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용 집사 / 베들레헴교회>
<오늘의 말씀> 부활체의 본질과 영광
(고린도전서 15:35~49) <말씀 요약> 누군가가
죽은 자들이 어떻게 부활하며 어떠한 형태로 되느냐고 묻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뜻대로 형체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에 각각 영광이 있습니다.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서 육신은 신령한 몸으로, 영의 몸 또한 있게 됩니다. 첫사람은
땅에서 났고 흙의 사람이지만,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습니다. 우리는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과
같이 또한 하늘의 속한 이의 형상을 입었습니다. <내게 주신 말씀과 묵상>: 49절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개역개정) “And just we
have born the image of the earthy man, so shall we bear the image of the
heavenly man.” (NIV) “우리가 땅에 속한 그 사람의 형상을 지닌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하신 그분의 형상을 지니게 되리라” (한글 킹제임스) “And as we
have borne the image of the earthy, we shall also bear the image of the
heavenly” (KJV) 첫
번째 사람은 아담의 형상과 속성은 오염되고(죄) 불안정하지만, 두 번째 사람인 예수님을 닮은 모습은 영광스럽고 완전합니다.
이것은 하늘나라의 소망과 희망입니다. 나의
앞날(미래) 에
대한 보배로운 길입니다. 확실한 목표와 목적이 있는 나의 삶입니다. 오늘
본문의 흐름은 마치 사도신경의 마지막 부분의 고백과 같습니다.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 몸이 사는 것과 ,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땅에
속한 사람의 형상과 하늘에 속한 그분의 형상을 묵상합니다. 땅을 밟고 살고 있고 육체의 죽음을 맞게 될
운명을 가진 자이지만 하늘에 소망을 가진 이미 하늘의 사람으로 자리매김을 그리스도인으로서 나의 삶! 나는
구체적으로 언제일지 모르지만 죽음은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영광을 향한 통과입니다. 육체의 죽음은 나에게 큰 의미가 없습니다. 장차
올 부활의 영광이 너무 웅대하고 장엄하기에 차라리 땅의 삶과 죽음은 시시하게까지 느껴집니다. 하늘에
속한 분의 형상을 묵상합니다. <구체적인 적용> 어제
공동체의 한 지체이신 집사님 댁으로 또래의 한 집사님 가정과 함께 저녁 초대를 받았습니다. 현재 그 집사님 남편분께서는 교회를 휴식(!) 중에 계십니다.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대화의 유추를 해보면 아마도 공동체에 흥미를 못 느끼는 것인지, 아니면 교회 출석이 형식적으로 흐르는 것에 대해 마음이 내키지 않는 그런 것이 있었던 같습니다. 몇달 전에 이 부부가 저의
가정에 와서 콩국수를 같이 나누었고 공동체에서 드문드문 기회 있을 때에 같이 시간을 나누었습니다. 어제의 식사 모임은 대화나 분위기에서 자연스레 교회와 신앙에 대해서 편하게, 그리고 자연스럽게 마음의 생각들을 주고받는 좋은 만남이 되었습니다.
강요하지 않는 신앙의 대화와 상대방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절제되고 진솔한 자신의 고백과 간증을 주고 받는 편안한 자리였습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의 꽃을 피우나 보니 11시가
훌쩍 넘었습니다. 주님께 감사의 기도를 마치고 집에 오니 12시가
거의 되었습니다. 좋은 만남, 정성스런
음식, 은혜의 대화가 적절히 어우러져 유쾌한 시간을 창출하며 앞으로 종종 이러한 만남을 이어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남자 집사님께서는 본인의 표현으로는 30년 동안 교회에 출석했지만 하나님의 존재와 신앙의 고백이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30년
이상 동안 교회에 출석했고 하나님의 존재와 신앙의 고백을 해왔던 저였지만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이 집사님의 고백의 심정이 무슨
뜻인지 너무 잘 압니다. 제가 한 가지 제안을 이 집사님께 했습니다. 이러나
저러나 예수님께 꼭 붙어 있자고요, 비록
교회에서 아무런 감흥과 은혜와 느낌을 받지 못할지언정, 매주
형식적으로나마 교회에 참석하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 아닌가?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집사님에게도 무언가 변화가 찾아오지 않겠는가? 그때를
기다려 보자고 했습니다. 시간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닐 수 있을 것이라고. 나의
경우를 봐서도 그런 것 같다고 나의 경험을 나누었습니다. 오늘
새벽 예배 후 기도 중에 한 영혼의 구원에 대한 간절한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2013년도
전도 대상자들의 생각이 나면서 나름대로의 주관과 고집이 있어서 나를 애먹이게 하시는 몇 가정에 대한 집중적인 기도를 하였습니다. 현재의
이분들은 예전의 나였고 나의 태도와 나의 생각과 나의 습관과 나의 모습이었습니다. 이분들을
위한 회개기도를 대신 주님께 하였습니다. 그러고 나니 나의 마음 속에 이 분들의 가정을 다시 품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입니다. 그분께서
하셨던 그 길과 행동과 모습을 따라 조금이라도 갈수 있다면 나의 이런 작은 수고가 한 영혼을 소생시킬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드렸습니다. 이
기도를 주님께서 받으신다면 기도의 가정에 역사는 일어나고 승리의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어제의
식사초대 모임은 자연스럽게 심방 모임이 되었습니다.
