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씨앗-단 한 가지!

by 관리자 posted Apr 03,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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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헌 목사 / 코너스톤교회>

 

마가 요한의 예수님 수난 기사를 묵상하고 묵상해 보니 메시지는 하나인 같다.

아주 생략되고 간결한 그리고 보도 형식의 수난 기사 가운데 독자들이 알았으면 하는 메세지, 별히 수난기사를 통해...
가지다.

예수님께서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으셨다는 것이다!
( 정확히 말하면 그렇게 안하신 것이지만...)

조롱은 세번이나 반복된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먼저 ( 15 31)
그리고 예수님 옆에 달린 강도가 예수님을 욕하면서
삽자가에서 내려 오라고 한다. ( 15 32) 
심지어 예수님께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크게 소리 지르셨는데, 이 외침을 알아 듣고서는 곁에 섰던 어떤 이들은 엘리야가 와서 저를 내려주나 보자라고 한다. ( 15 35-36)

고통은 예수님만의 고통이 아니었다. 
당시 핍박을 받기 시작하는 초대교회의 독자들에게 마가가 전하고 싶은 메세지였을 것이다.

"그리스도인이란 자기 스스로 구원할 없는 자라고
그런데 오히려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해 삶을 드려야 한다고"

지점이 세상으로부터 조롱 받는 지점이다.
심지어 교회 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세상에서 번듯한 직업이 없는 자는 직분도 받지 못하고
가르침의 은사가 있어 가르치려 해도 교인들조차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작은 교회 목사는 위축되기 마련이고...

세상은 교회를 향해 무능력하다고 한다. 
부패했다고 한다. 
먼저 너희부터 깨끗해지라고 한다.

틀리지 않다. 
그러나 틀렸다.

예수님께서는 아픔을 아셨다.
아니 아픔을 고스란히 당하셨다.

몰약을 포도주를 받지 않으심으로  무능력한 제자들의 고통을 안다고
십자가에서 번이나 조롱 당했다고 말씀하신다.
십자가에서 변제하셨다고 
부활로 증명될 것이라고..
영혼이 하늘 나라의 통치를 받게  
하늘 나라의 생명과 가치관을 받아 들이게
, 영혼의 거듭남으로만 증명되는 것이라고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겠는가?

세상의 조롱 가운데도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무능력하고 가진 없고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한 사람들이 
어떻게 세상을 구원하겠다고 있는가?

스스로 구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깨끗하게 못하는 사람들이 
어찌 다른 사람을 구원하겠다고 나댈 있는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중요한데,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외면을 경험하셨다고 하신다.
이제 십자가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온전히 회복됨을 
역설적으로 그리고 웅변적으로 보이신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한 화목제물이심을 보이신다.

하나 있다. 그것은 억지로 같이 구레네 시몬을 통해 비춰진다.
5리를 가자고 10리를 가라고 하신 예수님의 가르침이 생각난다. 
사랑으로, 아니 억지로라도 섬기라 한다 (21).

하나 있다.
마지막에 나와 있는 여인들이다.
여인들만 나와 있지만 마가는 설명을 굳이 집어 넣는다.

"이들은 예수께서 갈릴리에 계실 때에 좇아 섬기던 자요
이외에도 예수와 함께 예루살렘 올라온 여자가 많이 있었더라" (41)

남자들이 없는 이유는 있었을 것이다.
중요한 제자 공동체였다는 것이다.
공동체가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공동체 가운데서 하일라이트를 받던 사람들이 아닌 무명의 헌신된 사람들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먼저된 자들이 나중되고, 나중된 자들이 먼저 되는 곳이 교회다.
성령에 사로잡히면 자신이 스스로 구원 못해도 다른 사람 구원하는 것이라는 비밀을 깨닫게 되면 그렇게 되는 아니겠는가?

예수님의 수난기사를 통해 마가 요한이 전하고자 했던 메세지!
하나!

세상의 조롱에 기죽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가 따르는 예수님도 그런 삶을 사셨다.
예수님이 조롱의 아픔 아신다.
예수님이 조롱 십자가에서 당하셨다.

스스로 구원하지 못해도, 그래서 손가락질 당해도, 다시 나가라 하신다.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라고.

교회는 어차피, 아니 우리는 예수님 이래로 세상 기준에 맟줄 없는 존재들이다!
세상의 모든 필요를 채우는 곳이 교회가 아니지 않는가?

사회적 책임감과 필요에 눈감지 말아야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언제나 스스로 구원하지 못하면서도 다른 사람 구원하겠다고 나대는 오지랍이 넓은 사람 아니겠는가?

예수님은 부패할 대로 부패한 한국 교회의 아픔을 아신다.
한국 사회가 먼저 스스로 정화하고 스스로 바르게 살고 스스로 구원하라는 돌팔매질을 당해도 싸다.
그리기 위해 다시 출발해야 한다.

그런데 마가복음을 통해 오히려 기독교 복음의 본질과 교회의 생리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해 보라고 하시는 같다. 
그리고 위축되지 말고 다시 한번 일어서라 하신다.

스스로 구원하지 못해도, 십자가에서 내려올 없어도, 죽음의 , 조롱의 , 수난의 ,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걷자 하신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2015 매일성경 큐티 본문 (막15:21-41) 따른 성금요일 설교 핵심 메세지>

 

PS. 마가요한 참으로 불친절하네요.
그러나 얼마나 정미한 모릅니다.
문학적 완성도가 얼마나 기막힌지, 이야기의 구성이 정말 치밀합니다.
마가 요한은 메세지를 직접 전하지 않습니다.
이야기들을 통해 스스로 드러나게 하며 엉뚱한 인물들의 고백으로 가치를 더욱 드러냅니다.
마가복음은 제자들을 무시하고 깔보는 것으로 유명한데 가만히 보니 그렇지 않은 같습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를 중요한 것으로 부각시키는 같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참으로 많은 것을 생략하기도 하고 그만큼 오히려 메세지를 찾는 것이 참으로 쉽지 않지만 말씀 붙들고 씨름해 볼만한 rewarding 본문인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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