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언 변호사>
멘스사나 인 코포레사노. 건강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 최근 명성을 얻기 시작한 시인 유베날(Juvenal)이 한 말이다. 우리 로마인은 몸을 가꾸는데 참으로 힘을 쏟는 민족이다. 몸이 건강한 뒤에야 건전하고 고상한 정신이 깃들 것이라 믿는다. 황제는 대형 욕탕을 건설하는 것을 임기 내의 주요 실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대욕탕 옆 방들에는 체육시설이 가득차 있다. 신분과 상관없이 이용할수 있는 목욕탕이 너무나 인기를 얻자 원로원은 일반인의 욕탕 이용을 일주일에 1회로 제한하는 법까지 통과시켰다. 수도 로마 뿐 아니다. 속주의 주요 도시에도 건설 붐이 일어 이곳 골로새에도 최신식 욕탕이 들어선지 오래다. 예수의 도를 받아들인 골로새의 교우들이라고 다를 것이 없다. 아무리 바빠도 일이 끝나면 근육을 만들기 위해 체육관에 들르는 이가 상당하다.
그런데 문득 생각하니, 육체의 건강이 건전한 정신 (mind)은 몰라도 영혼 (soul)의 건강을 가져다 주지는 않는 듯 하다. 육체 안에 정신 뿐 아니라 영혼도 들어 있는지에 대해서는 견해가 갈리겠지만. 그렇다면 영혼의 건강은 무엇으로 추구해야 하는가. 그 방법론은 내게 아직도 명확하지 않다. 이스라엘의 전통대로 말씀을 문설주에 쓰고 주야로 외워야 하는 것인가. 이방인인 우리가 쓰고 외어야 할 말씀은 예수와 사도의 가르침에 그치는가 아니면 유대의 율법과 역사를 포함하는가. 그리스어로 번역된 유대의 경전을 로마인에게 어떻게, 그리고 얼마만큼 나누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방언이 성령의 역사로 주어진 뒤 기도에 집중하는 교우들이 많다. 예수가 산상에서 유명한 기도문를 가르쳐 주기 직전,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듣는 이방인은 조금 서운한데, 나는 오히려 유대식 기도나 방언이 더 중언부언 같다.
어쨌거나 육체 건강을 위해 쏟는 정성의 절반이라도 자신의 영혼건강을 위해서 쓰는 이를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 모두는 예수의 피로 새로운 피조물로 태어난 것이라는 바울 사도의 선언과 달리, 많은 교우가 구원의 황홀한 체험이 지나간지 얼마지 않아 세상의 가치관으로 살아가는 현실을 본다. 오늘 문득 일주일에 한번 모여 예배에 참여하는게 영혼을 위한 목욕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교회는 신이 우리에게 선물한 영혼 건강을 위한 목욕탕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