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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딜리아니 이야기

 

비운의 화가, 역사상 가장 잘 생긴 미남 화가, 35세에 요절,

우리는 모딜리아니를 그렇게 부릅니다.

모딜리아니의 그림들은 기형적으로 긴 목 길게 과장된 코, 둥글게 처진 어깨, 눈동자 없이 텅 빈

아몬드 형 눈, 살짝 기울어진 머리,

인체의 비례는 완전히 무너지고 어찌 보면 다소 괴기스러운 그림들입니다.


미인대회에서 볼 수 있는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런데 눈을 뗄 수 없는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입을 꼭 다물고 관람객을 쳐다보는 여인들의 모습

속에 알 수 없는 슬픔이 있는 것은 비운의 화가였던 작가의 삶이 그림 속에 스며 있기 때문일까요?

모딜리아니는 22살부터 파리에 살면서 작품 활동을 했습니다. 당시 파리는 샤갈, 피카소,

브랑쿠시, 키슬링, 수틴, 반동겐 등 전 세계에서 몰려든 재능 있는 화가들의 집합소였습니다.

한마디로 20세기 아방가르드 미술의 본산지였습니다.

'전위'라는 뜻의 아방가르드는 20세기 초 유럽과 미국 등에서 일어난 예술운동을 말합니다.

기존 예술과는 다른 새로운 개념의 예술을 추구했습니다. 당시의 예술가들과 활발히 교류하며

작품 활동을 했지만, 파리에서 모딜리아니는 좀 특별했습니다. 아방가르드의 흐름에 동참해 새로움

과 파격을 추구하는 대신 가장 전통적인 장르인 인물화만 고집한 탓입니다.

모딜리아니는 35년의 짧은 생애 동안 400점에 못 미치는 회화를 남겼는데 풍경화 5점을 빼고는

모두 인물화입니다.


모딜리아니의 인물들이 처음부터 목이 길었던 것은 아닙니다.

초기 작품 속 인물들은 매우 정상적이고 사실적인 비례를 보여 줍니다.

모딜리아니의 그림 속 인물들이 목이 길어진 것은 1910년대 중반부터입니다.

1906년에 파리에 정착한 모딜리아니는 1914년까지 단 한 점도 작품을 팔지 못 했습니다.

후원자인 알렉산드르 박사가 의뢰하는 작품을 그려주고 생활비를 지원받는 게 유일한 소득이었습니다.

1910년 화가로서의 성공에 불안을 느끼고 조각가로 전업을 시도 합니다.


그 과정에서 에투르스크 조각과 아프리카 원시 조각, 크메르 조각에 깊이 빠지게 됩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세 차례나 죽을 고비를 넘길 만큼 병약했던 모딜리아니에게 조각은 육체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작업이었습니다. 결국 모딜리아니는 조각을 시작한 지 4년여 만에 다시 회화로 돌아

옵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목이 길고 텅 빈 아몬드 눈을 가진 아프리카 조각상를 그대로 닮은 인물들을

화폭에 담기 시작합니다. 누구와도 닮지 않은 모딜리아니만의 독특한 인물들은 결국 지독한 가난과

불확실한 미래, 병약한 육체 때문에 고통 받던 모딜리아니의 비극적 삶이 응축된 산물입니다.

그러니 그림 속 인물들이 슬픔을 불러일으키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일반인들에게 친숙한 모딜리아니의 작품들은 목이 긴 초상이지만 전문가들은 모딜리아니의 최고 걸작

으로 초상화보다 누드화를 꼽습니다. 하지만 모딜리아니 생전에 그의 재능을 알아보지 못했던 이들은

걸작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모딜리아니는 1917년 생애 첫 개인전을 엽니다. 파리에 정착한 지 10년, 사망하기 3년 전에 맞은 기회였

습니다. 하지만 전면에 전시된 누드화는 외설이라는 이유로 철거 명령을 받으면서 전시도 일찍 문을

닫게 됐습니다. 결국 모딜리아니는 끝까지 철저한 ‘무명화가’로 살다가 1930년 결핵으로 인한 뇌수막염

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내가 당신의 영혼을 알게 될 때 당신의 눈동자를 그릴 것이다.” 모딜리아니의 말입니다.

지금은 모딜리아니 작품 한 점에 수백억 원을 호가하는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화가 가운데 한 명

입니다. 많은 ‘비운의 천재’들이 그랬듯이 눈이 어두운 사람들은 늘 천재를 잃어버린 뒤에야 그들의

재능을 알아봅니다.


눈은 있지만 눈동자가 없는 건 모딜리아니의 그림 속 인물들만이 아니라 우리들일지도 모릅니다.

 

-김영아기자의 취재파일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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