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부르는 숲”, 아팔래치아 산맥

by 관리자 posted Jan 07,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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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성택 박사 / 역사학자>

 

여행작가 빌 브라이슨은 미국 태생의 여행작가이지만 20년간 영국에서 지내다가 다시 고국에 돌아와 아팔래치아의 자연의 미에 빠지게 된다. 그 결과가 이 개정판 (1999)나를 부르는 숲이라는 책이 만들어지고 한국판도 큰 인기를 얻었다.


아팔래치아 트레일은 3360KM 길이의 종주길은 한국으로 치자면 북쪽 신의주와 부산 간 거리의 2배 반이나 되는  산길로서 미국 역사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18세기말에도 계속해서 들어오는 이민자들은 농사, 담배, 짐승의 표피 및 금광으로 프랑스, 스페인, 네덜란드 등 국가와 서로 싸우고 경쟁을 해야할 때였다. 이 경쟁과 싸움에서 문제는 두가지였다: 첫째는 아팔래치아 산길은 남북으로 종주하여 죠지아와 남부로 가는 길이어서 영국인들에게는 당시 동부 13개  콜로니얼주를 너머 남부를 지배하기 위한 길로서의 의미를 가졌다. 둘째로 아팔래치아 산맥을 가로질러 넘어가 펜실베니아로  미들 콜로니를 세우는 것이었다.


어느 쪽으로 가든지 그들은 인디언과 맹수들과 싸워야 했다. 그러나 인디언들은 백인과 달리 그 험악한 자연을 잘 다스렸었다. 그들은 자연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영혼을 갖고 있다고 믿었다. 또 부족 간에 경계를 초월하여 서로 돕고 독자적인 종교관, 자연관, 그리고 우주관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자연과의 조화를 중시하고 그들을 하나로 보려 하는 경향이 있었다. 초기 서양의 탐험가들은 이 인디언들의 자연에 대한 태도를 존경했다. 그러나 백인들의 산업 발전은 인딘언의 그러한 자연에 대한 태도를 무시하게 되었다.


1960년대에 TV에 상영되었던 다니엘 분의 애팔래치아 탐험기는 북아메리카 인디언의 문명을 배우는 것 같았다. 유목민으로서 여기 저기 이동하였던 인디언들은 멕시코에서 들여온 옥수수로 농경생활을 시작하였고 (BC 3500), 바구니 공예 문화 (아나사지)가 발달하고 그들의 유명한 푸에블로 (Pueblos) 문화를 세운 주인공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문명은 남미의 아즈텍 문명에서 절정에 올랐다.

영토 확장이라는 야망에 찬 영국의 식민지 간섭은 영국과 프랑스의 식민지 간의 싸움을 종식시켰고, 독립전쟁 후 미국 역시 영토 확장 경쟁에 돌입하게 되어 프랑스로부터 루이지애나주를 구입하고, 스페인령이었던 플로리다에서 헤르난데스 데 소로와의  승리로서 남쪽 끝까지 얻게 되었다. 이로써 미국 식민지들은 동부의 13개주 콜로니얼이라는 제한된 구역에서 바야흐로 애팔래치아 산맥을 넘어 제2의 서부 록키산맥으로 향하기 시작한 것이다.


빌 브라인슨은 이 책에서 아팔래치아 트레일 이야기를 이 자연미와 인간관계를  연결하여 역 사 안에서 찾아 보고자 숲과 산 속에서 자신과 친구와의 모험담을 유머스럽게 그리고 있다. 그리고 제목을 한국어로는 나를 부르는 숲이라 번역하니 원제, ‘Walk in the woods’ 보다 더욱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숲이 나를 부르고 있다. 나를 부르는 숲으로 나는 가련다.

  

아팔래치아트레일.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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