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언 변호사>
사도바울의 사역 회고담에 꼭 빠지지 않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소아시아 루스드라 지역에서 전도하던 바나바와 바울이 앉은뱅이 하나를 일으킨 적이 있다. 그리스의 신화에 따르면 신들은 종종 사람의 형상으로 지상에 내려와 이적을 행하곤 하였으니, 루스드라 사람들이 바나바를 제우스, 바울을 헤르메스라 부르며 소동한 것은 그들 문화에서는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저자주: 사도행전 14장에 이 기록이 남아 있다)
그런데 제우스와 헤르메스가 누구던가. 그리스의 주신인 제우스는 결국 하나님과 같은 반열이고, 제우스의 아들이자 전령인 헤르메스까지 언급하였으니 이는 꼭 예수를 지칭하는 느낌이지 않은가. 바나바와 바울의 강렬한 저항과 이어진 설교는 아마도 두 신실한 사도가 모세 십계명의 첫 두 조항, 즉 신성모독죄를 깊이 의식한 결과일 것이다.
그런데 살아생전 바울을 한때 가까이서 섬긴 내 입장에서 지금까지도 교회들에 돌아다니는 소문은 조금 억울하다 싶은게 있다. 물론 바나바는 상당히 잘생긴데다가 온유한 성격에 말주변이 좋았던데 비해, 바울은 비교적 말이 어눌하긴 하였다. 어쩌면 그리스인들이 처음 보기에도 바나바가 더 큰 신 같아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다고 바울이 유별나게 못생긴 것은 아니었는데, 바울은 가끔 뜻밖에 자괴감 내지 열등감 같은 것을 그의 사역기간동안 드러내곤 하였다. 고린도 교회로 보내는 편지에서도 자신을 시기하는 자들이 퍼뜨리는 악소문을 굳이 언급하면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는 자들을 경계하라 하였는데 (저자주: 고린도후서 10장10절, “저희 말이 그 편지들은 중하고 힘이 있으나 그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말이 시원치 않다 하니”), 예수의 직계 제자들과 달리 평생을 사도의 권위에 대해 공격을 받은 그의 처지가 떠올라 한편 안쓰럽기도 하다. 사실 비교할 자가 없을 정도로 이 새로운 믿음의 탄생에 기여한 그인데.
그런가 하면, 바울이 시력이 좋지는 않았지만, 그가 간질병을 앓았다는 소문도 꽤 많이 돌아다닌다. 바울이 한 서신에서 자신의 몸에 육체의 가시, 곧 사단의 사자가 있다고까지 말하면서 하나님께 이를 없어지도록 간구하였으나 들어주시지 않았다고 적은 것이 (저자주: 고린도후서 12장) 성도들 사이에 회람되면서 더욱 이러한 추측을 가져온 듯 하다. 그러나 직접 바울을 본 나로서는 근거없는 얘기라 증언할 수 밖에 없다. 바울이 자신의 어려운 상황이나 육신의 연약함을 얘기할때 사용한 헬라어 “Astheneia”는 오히려 신의 거룩함에 이르지 못하는 인간 자신의 연약함을 끊임없이 인식한 사도의 고백이었을 것이다.
하나님이 선택한 탁월한 지도자 바울, 오늘밤 그가 몹시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