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준 목사 / 살렘교회>
지난 목요일이 입추였습니다. 오는 토요일이 말복이고 이번 주말도 90도가 예보되는 더운 날씨이니 아직 가을은 먼 듯 합니다만 ... 어쨌든 유난히도 더웠던 여름도 코로나에 묻혀 이렇게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이번 여름도 많이 더웠지요? 지난 60년동안 매 십년 동안의 평균 온도가 계속 상승세를 보였다고 합니다. 1959년도 시카고 7월 평균 온도가 74.8도 였는데 2019년도 시카고 7월 평균 온도는 77.1도 였다고 합니다. 이렇듯 계속되는 지구 온난화는 우리가 모르는 사이 많은 문제들을 야기시키고 있습니다.
나이제리아에서는 더워지는 날씨 때문에 모기들이 더 극성을 부리게 되어서 말라리아 같은 병들이 심해져 큰 위협이 되고 있다고 합니다. 네팔 지역에서는 겨울에 쌓였던 눈이 녹아서 강물을 채워줘야 봄에 농사를 할 수 있는데 온난화로 빙하가 줄어 들면서 봄에 녹을 얼음이 모자라 농사를 짓는데 어려움을 겪는다고 하고요. 모든 것이 이렇게 저렇게 다 연결되어 있는 세상에 온도가 조금 올라간다는 것이 그저 조금 더 더워져서 불편하구나 하는 것 이상으로 이런 저런 문제들을 줄줄이 야기 시키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미국에서는 더위로 인해 사망하는 연장자 수가 허리케인이나 홍수 등 다른 자연재해로 사망하는 연장자 수를 훨씬 웃돈다고 하는데, 어느새 더위가 가장 치명적인 자연재해가 되어 버렸을 정도로 지구 온난화 문제는 심각해 지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 사태도 사실 자연을 헤치면서까지 채우려 했던 인간의 욕심으로 인해 인간 사회와 동물 세상의 경계가 많이 무너지면서 발생하게 된 문제라는 것을 생각할 때에 환경보호는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심각한 이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먹고 사는 일, 돈 벌고 안정된 삶을 위해서 부지런히 살아 온 우리들에게 지구 온난화나 환경보호 같은 이슈들이 생소하고 부담이 되는 일일 수도 있지만, 더 이상 “날씨가 더워지면 에어컨 틀면 되지” 하는 좁은 생각의 틀로는 살아 갈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는 것이 이번 코로나 사태로 증명이 되면서, 작더라도 개인 개인이 부담해야 할 몫을 온전히 감당해 감으로 함께 “살아 남을 수” 있는 세상이 만들어 진다는 것을 새삼 생각하게 됩니다.
그렇게 자연을 보호하며 함께 공생하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은 많이 있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작은 일들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플라스틱 물품 사용을 자제하는 것, 일회용 스트로폼 컵 대신 텀블러 컵을 사용하는 것, 정원과 텃밭을 가꾸는 것, 전기와 물, 종이를 아껴 쓰는 것, 재활용과 분리수거 하는 것 등등 ... 작은 노력들이 합하여 선한 일을 이뤄간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결국 편한 것에 익숙해져 있던 삶의 모습들을 조금씩 바꿔 나가는 노력이 필요한데... 그런데 그렇게 삶에 익숙했던 모습들을 바꿔 나가는 일에 우리는 이번 코로나 사태를 통해서 많이 “익숙”해 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저도 전에는 사택에서 교회를 오가는 파킹장에서 갑자기 맞부딪힌 교인 앞에서 마스크 없이 이야기 나누느라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뒷걸음치며, 당황하고 어색해 했던 때가 많았는데, 이제는 어디든지 주머니에 마스크를 가지고 다니는데 익숙해져 가고 있습니다. 차에는 늘 마스크와 손세정제가 비치되어 있고요. 밖에 나갔다가 들어와서는 거의 자동적으로 손을 씻게 되었구요. 월요일에 교회에 있는 화초들 물 주는 일도 이제는 잊지 않고 잘 하고 있습니다.
어려운 일이 우리를 바뀌게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코로나로 인해서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보내는 이 때가 또한 우리가 더욱 성숙한 모습으로 바뀌고 성장해 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닌가 합니다. 저도 요즈음 “교인이 모일 수 없는 이때에 참된 교회란 무엇인가?”, “모든 것이 어려워지는 이 때에 좋은 신앙인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라는 질문 등을 던져 보면서 바뀌고 변화되어야 할 교회와 나 자신의 모습에 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바라기는 이 모든 것이 끝난 뒤 욥기의 말씀과 같이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23:10)는 고백이 있었으면 하는데 ... 그리 될 수 있겠죠? 아멘!
--2020년 8월 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