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외서리와 원두막 / 김명렬

by 관리자 posted Aug 20,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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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명렬/문필가>


나의 소년시절, 참외와 수박을 유난히도 좋아하는 나를위해 어머니와 아버지는 근처 골밭에 몇고랑의 밭에 참외랑 수박을심어서 실컷 따먹도록 해주셨다. 막내인 위로 누나와 형이있어 우리들5남매에게 매년 여름에사주는 참외값이 보리쌀 한가마값이 
훨씬 넘다보니 아예 나의부모님께서는 자식들을위해 해마다 참외와 수박을심어서 자식들이 실컷먹도록 도와주셨다. 그리고 이웃사람들에게도 때때로 따온참외를 나눠주곤하셨다. 참외를 받은 이웃들은 옥수수를 갖다주든가 아니면 열무, 호박, 배추 또는 복숭아등등 다른 야채나 과일들로 답례를 해주기도했다. 시골에서만 볼수있는 정겨운 이웃사랑 나눔의, 끈끈한 인정을 주고받는 아름다
미풍양속을 서로가 실천하는 좋은모습의 표본이되는 장면이기도하다. 
나는 집에서 이렇게 넉넉하게 먹을만큼 참외와 수박을 심어서 풍족하게 먹고지내는데도 불구하고, 가끔씩 친구들과어울려 스릴넘치고 가슴이 쾅쾅뛰는 참외서리와 수박서리를 재미삼아 한적이 여러번있었다. 참외농사는 다른 농작물보다 소득이많고 이익이많이 남는장사라 그런지 몰라도 그당시 우리동네근처에는 참외와 수박농사를지어 5일장이 서는날에 그것을 마차에싣고나가 모두팔고 돈뭉치를들고 웃음을먹음은채 집으로 오는사람들이 여러명있었다. 참외나 수박을심은밭에는 으례 밭을지키기위하여 밭머리나 밭가운데에 원두막을짓는다. 원두막은 기둥4개를세우고 그꼭대기에 보리짚으로 이엉을엮어 지붕을마들고 그밑에 판자나 통나무로 높게
닥을만든다. 위의 둘레사방은 보릿짚이나 밀짚을엮어서 상하로 열고닫을수있게 만들며, 더우면 막대기로 바치어 열도록 되어있고 에서는 사다리를놓아 오르내리도록하였다. 이른봄 일찍 온상재배로 참외를 심어서 초여름에 남보다일찍 출하를하는경우도있고, 여늬경우는 대개 보리나 밀을베어내고 그밭에 주로 참외와 수박을심는경우가 많기때문에 원두막을지을때는 보릿짚이나 밀짚으로 짓는경우가 흔하다. 원두(園頭)라는말은 원래 참외,오이,수박,호박따위를 통털어 이르는말로 이중에서 수박이나 참외,딸기등은 현장에서 따먹기쉬웠고 옛날에는 짖궂은 마을청년들의 서리하는버릇을 막기위하여 원두막을짓고 지켰다. 이렇게 참외밭이 생겨나면 그근처 동네소년들이나 청년들의 최대관심거리로 등장하게되며 참외와 수박이 익어갈때쯤에는 참외나수박의 도둑질(서리) 막기위하여 으레히원두막이 세워진다. 여름철의 참외서리와 수박서리는 고향친구와 함께 어린시절을 생각나게하는 즐거웠던 추억거리다. 오후에 학교에
갔다오는길에 참외밭이 곁에있는 개천가에서 멱을감으면서 원두막의동향을 살핀다. 학교가끝나고 집에올때쯤에는 점심에먹은 도시락 모두 소화가되고 뱃속은 출출하고 무엇이라도 먹고싶은 허기증이생겨난때라, 푹꺼진 배를 쓰다듬으며 멱을감던 또래의 아이들은
기투합하여 누가 먼저라고 할것없이 모두가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참외밭으로 기어들어간다. 두서너명은 원두막에서 낮잠자는 주인의동향을살피고 나머지인원들은 살금살금기어가서 가장자리에가서 보이는대로 참외를 두서너개를 따서 줄행랑을친다. 그리고 헉헉거리며 냇가 개천뚝방 후미진곳에 모여앉아 익지도않은 새파란참외를 이빨로 아삭아삭거리며 마파람에 게눈감추듯이 먹어치운다. 요행히걸린 잘익은참외는 달고 꿀맛이다. 그러나 어쩌다 잘못얻어걸린 풋참외는 쓴맛이난다. 그래도 공짜로얻은참외가 아까워서도 참외꼭지까지 다먹어치운다. 그렇지만 참외꼭지는 왜그렇게쓴지 지금껏먹었던 맛있던맛은 금새 사라지고 모두들 퉤퉤하면서 우거지상이된다. 
참외서리는 번번히 성공만하는것은 아니다. 개구장이들이 참외밭근처에서 멱을감고있으면 원두막위에서 망을보고 지키고있는 할아버지 끝까지 개천에서 멱을감고있는 아이들을 주시하고있다. 그러면 아이들은 허기진배를 쓰다듬으며 아예 포기하고 집으로 일찍돌아간다.
