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께서 분명하게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요한복음 3
: 5)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요한복음 3 : 6
)
이것은
사람이 누구든지간에 성령으로 거듭(중생)나지 아니하면
구원 없다라는
분명한 메세지이고,
또한 인간은
본래 원죄로 인해 영적으로 죽어있기 때문에
성령으로
말미암아 영적으로 다시 태어나 새로운 본성을 부여받고
새 생명을
얻어야 구원 받을 수 있다는 확고한 가르침입니다.
즉, 거듭남은 영적으로 죽은 인간이 성령님의 역사로
다시 살아
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거듭남은 인간 스스로의 힘과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또한 그
어느 누가 나를 거듭나게 할 수도 없는 것이고,
오직 성령
하나님만이 일으킬 수 있는 초자연적인 현상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성령으로 거듭난 자의 믿음을 보시고 그러나 성령으로 거듭난 자들은 다릅니다. 예수님이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이심을 심령 깊숙한 곳으로부터 세상보다는 하나님을 더 사랑하게 됩니다. 작금의 현실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 그리고 세상으로 향했던 마음이 온전히 하나님(예수님)께로 이를 증명하기 위해 예수님이 다음과 같은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새로운 마음과 진정한 회개와 굳건한 믿음을 주시도록
의롭다라고
여기시며 구원해 주십니다.
이러할
때 비로서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 얻는다"라는
말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즉, 성령으로 거듭나야만 참 믿음을 가질 수 있게 되고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참 믿음은
삶 속에서 행위로 나타나고 증거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르시기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고 습관적으로 교회의식에 참여하는 자들을 향해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요한 계시록 3 :
1 )
이러한
자들은 "회개하여 죽게 된 것을 일깨어 굳건하게
하라" 하십니다.
(요한 계시록 3 : 2ㅡ3 )
여러분들,
믿음에는
복음 말씀을 듣고 머리나 지식으로 받아들이는
지적동의
수준의 "일반적인 믿음"이 있고,
성령님의
초자연적인 역사로 인해 주어지는 "참 믿음"이 있습니다.
전자인 "일반적인 믿음"이 있고 난 후에,
사람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정하신 때에 성령세례를 받고
거듭난 "참 믿음"으로
이어지는 것이 일반적인 수순입거듭난 "참 믿음"으로 이어지는 것이 일반적인 수순입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한 "일반적인 믿음"의 수준에서 벗어나,
반드시
성령으로 거듭난 "참 믿음"을 소유하여야 합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자와 거듭나지 못한 자의 차이는 엄청나게 큽니다.
먼저,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한 자들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본성을 부여받지 못했기 때문에
진심으로
죄를 깨닫지 못하고 변화되지 않습니다.
이들은
주를 믿는다고 입술로는 "주여 주여"라고 외치지만,
진정으로
죄를 혐오하지도 않고,
마음은
하나님보다 세상 것에 쏠려 있습니다.
믿음도
자기가 만들어 낸 수준에 불과하며
삶 속에서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자기 중심적 삶을 살아 갑니다.
성령으로거듭난
자는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깨닫습니다.
성령님이
그 사람으로 하여금 죄를 깨닫고 회개토록 하십니다.
자신은
지옥으로 떨어져야 할 마땅한 죄인임을 인식합니다.
자기 죄의
참혹함을 깨닫고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과 떨림으로
애통해하며
통회합니다.
이러한
참회와 함께 자신에게는 절대적 구원자가 필요함을
절실히
느낍니다.
그리고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만이
자신의
죄를 씻을 수 있음을 깨닫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무릎꿇고 십자가를 붙들며,
예수 그리스도께로
온 마음이 확 쏠립니다.
예수님께로
달라붙습니다.
예수님을
떠나서는 온통 죄이고,
오직 예수님만이
나를 깨끗케 하고 정결케 하며,
변화시킬
수 있음을 뼈저리게 느낍니다.
예수님
없이는 숨도 못쉬고
예수님과
떨어진다고 생각만 해도 괴로워 못 견딥니다.
확신이
섭니다.
예수님이
바로 나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시어
대속제물이
되었음을 통렬히 깨닫고
심령 깊은
곳에서부터 감사의 눈물을 뚝뚝 흘립니다.
그리고는
놀라운 기쁨과 평온을 느낍니다.
