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잊으랴.
조부로부터 내려오던 내 노예신분이 해방된 그 날을. 그리고 그 일을 생각하면 나는 바울의 선한 배려를 또한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바울이 로마감옥에서 자신을 돕던 나를 빌레몬에게 돌려보내며 건넨 편지가 나를 그리 만든 것이니.
*저자주: 바울이 오네시모 인편에 빌레몬에게 보낸 편지가 신약성경 빌레몬서이다.
“이후로는 종과 같이 대하지 아니하고 종 이상으로, 곧 사랑받는 형제로 둘 자라. 네가 나를 동역자로 알진대 그를 영접하기를 내게 하듯 하고 그가 만일 네게 불의를 하였거나 네게 빚진 것이 있으면 그것을 내 앞으로 계산하라” (빌레몬서 1장16~18)
빌레몬은 나의 절도를 묵인하기까지 한 예외적으로 선한 주인이었지만, 나는 그에게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미안하기도 했지만 그보다 로마에서의 삶이 좋았다. 골로새와 달리 제국의 수도 로마는 노예들의 지위가 매우 높고 그 숫자도 매우 많다. 수도 로마의 문화적인 역량은 상당 부분 그리스 출신 노예들의 예술, 의술, 행정 능력에 기대어 있다. 재정관리나 자녀교육도 노예들이 주로 담당한다. 특히 로마 시내 부자집 노예는 평범한 자유인보다 생활이 나을 정도이니.
노예 스파르타쿠스가 예수가 이 세상에 오기 전 70여년전 로마제국 전역을 누비며 해방전쟁으로 나라를 쑥대밭을 만든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는지라, 당국은 노예의 관리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었다. 대도시에서는 특히 겉모습으로는 노예라는 신분이 나타나는 것도 아니었는데, 원로원에서 노예들에게 별도의 복장을 입히는 것에 대해 법안이 올라갔다가 부결된 적이 있다고 들었다. 오히려 얼마나 노예의 숫자가 많은지를 깨닫게 해서 세력화할지도 모른다는 염려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 노예들이 교회로 몰려들고 있다. 예수의 가르침은 누구보다 노예들에게 기쁜 소식임에 틀림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