그런데 어쩌다 배고픔과 참외의유혹을 물리치지못하고 참외밭에 몰래 숨어들었다가 재수없이 붙잡히기라도하면 그날의운수는 억세개 수없는날이된다. 멱살을잡혀서 집으로끌려가 어머니,아버지에게 일러바쳐 종아리를 수없이맞고, 더욱 재수가 옴붙으면 학교선생님에게까
알려져서 반에서는 참외도둑놈이라는 놀림을받고 낙인이찍히고만다. 나는 요행이도 그렇게 걸려본적이 없었는데, 재수없게걸린 친구들 수업시간에 쫓겨나서 두손을들고 복도에서 무릎꿇고 반성하는 모습들을 본적이 몇번있었다. 
좀더러번있었다 성장하여 여름방학이되어 서울에서공부하다 시골에내려오면 친구들은 기다렸다는듯이 나를데리고 참외밭으로 참외서리를간적이 . 장난끼많고 개구장이 청소년들에게는 해가지고난 캄캄한밤이되면 참외서리를하기좋은 시간이된다. 저녁을먹고 더위와 모기를
피해 동네한가운데 느티나무아래로 또래의 모든청소년들이 십여명 마실나온다. 저녁으로먹은 보리밥은 방구몇번뀌고나면 금새 소화가되어 뱃가죽은 꺼지고, 개울가로몰려가 물장난치며 멱을감고 몸을씻는다. 멱을감고있는 백여미터윗쪽의 물여울에는 동네아녀자들이 땀에젖은몸
을씻으며 재잘대고 수다를떨며 난리들이다. 이윽고 여자들이 목욕을하고 모두가 집으로돌아간 이슥한밤이되면, 개구장이 청소년들의마음은 참외밭으로 향한다. 행동대원인 ? 들을 선정하고 그가운데 뜀박질을잘하는 돌격대가 옷을 홀랑다벗고 알몸의용사가된다. 어둠속에서잘보이지않게하기위해 모두가 개천가의 진흙으로 온몸을 검게 위장을한다. 그러고는 참외밭근처까지 기어간다. 발빠른 또다른 친구두세명은 원두막근처 밑에까지 잠입하여 주인이 잠자는지 어떤지를 돌맹이나 따놓은참외를 집어서 밭두렁근처에서 대기하고있는 행동대원 친구들에게 힘껏 집어던져서 알려준다. 돌맹이를던져주면 주인이잠들어있다는 신호이고 아무연락없이 조용하면 주인이 깨어있다는신호이다. 주인이잠들어있다면 서리꾼들은 주저없이 모두가 참외밭으로 기어들어간다. 손으로 참외를톡톡쳐서 툭툭하고 둔탁한소리가나는 잘익고 달콤한참외만을 골라따서 담는다. 땡땡소리가나면 안익은참외다. 어쩌다 너무서두르다가 소리가 요란해 밭주인에게 들키기라도하면 주인은 자리에서일어나 밖을향해 큰소리로 (다른참외는 상하지않게 조심하고 먹을만치 적당히따가라) 하고서는 그냥내버려둔다. 그때나의고향친구들사이에는 참외서리의 불문율이있었다. 서리를하되 주인에게 큰피해를 주지않는범위에서 해야한다.서리해온참외는 두고두고 먹는것이아니라 먹을만큼따와
서고 당장에먹어치운다. 그것으로 배를채우는것이아니라 밤참의 간식정도로 요기나하며 스릴과 재미를곁들여 하는 오락?으로 끝내야한다. 그리 한집에 계속해서 서리를하는것이 아니라 돌아가면서 골고루 적당량만 따온다. 
요즘처럼 무더운여름철 밤이되면 잊혀지지않고 떠오르는 옛날의 청소년시절 고향에서 친구들과어울려 참외랑 수박서리를했던 추억이 떠오른다.
그것이 재미였건 취미였건간에 그건 아주못되고 나쁜행동였음을 깨닫고 뒤늦은 후회와 자책감으로 마음이 아프다. 여하간 지나간 옛날이야기지만,원두막과 참외서리는 오늘날같은 삭막하고 메마른 인정속에 오아시스같은 마음의여유를주는 풍속이었다. 원두막은 예로부터 참외밭을지킨다는 
구실이외에도다 동네사람들의 좋은 피서지가되었고 사랑방이되었으며 길손들에게는 땀을식혀가며 출출한배를 채워주는 좋은휴식의장소가 되었. 서리가 도둑이아니던시절, 참외밭주인은 알고도 모른척 속아주던 농심이 있었기에 더욱 정겨운추억으로 남아서 오랜세월이 흐른지금에도 머리
속에 아름다운추억으로 자리잡고있다. 지금에 이렇게 참외서리를한다면 그것은 서리가아니라 절도이고 도둑이 되는 것이다. 교도소에가기 알맞은 행동이다. 그런생각을하니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