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날, 아버지의 사랑 / 김명렬

by 관리자 posted Jun 14, 2015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나는아버지입니다.jpg

 

<김명렬 / 문필가>

 

아버지의 날은 아버지를 기념하는 날이다. 이는 아버지의 사랑과 희생, 헌신을 다시금 기억하고 깨닫게 하는 날이다. 미국에서는 6월의 셋째 일요일을 아버지날로 기념하고 있으며 기타 다른 나라들도 아버지날을 정해 기념하고 있다. 아버지날을 기념하는 꽃은 역시 어머니날과 같은 카네이션이다. 아버지가 살아계신 사람은 붉은 카네이션

드리지만 돌아가신 사람은 흰 카네이션을 아버지의 무덤 앞에 올려 놓는다

아버지날의 시작은 1910 미국의 워싱턴주에 살고있는 도토 여사에 의해 처음으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 사람은 어머니날처럼 아버지께서도 가족들을 위하여 일생을 희생과 사랑, 헌신하는데 이런 아버지께 일년에 하루라도 감사를 드려야 하는 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그녀는 어릴 때 어머니를 여의고 홀로 길러주신 아버지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자 기념을 한 날이 아버지날의 시작이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지내게 된 아버지날은 62년후인 1972년도에 이르러 미국에서 공휴일로 제정되었다. 일본에서는 1955년 무렵에 도입하여 서서히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1980년대에 들어와서 일반적인 행사로 정착되었다. 아버지날인 카네이션 외에도 노란 장미와 해바라기, 흰 장미, 흰 백합화 등도 많이 선물하는데, 이는 노란색이 고대

영국에서 몸을 지키기 위한 색을 의미하여 오늘날에는 사랑하는 사람의 무사함을 기원한다는 의미로 노란색을 사용한다. 그래서 몇 년 전에 이라크 전쟁에 파병된 군인 장병들의 무사귀환과 안녕을 빌기 위해 자식이나 남편 가족들을 그곳에 파병 보낸 가정들은 이들의 무사함과 평안을 기원하는 뜻에서 집 앞, 또는 대문이나 정원의 나무, 우체통 등에 노란 리본과 테잎을 달아놓고 사랑하는 사람의 안녕과 무사함을 하나님께 기원하였다.

달력을 보니 금년에는 621, 번째 일요일이 아버지날이다. 내가 다니는 교회에서는 아버지날을 맞아서 60세이상 어른들 (어버이님들)을 모시고 23일의 효도관광을 다녀온다고 한다. 그동안 평생을 자식들을 위하여 무거운

멍에를 목에 걸고 가정을 이끌어 오면서 갖은 고생과 헌신, 사랑을 자식들에게 모두 쏟아버린 어머니, 아버지를 위하여 조금이나마 위로를 해드리고 은혜에 감사를 드리고자 목사님을 비롯한 전교인들이 마음과 정성, 사랑을 다해 이날의 효도관광을 마련한 것이다. 효도관광을 가는 날이 아직은 며칠 더 여러 날 기다려야 되는데 나이드신 어른들은 어린애처럼 마음이 부풀어 그날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관광을 가서 무엇을, 어떻게 하고 즐겁고 기쁘게 즐기고 올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미국에서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이다. 평소에 가진 것이 넉넉지 못해 자식들에게 남들처럼 풍성하게 잘해주지 못했던 가난한 아버지에게 16살 먹은 예쁜 딸이 있었다. 엄마를 교통사고로 어릴 때 여읜 딸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착하고 예쁘게 성장하였다. 그런데 딸이 불행하게도 얼굴이 파리해지고 점점 시커멓게 변해갔다. 감수성이 예민한 소녀가 다른 곳도 아닌 얼굴이 그렇게 변해가자

크게 걱정이 되고 근심 속에 병원을 찾아갔다. 그녀는 결국 의사로부터 신장염에 걸렸다는 놀라운 진단을 받았다. 딸의 신장을 이식하지 않으면 얼굴이 변색되어 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생명까지도 잃을 수 있다는 참으로 놀라운 소식에 고민하던 아버지는 자신의 신장을 떼어주기로 결심했다. 수술이 잘되어 딸아이는 다시 건강을 회복하게 되었다. 그런데 오래지 않아 딸의 신장이 다시 문제를 일으켰다.

또다시 신장이식수술을 받지 않으면 생명의 위험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다시 한번 결심을 한다. 마지막 남은 신장, 그것마저도 딸에게 주어야겠다고. 그러자 의사들이 펄쩍 뛰며 반대를 했다. 이것은 의술로 할 수 없는 살인행위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의사협회 윤리위원회까지 열어서 이것은 불가능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아버지는 요지부동이었다. 자기 목숨보다 귀중한 딸을 위해 윤리보다 강하

위에 있는 것이 사랑이다고 맞섰다. 그리고 의사들을 설득했다. “하나님도 스스로 만든 법을 어기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보내 죽게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법은 살인하지 말라 하였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사랑하는 사랑을 고귀하게 여기셨기 때문에 법을 어기면서까지 예수님을 죽이셨습니다. 그러므로 법보다도, 윤리보다도, 사랑이 앞서는 것입니다. 이렇게 눈물로 호소하여 결국에는 마지막 남은 신장을 떼어 사랑하는 딸에게 주고 자신은 하늘나라로 가고 말았다.

이것이 바로 아버지의 사랑이다. 이것이 아무런 조건도 없는 아버지의 순수한 사랑이었다. 지금의 우리는 아버지의 사랑으로 인해 이렇게 살고 있고 아버지 와 부모님의 사랑때문에 내가 태어나고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