아침에 그 집사님과 카톡을 주고 받았습니다. h: 집사님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만남 정성의 음식 은혜의 대화 유쾌한 시간 갖었네여 종종 만남을 이어갑시다. 샬롬 c: 저도
오랜만에 좋은 시간 가졌습니다. 종종 만나도록 합시다. h: .……. 생략 연휴 잘 보내시고요 저희 집으로 멤버를 모시겠습니다. 샬롬 c: 오늘은
대충 오전 근무만 할 것 같네요. 추수감사절 잘 보내십시오. h: 네,
집사님! 집사님은 신앙의 접근을 고등성경 공부나 연구가 더 맞으실 것 같네요 기회됨 함 시작하시져 시카고에 의외로 좋은 기회가
많습니다. 무슨
남자들끼리 이렇게 수다가 많은지……. 신앙의 접근을 고등성경 공부나 연구로 하자는
말은 무슨 말인가? 카톡을 보낸 저 자신도 무슨 뜻인지 모호한
표현을 썼습니다. 이것은 상대방을 고리에 걸기 위한 거룩한(?) 수단입니다.
2014년이 찾아오면 이 집사님과 만남의 여정을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주님께서 2014년 숙제를 미리 주시는 것 같습니다. 사역은
공동체 안과 밖의 구별 없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법은 한 가지, 한
톨도 버림이 없이 다 유용하고 귀하게 사용되어지는 것 같습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방법, 과연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그분의 비법(?) 은 이미 말씀으로 다 주어졌고 성경에 그 해답이 있습니다. 이렇게
쉬운 방법을 모르고 저는 너무 오랜 세월 방황을 했었습니다. 주님께로 돌아오니 모든 것이 너무 편하고 확실합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기회는 도전을 통해 나를 성숙으로 인도하시는 훈련과 깨달음의 길입니다.
흙에 속한 자의 형상에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닮아가는 여정입니다. 내일은
추수감사절입니다.
감사와 찬양은 주님께……. 나의 생명을
구해주시고 삶속에서 증인의 삶을 살게 하시며 공동체 속에서 합력하여 주님의 사역을 감당하게 하시니 얼마나 복되고 귀한 일인지……. 포도나무
나무에 붙들려 열매 맺는 가지가 된 듯 한 이미 이룬 승리를 맛보는 삶이리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라. 사람이 내안에 거하고 내가 그 안에 거하면 바로 그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나니 나 없이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느니라.” (요 15:5, 한글
킹제임스) <기도> 주님, 감사합니다. 초막절, 중추절에 기쁨으로 단을 걷습니다. 눈물과
땀이 있었기에 오늘의 마음과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위로와 자비와 긍휼이 있음을 감사드립니다. 삶의
어려움, 생활의
불안전함은 이세상의 삶 그 자체입니다. 하지만 주님이 계시기에 저의 인생의 선장이 되시고 나침반이시기에 안심하고 믿고 따라가는 용기와 믿음을 주십니다. 얼마나
감사한지요……. 아버지이시기에
그 품속에 거하기에 담대함이 솟아납니다. 무엇을
걱정하리요? 무엇을
두려워 하리요? 무엇을
망설이리요? 주님께
나의 인생의 승전고를 올립니다. 이미
주신 승리의 면류관을 높이 쳐듭니다. 땅의
육신의 삶에서 하늘의 소망과 부활의 몸으로 영과 육이 새롭게 태어날 소망과 기대 속에 살면서 승리의 삶으로 나의 인생을 장식하게 만드시는 만군의
여호와, 아빠
아버지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