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언 변호사>
이 율법으로부터의 자유 문제는 유대인에게는 매우 심각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는데, 지난 30여년 기독교가 이스라엘 본토에서는 크게 환영받지 못하고 주로 로마제국에 퍼진 유대 이민자들 사이에 크게 번지게 된 배경은, 이들이 같은 유대인이더라도 외국에 살면서 열린 시각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짐작한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다보니 구원이 선한 행위가 아니라 오직 믿음에 의한다는 바울의 가르침은 교인들과 심지어 교회지도자들 사이에도 종종 방종으로 이어지곤 하였다. 아, 이 어쩔수 없는 인간의 죄성이여. 각 교회마다 이 자유를 남용하여 권위와 선행을 부지불식간에 부인하며, 거룩함을 요구하던 율법에서는 자유로우면서 쉽게 구원을 기대하는 풍조가 만연하게 된 것이다.
사도 야고보가 이를 또 그냥 보고 있지 않았다. 이러한 시대를 열게 한 장본인이라고도 할 그가 노구를 이끌고 교회들을 다니며 반대로 각성을 요구한 것이다. 그가 순교하기전 남기며 회람을 지시한 편지속에서도 그러하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며 (*저자주: 야고보서 2장15절) 거룩함에서 멀어지는 일부 신자들의 태도를 준엄하게 경고하는 야고보의 일갈.
노사도의 지적에 많은 공감이 있던 차에, 마가를 이어 예수의 생애를 글로 남기는 작업을 하는 동지들 사이에서도 행함에 대한 예수의 가르침에 주목하자는 목소리가 많이 들려오고 있다. 어쩌면 우리 인간은 이토록 중용을 지키기가 어려운 것인지. 자유와 율법을 오가며 헤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