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인과 제물
창세기에 보면 카인이 드린 제물이 하나님께 상달되지 않으심을 본다.
카인은 농사하는 자였으므로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드렸고 아벨은 양치는 자였으므로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다. 어떤 이는 피 흘린 제물을 받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법이기에 아벨의 제물은 받고
카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다고 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불공평한 하나님이신가?
아벨에게는 좋은 직업을 주셨고 카인에게는 나쁜 직업을 주셨나?
아니, 직업 자체에도 좋은 직업, 나쁜 직업이 있나? 그런 하나님이라면 나는 믿지 않겠다.
어떤 이는 아벨은 성의 있게 드렸고 카인은 성의 없이 대강 드렸다고도 한다. 그것도 성경에 쓰여
있지 않으니 해답이 될 수 없다.
해답의 열쇠는 여기 있으니 “아벨과 그 제물은 받으셨으나 카인과 그 제물은 받지 않으셨다.”에 있다.
카인은 자기의 제물이 열납 되지 않으니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했으며 분하여 견딜 수 없을 지경이 되
었다.
“저놈, 아벨 때문에 내 제물을 받지 않으셨다.” 이런 마음이 들었을 수도 있다. 그 사실을 감지한
하나님께서 카인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문제는 제물에 있지 아니하고 드린 사람의 인격에 있었다.
자기의 제물이 안 받아졌으면 자기를 살피고 회개하고 돌이켜야지 “저놈 때문에 내 제물이 안 받아
졌다.”고 남의 탓을 하고 있었던 것이 문제다.
또 하나님께서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리라.”고 경고했으나 그 말을 듣지 않았다.
그 후에 들에 있을 때에 그의 아우 아벨을 쳐 죽였다. 그리고도 하나님께서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
냐?” 물었을 때에 “내가 알지 못합니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입니까?” 하면서 오히려 반문했다.
철저히 속이는 자의 위치에 있었다.
아니.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하나님은 무소부재, 전지전능하신 분이시다.
그런 분께도 속이려고 했으니 그는 믿음이 없는 자였다.
믿음 없이 드리는 제물 즉, 오늘날의 헌금은 하나님이 받지 않으실 수 있다.
세리가 드리는 기도같이 성전 멀리에서 감히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며 “저는 죄인이
로소이다.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애통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예물, 그것을 하나님은 받으신다.
드리는 사람의 마음,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인정하는 마음, 모든 것이 주께로부터 왔다고 인정하는
마음, 감사의 마음을 담아서 오늘도 하루를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