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신, 김광정 교수> 몇 년전 어느 날 문득, “넓디 넓은 미국 땅에서 우리는 어떻게 시카고에 정착하게
되었지? 그리고, 어떤 연유에서든 일생을 이곳에서 보냈는데, 우리가 시카고 역사를 얼마나 알고 있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우리들의 시카고 역사 공부였다. 필자는 지난 2년 가까이, 시카고 문화회관에서 시카고 역사를 강의하면서, 아주 많은 동포들이 우리와 같은 질문을 하셨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오늘부터
우리가 배운 시카고 역사를 지면을 통해 나누어 보려고 한다.
오늘은 시카고 역사 이야기 첫번째 시간으로, 시카고의 도시 형성에 있어서 물 –미시간 호수와 시카고 강--의 역할에 대해 알아보려고 한다. 시카고 시의 공식 출범은 1837년3월4일, 윌리암 옥덴 시장과 6명의 시의원의 취임으로 시작되었다.
1837년 당시, 시카고 시의 인구는 3,820명으로 집계되어 있는데, 1880년대 말이 되면 인구가 백만을 넘으면서 미국에서 뉴욕시 다음으로
큰 도시로 부상한다. 바람의 도시답게,
눈이 핑핑 돌아갈 정도로 역동적인 시카고 역사를 접하면서 들었던 첫 번째 의문은 ‘시카고의 도시 형성이 왜 이렇게 늦어졌나’ 이었다. 미국 독립선언이 1776년7월4일에 있었고, 독립전쟁은 1781년에 끝났으니까, 미국 독립이 확정된
후에도 반 세기, 근50년 동안 시카고는 변방의 별 볼일 없는 작은
촌락으로 남아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시카고는 미국 독립의 주동인 영식민지 13개주에
포함되어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시카고 지역은 영국이 미대륙의 식민지
주도권 전쟁--이 전쟁을 유럽에서는 7년 전쟁, 미 본토에서는 ‘프랑스-인디안 전쟁’이라고 부른다--에서 프랑스를 제압하면서, 1763년부터
영 식민지 관할에 속하였던 곳이다. [곁 가지 하나: 이 7년 전쟁을 통해 프랑스는 카나다와
미시시피강 동부의 지역을 모두 영국에게 양도하게 되어 북미대륙에서 밀려나고 말았다]. 그렇다고 미 정부가 오하이오강 이북의 아팔라치안 산맥 서부와
미시시피강 동부 지역을 무관심하게 방치하였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신생국가 미국은 일찌감치 (1787년)
이 지역을 ‘북서지역포고령’ (Northwest Ordinance)에 포함시켜 미 정부의 개발의지를 천명하기도 하였었고, 1802년에 Fort Dearborn
(디어본성채)을 지어 작은 수의 군대를 1812년까지, 그리고 1816- 1839년까지 주둔시키기도
하였었다. 그런데, 무슨 연유로 시카고 도시개발은
1830년이 되어서야 시작되었나? 이에 대한 대답은, 확장되는 미국 영토와 경제와 ‘물 (water)길’
의 연관성에서 찾을 수 있다. 누구나, ‘시카고에서 물?’ 하면 ‘미시간호수!’ 라 생각할 것이다. 미국 지도를 펴놓고 ‘시카고’를 찾으면
가장 크게 눈에 들어오는 것이 오대호의 하나인 미시간 호수이어서 별 무리가 없는 대답이고, 미시간 호수가
없었으면 시카고가 없었을 수도 있었기에, 시카고의 도시 형성 과정에서 미시간 호수의 역할은 크다.
그렇지만, “미시간 호수를 끼고 있는 지역이 아주 넓은데, 왜 유독 시카고가 각광을 받게 되었을까?” 를 살펴 보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시카고 강’
(Chicago River)이다. 왜냐하면, 시카고 시는 미시간 호수 남서쪽 끝 시카고 강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개발되었기 때문이다. 시카고 강은 미시간 호수에서 내륙으로 조금 들어와서는 곧장
남북 지류로 갈라지는데, 미시간 호수에서 시카고 강이 갈라지는 곳까지의 지역이 시카고의 근원지이다. 이 지역에는 매서운 겨울 추위를 막아줄 방패막이 숲도 없었고,
그저 흔한 것이 ‘물’이었으며,
시카고 강을 건너 데스플레인 강까지의 지역은 진흙호수 (Mud Lake)로 불려질
정도로, 건기 (dry
season)에도 말을 타야만 건널 수 있는 Chicago Portage (‘portage’는 두 수로-시카고 강과 데스플레인 강- 사이의 육로
운송로를 지칭한다)가 있었다. 그래도, 미시간 호수에서 시카고 강이 갈라지는 곳까지 여기 저기 자그마한 둔덕들이 여러 개가 있어서, 그 둔덕들 위에 집과 건물들을 짓고 보트로 왕래하였다. [디어본성채도 시카고 강 입구, 현재의 트리뷴 빌딩 건너편 둔덕에 세웠다]. 실제로, 1830년대 초까지 시카고 강이 남북지류로 갈라지는 지점의 북동쪽에 있던 Wolf Point라는 둔덕이
시카고 지역사회의 중심지였었다. 시카고 생활상을 그린 옛날 스케치를 보면, 시카고는 ‘바람의 도시’ 이기
이전에 ‘물의 촌락’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렇게 열악한 자연 조건을
가진 지역인 시카고를 개발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는, Chicago Portage만 운하로 뚫어 미시간 호수와 데스플레인 강을 연결하면, 시카고가 5대호와 미시시피 강을 연결할 수 있는 최단거리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자세한 내용은 다음 번 컬럼에 계속 연재> 참고로, 시카고 시의 깃발에도 이러한 물길 –
미시간 호수와 시카고 강-의 중요성이 표현되어 있다. 시카고 시 깃발은 3개의
흰색 줄과 2개의 파란 줄 위에 육각형 별 4개로 구성되어 있다.
(사진 참조) 이중 파란 색 줄의 첫 번째는 미시간 호수와 시카고 강 북부지류를,
두 번째 파란색 줄은 시카고 강 남부 지류와 운하를 상징한다. 다시 말해, 미시간
호수와 시카고 강 남북부 지류가 시카고 개발에 끼친 영향이 절대적이었다는 것을 시카고 시의 깃발에 나타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