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소백산 / 이향신

by 관리자 posted Feb 21,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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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향신 권사 / 서울 청운교회>

 

바쁜 도심 생활 속에서 모처럼 겨울 산행을 떠나게 된 나는 설레는 맘으로 이른 새벽부터 일어나 이것저것 배낭에 챙기고 부지런히 집을 나섰다. 청운 산악선교회 명찰을 배낭에 달고 떠난 소백산 산행은 이른 봄을 기다리고 있던 나에게 뜻하지 않게 눈 덮인 겨울 산야를 만나보게 했다.


버스에서 내려 들어서는 산길엔 삭막한 나뭇가지 사이에 벌써 버들가지가 한껏 봉오리를 피워내고는 있었다그런데 봄기운 느낌도 잠깐, 어느 사이에 차츰 미끄러운 눈길을 만나고 우리는 아이젠으로 무장을 하고 오르기 시작했다. 갈수록 눈길로 이어지고, 또 이어졌다평소 운동을 게을리 했던 나는 둔한 운동 신경으로 겨울 산행을 하기에는 너무 힘이 들었다.

1진 선발대에 떨어져 2진으로 밀려가고 있었지만 벌써 하산을 하며 포기한 대원들이 있다는 기별을 받고 우리도 그만 내려갈까 (?)” 하는 약한 마음이 생기기도 했다함께 동행한 대원이 이제까지 온 것이 아까워서라도 정상까지 올라가 봐야 되지 않겠느냐는 격려에 다시 용기를 얻었다.


앞서가다 뒤돌아 보고 얼마 남지 않았으니 어서 오라고 손짓을 하니, 함께 포기하지 않고 산을 오를 수 있었다앞서거니 뒤서거니 했던 등산객의 모습들이 보이지 않고 둘만 남았을 땐 두려운 마음도 생겼다나 혼자였다면 얼마나 무서웠을까. 되돌아갈 수도 없고, 어차피 앞으로 전진 해야만 앞선 대원들을 만날 수 있으리라는 맘으로 다시 산을 올랐다.

허기도 지고 지쳐 포기하려던 발걸음을 한 걸음씩, 한 걸음씩 내딛다 보니 정상이 가까워오고 이제까지 보았던 풍경과는 다른 주목 군락과 깊이 쌓인 눈 덮인 산야가 감탄을 하게 했다. 앞섰던 대원들을 만났을 때는 얼마나 반갑고 기쁜지 다시 힘이 솟아났다.


살아서 천년죽어서 천년을 서 있다는 주목나무는 하얗게 눈 덮인 산에 까만색으로 당당히 서있다그 긴 인고의 세월을 비바람 맞으며 서 있었을 것을 생각하니 위대해 보이기까지 하다.

주목 군락을 지나니 그야말로 잉크빛 파란 하늘과 눈 덮인 하얀 산등성의 파랑과 흰색, 그리고 따뜻한 햇살이 우릴 반긴다.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내가 화가라면 이 아름다운 풍경을 다 화폭에 담고 싶고내가 시인이라면 이 감동을 시로 읊었을 텐데 그러지 못하는 아쉬운 맘을 대신 카메라에 몇 장 담는다.


정상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고 감탄에 감탄을 하였지만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배가 너무들 고프고 지쳐 밥을 먹을 장소를 찾아 내려왔다. 정상 밑에 사진에서 보는 것과 같이 대피소(?)인지 목조건물 한 채가 있었다. 바람도 막아주고 아늑한 그곳엔 사람들이 가득했다배낭에 싸온 간식과 밥을 꺼내 먹기에 급급했다.

하산을 하면서 함께 했던 대원들과 서로에게 감사했다덕분에 여기까지 왔노라고혼자 떨어졌으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며 함께 동행 했으니 정상까지 올 수 있는 용기와 힘이 생겼다고 서로 고마워 하고 치하를 했다.


그러고 보면 내 인생길에도 수많은 동행이 있었기에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부모님 , 형제친지친구동료, 교우들과 이웃들, 그리고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도 스쳐 지나간 내 인생길의 수많은 사람들과의 동행무엇보다 주님이 늘 나와 함께 동행하시므로 내가 이제 까지 살아오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하산하는 길은 발걸음도 한결 가볍고 편안해졌다힘든 줄도 모르고 즐겁기만 하다이곳까지 올라오지 못해 이 멋진 정상 등반의 기쁨을 함께 누리지 못한 일행들에게 아쉬움까지 이야기할 수 있는 여유까지 가지면서.

한 걸음, 한 걸음씩 옮긴 내 작은 발걸음이 그 높고 먼 길을 오르내릴 수 있었다니 작은 것부터의 시작이 참으로 소중하다 생각하며 온 길을 뒤돌아 보았다눈 쌓인 높은 산꼭대기와는 달리 하산 길 양지바른 골짜기엔 한낮의 따스한 햇빛, 봄기운이 감돈다.


이젠 입춘도 지나고 개구리가 튀어 나온다는 경칩도 지났으니 머지않아 눈 덮였던 산야에도 연둣빛 새봄의 빛깔로 물들어 오리라그러고 보니 힘들게 산을 오를 때 듣지 못했던 졸졸졸 물 소리가 들려온다가까이 다가가 허리를 굽혀 내려다보니 눈 쌓인 바위틈 얼음 사이로 녹아 흐르는 물소리다한껏 맑아진 내 마음만큼이나 청량한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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