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배
한 사람이 배를 타고 강을 건너다가
빈 배가 그의 배와 부딪히면
그가 아무리 성질이 나쁜 사람일지라도
그는 화를 내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배는 빈 배이니까.
그러나 배 안에 사람이 있으면
그는 그 사람에게 피하라고 소리칠 것이다.
그래도 듣지 못하면 그는 다시 소리칠 것이고
마침내는 욕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이 모든 일은 그 배 안에 누군가 있기 때문에 일어난다.
그러나 그 배가 비어 있다면
그는 소리치지 않을 것이고 화내지 않을 것이다.
세상의 강을 건너는 그대 자신의 배를 빈 배로 만들 수 있다면
아무도 그대와 맞서지 않을 것이다.
아무도 그대를 상처 입히려 하지 않을 것이다.
-장자(토마스 머튼 번역)-
굿모닝~!!!!!
사람과의 문제는 상대방이 있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이 없다면 아무 일도 아닌 것이 상대방이 있을 때 문제가 됩니다.
빈 마음, 나를 비우는 것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며칠 전 바둑을 두다가 싸움이 일어났습니다. 상대방이 내가 담아 놓은 돌 통을 보더니 언제 그렇게
많이 따 먹었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따 먹은 장면이 있지 않느냐 했더니 확인해 보자는 것입니다.
그러더니 임의로 따낸 자리에 메워놓고 열 개 정도 남은 돌을 자기 통에 넣으려는 것입니다.
바둑은 종반이라 그동안 패싸움해서 먹은 것이라고 했더니 그럴 리가 없다고 우기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내가 사기라도 쳤느냐 했더니 그렇다는 겁니다. 마침 옆에서 관전하던 분이 있어서 보는 분도
있는데 될 법이나 되는 소리냐고 했더니 상관없다는 겁니다. 까짓 열 개 정도 돌려줘도 바둑은 내가
많이 이기고 있지만 돌려주면 사기 친 것을 인정하는 꼴이 되는지라 버텼습니다. 하도 떼를 쓰기에
결국은 언성이 높아지고 바둑판을 엎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저보다 나이가 스무 살 정도 많은 노인이
었지만 정도를 벗어난 꼴을 볼 수 없는 제 본성이 작동해서 일이 커졌습니다.
방귀뀐 놈이 성 낸다고 그 분은 그 분대로 분이 나서 제 멱살을 잡고 흔들어 대는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상대가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혼자서 명국을 늘어놓았더라면 어땠을까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상대방이 있고 또 자기가 설정해 놓은 기준에서 벗어날 때
우리는 화가 납니다. 그러면 내 기준은 무엇일까요? 정도에서 벗어나도 눈감아 줄 수 있는 여유가
우리는 왜 없을까요? 화목하고자 하면 내 기준을 무너뜨려야 합니다. 이럴 수도 있구나 하고 수긍해야
합니다.
아무도 없는 것처럼 마치 나 혼자 있을 때 일어난 일처럼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여유 있는
미소를 지으며 관조해야 합니다.
지관(止觀)이라는 호를 가진 분이 생각납니다.
모든 상념을 끊고 사물을 진리에 입각하여 지긋이 바라 보는 것 이라는 뜻입니다.
그 마음을 가져야겠구나 하며 반성하는 요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