각합니다. 하지만 나이에 관계없이
이 세상의 삶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아는 본인은—어린아이도-- 떠나는
시간이 선택의 의지에 달려있음도 압니다. 돌아가시기 전에 배우자의 손을 붙잡고 “이제 갈게” 하며 작별인사를 하시는
분도 계시고, 가늘고 가는 생명줄을 끝까지 붙들고 계시다가, 마음 속에
담아둔 자식, 자손 한번 더 보시고 혹은 기다리던 가족의 음성 한번 더 들으시고 떠나심을 흔히 봅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마지막 하신 말씀은 “다 이루었다”
그리고 “아버지여 나의 영혼을 아버지 손에 의탁하나이다” 이였습니다. ‘다 이루었다’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이세상에
오신 목적의 완성과 그로 인한 마음의 평안함을 나타내십니다. 그리고 ‘나의 영혼을 아버지 손에 의탁하나이다’ 라는 말씀은 ‘이제 나의 영혼이 아버지께로 가겠습니다’ 라고 이해됩니다. 우리가 장례—장의예식--를 행할 때에 임종하신 후의 모습이
평안한 얼굴을 자주 봅니다. 그것은 떠나실 때 마음의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떠나시는 분들은 남은 자의 바람과 무관하게 그들의 의지와 그들의 시간에 따라 가십니다. 내
마음이 편하고 만족감이 있을 때 남은 자들의 바람과는 무관하게 가십니다. 우리들은 이별을 수동적으로 받고
따를 뿐입니다. 그래서 남은 가족들이 며칠은 더 계실 줄 알았다고 착각하십니다. 시간은 토막낼 수 없는, 영원에서 영원으로 이어지는 한 거대한 흐름이지만 우리들은 그 시간의 한 점을 떼내어
2014년이라 칭하고 동고동락하며 살아왔습니다. 우리는 2014년을 붙들 수도 늦출 수도 없이 시간의 제자리에 돌려 보냅니다. 2014년이 손을 내밀며 “갈 게” 할 때 두 손으로 따뜻이 잡고 “잘 가세요”
하며 보내 드려야 합니다. 나의 일부였던 님을 본향으로 보내야 하듯이. 또 한 해의 보냄은 수동적으로 받아야만 하는 님과의 이별 연습입니다. 아름다운 이별을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