이제는
세상 그 어느것보다도 예수님을 더 사랑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사랑을 배우며 그 사랑이 이웃에게로
전이됨을
배웁니다.
오직 예수님께만
영광을 돌리고 싶어하고,
그 분의
계명을 즐거운 마음으로 지켜 행하며,
그 분이
기뻐하시는 일을 실행하다가 죽기를 소원합니다.
이전에
시시덕거리며 남을 비방하고 즐기던 유흥들이 싫어지고
그것들을
멀리하게 됩니다.
이제는
성경말씀이 꿀처럼 달고
진리에
대한 갈증이 엄습하고
교회 예배를
강렬하게 사모합니다.
죄를 혐오하고
증오하며 죄라면 진절머리를 내고는
죄의 멍에에
매여있던 예전 모습과는 달라진 자신을 보게 됩니다.
한마디로
이야기 해서,
예수님
없이 살아왔던 과거의 삶을 생각만 해도 메스꺼움을 느끼며,
이제는
달라진 자신의 모습을 보고는 경이롭게 생각합니다.
여러분들,
성경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거듭난 자만이
하나님이
값없이 주시는 선물로 믿음을 받는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내에서
구원에
절대적 필수요건인 "거듭남"에 대한 설교를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대신 오직 "믿기만 하면 구원된다"고 가르치면서
믿음만을
강조합니다.
믿음을
강조한다고 믿어집니까?
구원의
확신을 강요한다고 구원되는 것입니까?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에게 영접기도를 시키고는
함부러
구원받았다고 쉽게 말할 수 있습니까?
또한 헌금
많이하면 몇십배로 복을 많이 받고,
예수를
믿기만 하면 사업이 잘되고 건강해지며 만사형통된다는
번영신학이
한국 교회를 좀 먹게 하고 있음이
이로 인해,
구원에
필수요건인 생명얻는 회개와 구원에 이르는 거듭남과
거룩함이
뒷자리로 물러나면서
양들을
넓은 길로 인도하여 결국은 지옥불속에서 고통받게
하고 있음을
어찌 부인할 수 있겠습니까.
이보다
더 큰 죄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렇다며,
구원에
절대적 필수요건인 성령으로 거듭남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
이것이
우리들에게 절체절명으로 중요한 질문입니다.
거듭남은 "영적으로 죽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성령 하나님이
절대적 주권으로 행하시는 신비이고
초자연적인
영적 새 생명의 탄생입니다"
성령님은
거룩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죄를 절대로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령님이 선택된 자기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제일먼저
사역하시는 것이 그 사람으로 하여금 죄를 깨닫고
회개시키는
것입니다
확 쏠립니다.
이것이
바로 회개와 믿음입니다.
즉, 회심인 것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자가 바로 회심한 사람인 것입니다.
성령님은
성령으로 거듭난 자 안에 내주하시고,
이때부터
그 사람을 성화, 즉 거룩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거듭남은
여러번에 걸쳐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단번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화는 우리가 생을 마감할때까지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발전합니다.
따라서,
사람에
따라 신앙의 성숙도, 즉 성화의 정도가 차이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이러한
거듭남은 사람에 따라 극적인 변화를 보이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자신도 알지 못하는 중에 일어나는 경우가 흔합니다.
그렇지만,
자신 스스로는
성령으로 거듭나 변화된 것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요한복음 3 : 8 )
여기서
바람은 성령을 뜻하고,
임의로
분다는 것은 성령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을 뜻하고,
그 소리는
들어도라는 뜻은 자신이 성령으로 거듭난 것을
확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자라고 그 사람의 죄성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성령으로 거듭난 자는 죄에 대하여 민감한 반응을 일으키며
조그만
죄라도 심히 괴로워하고 통회자복하며 날마다 죄와 맞서
싸우며
회개합니다.
이처럼
성령으로 거듭나 믿음으로 의롭게 된 자는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되고,
점점 성화되어
예수님을 닮아가면서 영화롭게 변화됩니다.
여러분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 보십시요.
그 분께
말하고 그 분께 울부짖으십시요.
지금 당신
모습 그대로 말입니다.
그 분께
절체절명으로 구하십시요.
그러하면,
예수님이
자신의 영이신 성령님을 당신에게 부어주시어
죄를 깨닫고
성령으로 거듭나 거룩해져
마침내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 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