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역사 2: ‘교역의 교차로 - 시카고’ 개발: 누가? 언제? 왜? 어떻게?

by skyvoice posted Apr 17, 202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05032017 Obama house(2).jpeg

< 교수>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시카고(일리노이)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지난 번에 언급한 대로, 시카고 시의 공식출범은 183734일이다. 1818123일 일리노이 주가 미연방의 21번째 주로 승격되고도 거의 20년 가까이 지난 후이다. ! 그럼, 연방정부나 일리노이 주 정부에게 시카고는 별 볼일 없는 변방이었나요? 그렇다. 시카고는 미시간 호수 남서단에 있다는 지리적 사실 외에는 영구 정착의 여건은 하나도 없었던 곳이다. 오랫동안 오대호 주위에 정착했던 인디언 원주민들도 시카고는 거쳐가는 곳이었을 정도로 습지 군데 군데에 작은 둔덕들이 있던 곳. 그래도, 지리적 요충지대라서 연방정부에서 1802년 건설한 작은 군사 성채 (디어본 성채, Fort Dearborn)가 있었는데, 그나마 1812년 미국과 영국과의 전쟁 직전에 영국의 사주를 받은 인디언들의 위협으로 철수하여 성채가 전소되었다가 1816년에야 재건되었다. 그것도, 인디아나에 있던 연방군대 주둔지의 지소(branch) 같은 규모와 성격으로 유지되었다.

 

1829년 늦가을, 일리노이 주정부는 설계기사 톰슨(James Thompson)으로 하여금 미시간 호수 남서쪽 시카고 강 주위의 도면을 작성하라 지시한다. 갑자기 왜? 이곳에 (일리노이-미시간)운하를 건설하고, 도시로 개발하겠다며. 183084일 톰슨은 미시간 호수에서 시카고 강이 남북 지류로 갈라지는 곳까지의 지역을 126 lot으로 구획한 도면을 제출한다.

이것이 그 유명한 톰슨 도면 (Thompson Plat). 흥미로운 점은 이 도면에서는 시카고 강을 제외하면 습지 이든지, (둔덕)이든지 구별하지 않고 반듯 반듯하게 나누었다는 점.  여하간, 일리노이 주정부는 그 한 달 후인 94일부터 톰슨 도면에 의거해 시카고 지역 토지 판매를 시작한다. 누구에게? 동부 특히 뉴욕주의 기름종이들에게. 일리노이 정부나 순전히 서류상으로 시카고의 토지를 매입한 기름종이들이나 도대체 어떤 경제적 전망을 가졌으며 어떤 이득을 보았을까? 이에 대한 답은, 멀리 뉴욕 주에서18251026일 개통된 이리 운하(Erie Canal)에서 비롯된다.

 

  8년여의 공사 끝에 개통된 이리 운하는, 뉴욕주의 수도 알바니(Albany, NY)에서 서쪽으로 330 마일 떨어진 이리 호수 (Lake Erie) 변의 항구 도시 버팔로 (Buffalo, NY) 연결한 운하이다.  시카고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뉴욕 주의 동서를 연결한 이리 운하가 어떻게 시카고 개발의 촉진제가 되었을까?

 

  당시 미국의 가장 무역항 뉴욕 시에서 시작되는 허드슨 (Hudson River) 북쪽 알바니까지도 선박이 왕래할 있을 만큼  수심이 깊어, 국내외의 무역선들은 뉴욕 시에서 알바니까지 드나들며 교역을 했는데, 이리 운하 개통으로 뉴욕 시에서 버팔로로, 그리고 이리 호수에서 휴론 호수(Lake Huron) 거쳐 미시간 호수까지 드나들 있게 것이다.  1820년대 미국에는 철로가 아직 개발되어 있지 않아, 선박 운송이 가장 비용이 저렴하였고, 동부와 중서부의 육로 연결은 애팔래치아 산맥을 넘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이리 운하의 경제성은 충분히 알겠는데, 이것이 어떻게 시카고 개발과 연결될 수가 있었을까?

 

철도가 보편화되기 시작한 1800년대 중반까지, 미국경제의 축은 뉴욕 시와 미시시피강 남쪽 끝에 위치한 뉴올리언스(New Orleans)이었다. 뉴욕을 통해서는 주로 유럽의 공산품이, 뉴올리언스에서는 설탕같은 농산품이 미시시피 강을 따라 중서부의 곡물들과 교역되고 있었다.

 

이리 운하가 개통된 1825년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자.  첫번쨰 상상은 뉴욕 (혹은, 멀리 유럽)에서 승객과 물품을 만재한 선박이 허드슨강으로부터 이리 운하, 이리 호수, 휴론 호수를 거쳐, 미시간 호수에 들어오면 어느 방향으로 항해를 계속할까?  우선 동남쪽으로,  미시간주 서부와 인디아나주를 거친 후에는, 방향키를 북쪽으로 돌려 일리노이주와 위스콘신 주를 통해  다시 뉴욕 시로 돌아가야 한다. 미시간 호수 주위를 항해하는 동안, 얼마간이라도 정박을 있는 곳은 그린베이 (Green Bay, WI) 뿐이다.   두번째 상상은 뉴올리언스에서 설탕과 승객을 가득 태운 선박이 미시시피 강을 북상하면서 교역을 한다. 미시시피 강은 위스콘신에 이르면 수심이 얕아지기 시작한다.  없이 돌아 내려오면서 위스콘신 강을 통해 내륙으로 들어가 보지만 쉽지 않다. 그러다가, 일리노이 강을 따라 일리노이 내륙으로 들어와 보지만 역시 미시간 호수까지는 연결이 가능하지 않다. 당연히 뉴올리언스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뉴욕 시에서 출발한 선박과 뉴올리언스에서 출발한 선박이 만날 수가 있다면, 그래서 뉴욕 시와 뉴올리언스가 해상길로 연결되면, 굳이 플로리다를 둘러서 필요가 없으니 미국 전국 경제의 활성화는 따논 당상일텐데.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이러한 생각을 가장 발빠르게 행동에 옮긴 주정부가 바로 일리노이주였다. 

 

그렇다면, 미시시피강과 미시간 호수를 연결하는 최단 거리는 아무래도 시카고에서 일리노이 을 통해 미시시피 강을 만나는 경로이다.  그리하여,  일리노이 주정부는 당시 인구가 100 (납세자는 30) 미만이었던 시카고 개발을 결정하게 된다. 이렇게 시카고는 일리노이 주정부에 의해 1830 뉴욕 시와 뉴올리언스를 연결하여 미국 경제의 견인차가 교역의 교차로 도시로 개발되었다.

 

그런데,   굳이 (일리노이-미시간) 운하를 만들어야 하지?   이야기는 다음 번에 하겠다.

 

<계속>

 

Chicago Hist. col (4).jpg

 

현재의 시카고; 네모진 구역이 1830년 톰슨 도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