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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수>

 

오늘 이야기는 지금까지의 시카고역사이야기를 간단히 다시 돌아봄으로 시작하자. 1830년에 일리노이 주 정부는 뉴욕 시에서 이리 운하와 오대호--미시간 호수--에 이르는 물길로 들어오는 미동부의 공산품과 뉴올리언스에서 미시시피강을 따라 모이는 남부-중서부 내륙의 농산물이 교역되는 교역의 교차로로서 순수한 상업도시로 시카고 개발을 시작한다. 그리고, 1837년에 시카고 시 (city)가 공식 출범하였는데, 해상 교역의 견인차가 될 일리노이-미시간 운하는 두 번에 걸친 공사 중단을 거치며 1848 4월에야 어렵사리 개통된다.  자연히, 도시가 되고도 11년 간 교역의 교차로, 시카고? 일장 춘몽 아닐까?’라는 의문에 시달렸던 시카고에 드디어 대박이 터진다. 1848년에 일리노이-미시간 운하 뿐만 아니라, 전보 서비스, 철도 서비스, 시카고 물품거래소(Chicago Board of Trade) 조직, 등등 최대 교역지가 될 수 있는 일들이 한꺼번에 터지면서 최대 규모의 모던 교역지로 성장, 도약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또한, 1848년이 시카고에게 진정한 신의 한 수가 된 배경에는 북미 대륙 내 현 미국 영토가 1848년에 확정되면서 곧 이어 서부 개척과 유럽 이민의 물꼬가 트였다는 역사적 사실이 있다. 한마디로, 시카고가 최대의 교역 도시로 성장한 것은 시카고의 지리적 특성과 역사적 우연과 기회가 리더들의 역량과 함께 어우러져 이룬 것이다.  

 

진정한 교역의 중심 도시로 커지면서 생기는 일들 중에 지난 컬럼에서는 상주인구의 폭발적 증가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았다. 오늘은 급증하는 주민들의 원활한 시카고 거주를 위한 도시 기반의 구축, 특히 도시 공공 서비스 (social infrastructure)의 마련을 시카고 시의 지리적 경계 확장과 함께 알아본다.

 

1.    지리적 팽창

 

시카고의 상주 인구가1840년에 4,470, 1849년에 29,963, 1859년에 112,172명으로 가파르게 증가하면서 가장 먼저 부상하는 문제는 거주지 마련이었다. 일리노이 정부의 시카고 개발 청사진이었던1830년의 “Thompson시카고 도면은 시카고 강을 제외하곤 시카고 시 전체를 바둑판같은 Grid 패턴으로 나누어 놓았다. 시카고 강 외에는 어떤 자연적 장애물도 없던 시카고는 인구가 늘면서 이 Grid pattern을 북--서 지역으로 카피할 수 있어 시카고 시 경계를 넓히는 일은 아주 수월했다. 도시의 지리적 확장의 필수 요소인 신속성과 효율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가 이 톰슨 도면에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또한, 도로의 발전으로 시카고 행정 경계 밖의 지역에 인구 투입이 용이하여, 하나의 경제권이나 거주는 시외인 경우가 얼마간 지속되다가, 시카고시에 통합되는 과정을 거치며 시카고 경계가 넓혀진다. 시카고 지역의 경제, 정치의 중심은 여전히 시카고 다운타운 (Loop)이었고, 상가도 Lake Street 중심으로 크게 형성되어 있어 행정적 경계는 그리 문제가 되지 않았다.

 

더하여, 급증하는 주택 수요는 이 시기에 시카고에서 처음 시도된 건축방식인 balloon frame으로 충족할 수 있었다. 이 방식으로 왠만한 집은 며칠 만에, 빌딩도 한, 두 주(week)면 건축이 가능하였고, 지반이 약하고 많은 늪지로 인해 벽돌집을 지을 수 없는 시카고와 이 건축 방식은 그야말로 찰떡궁합이었다! 단지, 별다른 숲도 없는 시카고에서 집 건축에 절대 필요한 목재 (lumber)는 어떻게 마련하였을까?  ~ 빽빽한 숲이 즐비한 위스콘신이 가까이 있지! 이리하여, 위스콘신에서 강을 따라 옮겨오는 목재들을 시카고강 남쪽 지류 (22 남쪽) 강변에 들어선 lumber Yards 적재하며 시카고의 목재 산업이 커졌다.

