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섭 /장의사> 양로원이
어떤 곳인지는 우리 모두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젊어서는 거의 가보지 않지요. 교회에서 절기를 맞아 방문행사를 하면 단체로
가보거나 하지만, 개인적으로 연고자가 계시지 않는 한 개인적으로 가 보진 않습니다. 하지만 나이 70을 지나고 연로해 쇠약해지면 걱정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양로원 생활을 하게 되면 어쩌나 하고…그리고 대부분 집에서
조용히 수면 중에 생을 마치기를 기도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우리의 바람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쇠약한 마지막 날들의 삶은 모두 본인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배우자나 자식들의 의도대로 결정됩니다. 저의 부모님의 과정을 기억해 봅니다. 저희 부모님은 이민 오셔서 40년동안
아리조나주 피닉스에서 40년 사셨습니다. 90을 바라보면서도 두 분께서
집에서 생활하셨는데 2011년 봄 시카고에 사는 제가 며칠 가 있는 동안 어머니가 넘어져 왼팔을 골절하여 기부스 하시고 고생 하셨습니다. 눕지도 일어나시지도 못하시고 부엌일도 못하시고…… 집에서 가사일을 도와 줄
도우미가 필요하였습니다. 타주에서 사는 자식들이 시간을 나누어 맡았습니다. 두 달 후쯤 아버지께서도 넘어지셔서 머리를 다치고 응급 입원
하셨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께서 필요하지 않는 고생을 너무 많이 하신 것 같습니다. 그 며칠동안 응급실과 병원에서 수 많은 테스트와 스태프들의 무례함 등이 상태를 더욱 악화 시킨 것 같기도 합니다.
퇴원 할 때에 소셜워커가 물었습니다. "집에서 24시간 보호해 줄 사람이 있냐?" 고…... 자식들이 노력하겠다고
하며 재활병원으로 가셨다가 집으로 오셨습니다. 거동이 어려운 부모님을 집에서 모시는 데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하고 자식들이 의논하게 되었습니다. 양로
시설의 도움을 받자고 의논을 모으고 두분과 함께 양로시설에서 모시게 되었습니다.
피닉스가 지금은 미국 대도시 중에 하나로 성장하였지만 우리가
이민 왔을 때에는 작은 도시였고 한인도 몇 사람 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미주의 대도시처럼 한인중심가가 형성되고
한인 노인 시설이 성립될 인구는 아닌가 봅니다. 저희가 부모님을 위하여 여러모로 생각하고 좋은 양로원을 결정하였으나
한인 간호사가 함께 거주 할 동양인은 없었습니다. 부모님께서는 40년
미국생활에 영어로 왠 만큼 의사소통은 되셨는데 날이 갈수록 어려워 졌습니다. 그 당시 아버지의 형편은 미약한
신경마비 (스트록)로 거동이 힘드셨으나 정신은 맑으셔서 그 곳 도우미들에게
한글과 붓 글씨까지 가르치려고 하셨습니다. 그런 분이 생활의 변화와 제약이 있기에 아버지께서 한국말로 몇 마디 고함을 치셨었나 봅니다. 간호사들은 알지 못 하는 한국말로 크게 소리지르시니 안정제를 주사하기 시작했습니다. 힘이 있으신
아버지께 주사의 농도가 약하다고 판단했는지 양로원에서는 주사 양을 많이
한 것 같습니다. 하루는 휠체어에 앉아계신 아버지께서 눈의 초점을 잡지 못하시고
침을 질질 흘리고 계셨습니다. 양로원에서 행하는 짓(?)들을 모르는
때라 아버지께서 약해 지셨나 생각했습니다. 한 두 달 사이에 안정제를 과도하게 받은 아버지는 온 몸이 싸늘하게
식어 병원 응급실로 입원하게 됐습니다. 응급실 의사는 이 밤이 어려울 것 같다고 하여 미 전역에 흩어져 있는
자식들이 급히 모두 모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그날 밤을 응급실에서 무사히 넘기시고 병원에서 며칠 해독하시며
조금 회복하셔서 하스피스 병동으로 옮기셨다가 다른 양로원으로 모셨습니다. 그 양로원도 별차이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부모님과 말 동무하며 도와주실 도우미 분을 모셨습니다.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사는 시카고에서 한인들이 많이 계시는 양로 시설에서는 한인 스태프들이
없는 중소도시의 양로 시설보다는 나으리라고 믿고 두 분을 모셔 왔습니다. 그래도 말 동무들이 있고 한인 간호사들도 있고 하여
생활이 훨씬 나았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제가 결혼하고 출가한 후 30년동안 잠시 잠시 인사 드리러 갔을 뿐 이였는데, 집에 모시지는 못했지만 가까이서 함께 생활할 시간이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피닉스에서 부모님을 도와주신 분이 한국에서 간호사 출신 이였고
그의 남편이 한국 의무사병 출신 이였기에 무슨 주사를 놓는 지 알아서 저도 후에 알게 됐습니다. 아버지는
시카고의 한인 양로원으로 오셔서 일년 하루(366일)를 저와 함께 계시다가 돌아 가셨으며 피닉스로 모시고 가 안장 하였습니다.
어머님은 아버님 장례 치르시러 피닉스에 함께 가셔서 형님 집에서 7주 더 계시다가
자식 손 모두의 환송을 받으며 아버님 곁으로 가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양로원이란 Skilled
Nursing Facility라고 하는데 본인이 자력으로 기초 생활 할 수 없기에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며 사는 곳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연약해지면 자식들이 우리를 대신 결정하게 됩니다. 우리가 가고 싶다고
갈 수 있는 곳도 아니며 우리가 가고 싶지 않다고 피할 수 있는 곳도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힘있게 살지라도
선인들의 삶을 보며 오늘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준비를 해 두어야 하는 하는지 잠시라도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전화문의: 847-990-08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