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천 조현례 / 아동작가>
마음이 공허해서일까. 이사야 47장을 듣는다. 지금 나는.
아침부터 아가서를 다 듣고 이사야서를 듣기 시작했다. 그 동안 서너달 동안 못한 성경 봉독에 대한 보충을 해야 겠다는 성급함도 있어서지만 성경 낭송은 한번 듣기 시작하면 끊임 없이 빨려 들어감을 의식한다. 잠시 그치게 하면 마치 숨을 쉬지 않고 있어야 하는 느낌이다.
성경 봉독했을 때는 좀 어려운 말이 나오면 쉬면서 사전을 찾아보기도 하며 사색도 하게 되는데 이 낭송을 들으면 백 퍼센트 이해 못해도 그냥그냥 흘러가야 한다. 마치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그 심오한 내용은 몰라도 지루하지도 않아 하루종일 듣고 싶어하는 것과 같다. 지난 달 언니가 아파서 로스앤젤레스에 갔다가 어느 백화점에 갔었는데 조카딸이 권유해서 성경 낭송기를 샀다. 스마트 폰이 필요하지만 그걸 사면 편리함은 있지만 그것의 노예가 될것 같아 망서리던 중이었다. 이 자그마한 라디오는 구약 신약은 맨 뒤에 싣고 앞에는 수천 개의 명곡을 비롯하여 타령 등 복음성가가 실려 있는 소위 선물용 효도 라디오란다. 우리 아이들은 이런 것에 관심이 없는 아이들이라 나 스스로가 나에게 효도한 셈이다. 누구든지 우리 집에 와서 가수 이름과 곡목만 대면 다 들을 수 있다. 몇 가지 듣고 싶은 노래가 있다는걸 알면서도 난 아직 한 곡도 듣지 않고 있다. 모세 오경만 빼고 사사기부터 다 들었는데 자다가 못들은 부분은 다시 듣기도 하고 잘 이해가 안되면 그 장만 되돌려서 다시 듣는다. 요즘 나는 평소에 친구와 수다 떠는 것을 줄이고도 시간이 모자랄 정도다. 한국 사람들은 확실히 우리 한국 사람 자신들이 무엇이 필요한가를 너무나 잘 아는것 같다. 물론 종교적으로 선도, 전도 한다는 목적도 지대하리라고 믿지만 아무튼 이모저모로 착안을 잘 했다고 생각한다. 하루종일 쉴새 없이 무료함을 느낄 수 없이 이것이 나의 마음과 나의 영혼을 사로잡는다. 참으로 얼마나 더 오래 함께 살아야 이 집요하게 나 자신을 사로 잡고 있는 무기에서 해방 될수 있을까. 남들은 스마트폰이다, 컴퓨터 게임 등에 사로 잡혀 있는데, 나는 성경 낭독이 읽어 주는 하늘소리에 이렇게 기분 좋게 사로 잡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