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향신 권사 / 서울 청운교회> 아무리 오래된
옛 노래라 하더라도 내가 지금 처음 접했으면 나에겐 신곡이다. 올해 구순이신
평생 착한 농부, 내 아버지는 요즘 둘째 딸내미 덕분에 새로운 꽃과
처음 보는 나물과 이름조차 처음 들어보는 나무들을 만나신다. 봄이 되면 심어보리라
적어놨던 몇 가지 씨앗과 몇 그루의 나무를 사들고 고향으로 내려갔기 때문이다. 구십 평생 농사만
지으셨던 충청도 할아버지는 곤드레 나물 씨앗은 처음 보신다며 “곤드레가 뭐여...어...?” 하셨다. 사실 나도 그동안
곤드레가 어떻게 생겼는지 자라고 있는 모습은 본 적이 없고 강원도 정선과 영월로 여행을 갔을 때 두어 번 곤드레나물밥만 먹은 기억이 있다. 그런데 작년
봄 양평에 별장을 둔 우리 교회 권사님 댁 심방을 갔다가 텃밭에 심어놓은 곤드레 나물을 만나게 되었다. 텃밭에서 재배하는
것을 보고 신기하고 반가웠다. 텃밭 한 고랑 가득 자란 곤드레나물의 줄기와 잎은 힘도 없이 시들은 듯 하였지만
나물 맛은 정말 좋았다. 돌아오는 길에 낫으로 한 다발씩 베어주신 곤드레 나물을 갖고 와 쌀과 같이 앉혀
나물밥을 해서 양념장에 비벼 먹으니 정말 맛이 있었다, 후에 다시 권사님을 만나자 가을에 씨앗을 거두게 되면 내게도 꼭 나눠달라고 부탁을
했었다. 그렇게 얻은 곤드레 나물 씨를 아직 바람도 찬 3월에 아버지와
둘이서 밭에 삽으로 고랑을 내고 쇠스랑으로 다듬고 해서 씨앗을 뿌렸다. 그런데 나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데, 아무 것도 해 준 게 없는데 곤드레는 꽃샘추위를 이겨내고 단단한 흙에 여린 뿌리를
내려 예쁘게 싹을 틔우고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나와 아버지에게 새로운 만남과 관심으로 친해지게 된 곤드레 나물은 왜 하필
이름이 곤드레일까 궁금해 졌다. 곤드레 나물은
사람 키 만큼 자란다고 한다. 그런데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마치 곤드레 만드레 술에 취한 사람같이 보이는가
하면 마치 정신 줄을 놓은 사람처럼 비틀대는 것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사실 국명은
고려 엉겅퀴인데 향명이 곤드레 나물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몇 해 전에는 ‘곤드레 만드레’ 라는 대중가요가
유행 한 적도 있었다. 생긴 모양은 깻잎 같고 잎이나 줄기는 호박잎만큼이나 크다. 고려 엉겅퀴
(국화과)란 학명을 가진
산채의 일종으로 예로부터 강원도 평창과 정선 등 강원도 영서지방에서는 춘궁기에 한줌 쌀을 넣어 죽을 쑤어먹던 구황식물이었다고 하니 어려운 시기에
끼니를 때워준 은혜의 음식인 것이다. 그래서 충청도에서 태어나고 지금까지 그 고장을 벗어난 적이 없는 우리 아버지께는
생소한 식물이었던 것이다. 곤드레 나물
이파리에는 단백질, 탄수화물, 칼슘, 회분, 무기질,
비타민A 등이 많이 함유되어 있고 정맥을 확장시켜 주어 정맥증을 치료하는데 쓰이는가 하면
지혈작용, 소염작용, 이뇨작용 등도
한다고 한다. 당뇨와 고혈압, 콜레스테롤을
낮춰주고 혈액순환을 개선하는데 도움을 주어 성인병에 특히 좋다고 알려져 있다. 이렇게 우리
몸에 여러 가지 유익을 주는 나물이지만 나에겐 그것만이 중요한 게 아니다. 씨앗을 뿌리고, 가꾸고,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행복한 시간은 그 어떤 성분으로 내 몸을 유익하게 하는 것 보다 내 마음과 몸을 살찌우기에 좋은 것이다. 며칠 전에는
일부러 서울에서도 유명하다는 청계산 곤드레 나물밥집엘 가보았다. 점심시간이기도
했지만 나무숟가락에 번호가 써진 번호표를 받아서 기다렸다가 번호가 불리면 자리를 차지할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여기도 이렇게
곤드레나물의 팬이 많구나 생각하며 다소곳이 기다렸더니 한참만에야 우리 차례가 왔다. 기름이 잘잘
흐르는 윤기 나는 곤드레나물밥을 향 좋은 들기름 양념간장을 넣고 젓가락으로 살살 섞으며 비비니 그 냄새에 군침이 입 안 가득 고인다. 담백하고 부드러우며
향이 은은하다. 때를 따라 든든한
농사꾼 하나님 아버지께서 햇빛과 비를 내려 잘 자라게 해 주실 것이고, 틈만 나면 잘
자라고 있는가 내 아버지께서 돌보실 것이니 6월쯤에 나는 내 아버지와 어머니와 함께 시원한 대청마루에 앉아 곤드레 나물밥을
먹을 기대로 벌써부터 행복해진다. 시끌벅적한 식당
한 쪽에 앉아 밥을 먹으면서도 내 마음은 두둥실 고향 마루에 앉아있는 꿈을 꾼다. 그리고 곤드레가
어서 자라 그걸 뜯어다 시골집에서 나누어 먹을 생각을 하니 내 행복지수가 마구 쑥쑥 올라가고 있는 것만 같다. 구순의 아버지와
미수의 어머니 두 분도 틀림없이 “요것이 곤드레 나물 맛이구나” 하시며 입 안
가득 나물밥을 머금고 즐거워하시리라. <곤드레 씨앗>
<곤드레 나물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