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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풀라처럼 무럭무럭.jpg


<조현례 / 아동문학작가>

 

우리가 이민 왔을 , 1976년엔 우리 나라가 지금처럼 경제적으로 부자가 아니었다.

이민 오기  남편은 동아일보에서 방송국 편성부장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월급이 고려대학교 정교수와 같았다. 같은 재단이었으므로. 우리는 아이 기르며  풍성대는 살림을 수는 없었으나 가난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나도 일주일에 12시간 나가는 시간강사로 일하면서 나름대로 살림을 보탰었다고 기억한다.

주로 나는 강사료를 타면  연탄도 넉넉히 드려놓고 신촌 --그때 우리는 이화여대 뒤에 살았다--시장에 가서 평소에 사곤 하던 미제 물건들을 기웃거렸다. 이를테면 언제나 아이들이 침을 삼키는 초코릿이나 캬라멜 같은 간식 종류와 치즈 버터와 오렌지 쥬스를 사곤 했다. 자그마한 방이   개있는 영단 주택에 어울리게 중간 사이즈의 냉장고에는 언제나 술꾼인 남편을 위해서 쥬스가 떨어지지 않고 채워져 있었다.

그러나 74 박정희 정권의 탄압으로 동아일보 광고 사태가 일어나 여러가지 우여곡절 끝에 뜻하지 않은 미국 이민을 오게 되었다. 그런 극적인 계기가 아니었더라면 남편은 결코 미국 이민은 오지 않았을 사람이었다.

미국 와서 처음에 우리는 무슨 일을 해서 다섯 식구의 호구지책을 해결할 있을까 하고 망서리는데  1년이 걸렸다. 한꺼번에 받은 퇴직금은 이민 오는데 드는 비용과 1 동안 놀고 먹는 바람에 거의 날려 버렸다.

우리는 서투른 장사를 시작 했지만 힘들었던 일들은 잊어버렸고 한가지 기억나는 잊지 못할 추억이  유산처럼 남아 있다. 그날 그날 물건 달라를 웅켜쥐고 우리는 집으로 오는 길에 으례히 그로서리에 들리곤 했다. 남편과 나는 놓고 집고 싶은 것들을 집어서 카트에 싣는다. 계산은 필요가 없다. 계산대에서 해줄테니까 걱정 필요가 없는거다.

카트에 가득 물건을 채우고 흐믓해 하던 !  그리고 이것들이 미제들이란 말이지!’ 우리 내외는 너무나 행복했었다, !  아이들에게 좋은 음식을 맘껏 먹일 있다는 기쁨이었다. 정든 고향을 떠나 와서 외롭고 쓸쓸해서 후회스러웠던 감정도 순간엔 사라지고 여기가 바로 천국이다!’하고 외치고 싶었다.

그뿐이랴. 싱싱한 과일은 따로 도매 시장에 가서 박스째로 사고 캔터키 푸라이 치킨은 보따리씩 갖다 안겼다. 한국에서는 비싸서 맘놓고 먹지 못했던 불고기도 날마다 먹였던 같았다.  아이들은 정말로 포풀라 나무처럼 쭉쭉 뻗었다. ‘그만 자라라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민 와서 40여년 가까이 살아 요사이는 어떤가. 우리 손자들을 기르면서 특히 그로서리에 가서 옛날처럼 놓고 먹고 싶은 것들을 집어 카트에 잔뜩 담을 수가 없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먹여서는 안될 음식들이 너무 많아서다.  특별히 좋은 물건들, 올개닉’ (organic)이라고 하는 유기농품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 우리 같은 소시민은 가까이 없기 때문이다.

우선 신선한 야채를 놓고 없다는 사실이 슬프다. 왜냐하면 야채를 빨리 자라게 하려고 잡초를 죽이는데 쓰는, 인체에 해로운 살충제를 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걸 먹고 사람들은 눈에 보이게 당장 병이 나서 죽지는 않으니까 농장 주인들은 법의 제제를 받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게 아닌지.

쇠고기, 돼지 고기, 닭고기는 어떤가.  빨리 살을 찌게 해서 돈을 많이 벌기 위해 상인들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양이다. 내가 인터넷에서 보고 들은 바를 말하고 싶지만 눈물이 나서 못하겠다.  나는 이런 방면에 문외한이지만 자꾸만 그런 비리들을 듣게 되는게 너무 슬프다. ‘모르는 이란 말이 있듯. 어디까지나 이런 문제는 나라님의 몫인 같아 나는 이상 언급을 하고 싶지 않다.  땅덩어리도 넓은 미국인데 옛날처럼 자연 속에서 평화롭게 가축들을 풀어놓고 맘껏 풀을 뜯어 먹이며 자랄수 있는 아름다운 세상은 다시는 돌아 오지 않을건가.

포풀라 나무처럼 쭉쭉 뻗어 올라가는 사랑하는 우리들의 2, 3세를 위해서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 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악덕 상인들의 마음을 다스려 주십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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