 

2.    도시 공공 서비스 (특히 상수도/하수도 문제)

인구가 급증하며 시카고는 상하수도 문제로 아주 오랜 기간 골머리를 썩혔다. 시카고는 상하수 문제를 모두 시카고강과 미시간 호수에 의존했다. 미시간 호수에서 물을 끌어 들였고, 온갖 배설물들은 시카고 강에 버렸다. 그런데, mini continental divide 인해 시카고 강이 미시간 호수로 흐르니, 미시간 호수의 오염이 일찌감치 위험 수준을 넘게 것이다.  어찌할까?

 

(1)상수도 문제:  1855년에 조직된 Board of Sewerage Commission으로 하여금 미시간 호수의 2 마일 안쪽에 tube 설치하고 거기에서부터 나무로 해저 터널로 식수를 끌어 들인다. 이런 방법이 처음에는 효과가 있었지만, 하수도가 연결이 되어있지 않고 온갖 배설물들을 그냥 시카고강에 버리니까, 왠만큼 깊이 호수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오염되지 않은 식수를 구할 수가 없게 된다. 그럼, 해결책은? 시카고 강을 역류시켜 미시간 호수로 흐르지 못하게 하든가, 하수구를 설치해서 시카고 강 오염을 멈추게 하는 것이다. 우선, 급한대로 시카고 강과 미시간 호수를 방파제로 막아 시카고 강을 역류시킨다. 아뿔싸! 여름 장마에 이 방파제는 무너져 내려 도로아미타불이 되는 일이 반복된다.

 

(2) 하수도, 하수 처리 (sewage) 문제:  하수도를 설치해야 한다는 인식은 있었으나 습하고 약한 지반 관계로 기존의 아래에 하수도를 설치할 수가 없었다.  1855년에 시의회는 시내의 모든 빌딩을 4, 5피트 올리고 하수도를 설치하기로 결정하고, 그후 년간 시카고에는 5, 6 건물을 들어올리는 장관이 벌어진다. --사족으로, 이때 유명해진 사람이 풀만 (George Pullman)인데, 풀만회사는 5, 6 건물을 건물 안의 사람들이 느끼지 못할 정도로 아주 조금씩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올려서 벽과 창문에 금이 하나도 나지 않았다고 한다. -- 1856년에  미국 최초로 정부가 관장하는 sewer시스템을 도입했으나 그것도 시카고 강에 하수를 배출하는 것이어서 완전한  해결 방법은 아니었다.

 

시카고는 습한 토지 위에 세운 도시인데다, 도시의 급성장으로 공공위생과 건강 (public health) 문제가 끊이지 않았다. 다른 곳에서는 별로였던 역병이라도 시카고에서는 대규모 전염병으로 돌변하였다. 특히 약 6년간 열병, 이질, 천연두 등 역병이 유행한 후인 1854년 여름에 시카고를 덮친 콜레라는 시카고 인구의 6%를 몇 달사이에 사망시킬 정도로 심각했다.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그동안 간헐적, 단편적으로 따로 따로 대응책을 마련했던 식수와 sewage (하수도 배설물 처리) 문제를 Board of Sewerage Commission으로 상수도와 하수도를 연결시켜 관장하게 한다. 그러나, 확실한 해결책은1890년에 완공하여 개통한 28마일의 Chicago Sanitary and Ship Canal을 통해 시카고의 배설물을 미시시피 강으로 보내면서 가능해졌고, 또한 시카고 강 역류도 영구화된다.  

 

그 외에도, 1858년 풀타임 전문 소방국 (fire dept)이 조직되고, 전문 소방수와 스팀 엔진 소방차량도 구비한다. 또한, 전문적 풀타임 경찰국이 1855년에 설립되었고, 1851년에는 가로등이 처음 시카고에 설치되었으나 시내 도로 포장은 1871년까지 미미했다. 그리고, 북부 지역 교외와 시카고 시내를 연결하는 통근 기차 (commuter train) 서비스가 1855년에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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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7년 브릭스 호텔 (Briggs Hotel) 들어 올리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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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간 호수 안의 시카고 상수도 시설의 1850년대 모습.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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