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언 변호사> 불주사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서른살 정도 이상의 한국 사람들의 왼쪽팔 윗부분에는
곰보자국처럼 약간 튀어나온 흉터가 있게 마련입니다. 맵씨 좋게 어깨를 드러낸 여자 연예인의 팔에도 흉터자국이
남아 있는 걸 여러 번 본 것 같습니다. 그런데 대개 국민학교 때 한두번 맞았던 이 불주사에 제가 몰랐던
사연이 있음을 최근에 알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60~70년대에는 결핵예방을 위해 이 불주사가 지속적으로 이뤄져 왔습니다. BCG 예방접종이라고도 불리는 이 절차는, 커다란 유리주사에 주사약을 가득 넣고 한 아이에게 주사를
찔러 적당량을 주사한 다음, 그 바늘을 알코홀 램프에 약간 그을려 "소독"을 한 다음 다시 다음 아이에게 주사약을 찔러 넣는 식이었습니다.
저는 불주사라는게,
맞으면 불에 데인 것처럼 아파서 이름이 그렇던가, 아니면 뜨겁게 주사바늘을 달궈야만
약효가 있기 때문에 그런가 했었습니다. 그런데 진짜 이유를 알아보니 다름 아니라 가난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주사바늘 같은 의료장비가 넉넉치 않아서 여러 번 쓰려고 불로 소독을 했었던 것이지요. 한국이 어느 정도 발전한 80년대 중반 이후로는 이같은 방식의 불주사가 더 이상 실행되지 않았고,
실제로 결핵 자체도 거의 자취를 감추게 되었습니다. 불주사를 맞기전에는
먼저 팔에 튜베르클린 피부 검사, 또는 TB
test 라고 하는 결핵 반응 검사를 합니다. 이를 통해 몸안에 결핵균이 있는지
알아보는 것인데 나중에 부풀어 오르는 반응이 몇 mm가 넘으면 양성으로 판독되고 그러면 흉부촬영을 해서 진짜
감염이 되었는지 검사를 하지요. 반대로 부풀어 오르는 반응이 크지 않으면 몸 안에 결핵균이 없으므로 몸안에
항체를 만들기 위해 항원을 일부러 넣었고 바로 그게 불주사였던 것입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미국에 영주권을 받기 위해서는 최종 단계에 건강검진 결과를 제출해야 합니다. 여기서 확인하고자 하는 질병 중 하나가 바로 결핵입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합니다.
한국인은 거의 모든 사람이 불주사를 맞은지라 몸안에 결핵 항체가 있습니다. 따라서
TB test 결과 한국 사람의 상당수는 팔에 표시되는 반응 결과가 양성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정밀검사를
위해 엑스레이를 찍어야 하고 그 비용을 추가 부담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몇 년전에 이민국은 TB test 의 반응을 보이는 반점의 반경수치를 더 줄여놓아서 한국사람은
더욱 많이 정밀검사 결과를 제출해야 하는 불편함이 따르게 되었습니다. 만약 정밀검사 결과, 간에 일정 이상의 흔적이 나오면 수개월치의 약을 조제받아 매일 먹어야 하는 생각지 못한 일이 뒤따르게 됩니다. 사실 결핵은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서는 거의 완전히 사라진 질병이므로, 후진국에서 미국에 들어오는
이민자들에게 전염성이 있는 결핵균 보유 여부를 확인하고자 하는 정책의 취지는 당연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미국정부가 자국의 보건정책 상 이와 같은 절차를 요구하는 것을 사실 우리가 뭐라고 나무랄 수 있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아무래도 이방인으로
성인이 되어 미국에 정착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다른 문화와 배경 때문에 불편함과 추가 비용들을 부담하는 것은,
그나마 값싼 수업료라고 생각하고 감수해야 하는 것인가 봅니다. 그래도 수개월치의
약을 먹게 되어 간을 더 버리게 생긴, 한 고객의 처지가 딱해 보이는 마음은 어쩔 수 없군요. --김영언 변호사 (법무법인 미래) 847-297-0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