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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언 스탁야드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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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로 돼지를 옮겨오는 모습

 

 

< 교수>

우리는 지난 칼럼에서, 연방정부 (북군)가 남북전쟁 수행에 필요한 물자 조달을 시카고에 집중하면서  시카고에 제조업이 급성장하는 계기가 되었으므로 남북전쟁 (1861.4.12-1865.4.9.)이 시카고에는 대박 그 자체였다는 것을 알았다. 혹시라도 일리노이 출신 링컨 (Abraham Lincoln) 대통령의 편파적 특혜였다고 생각할 분들에게는 “NO! 절대 아니다!”로 답한다. 남북전쟁이 시작될 즈음 시카고는 이미 북군의 물품 조달에 필요한 모든 인프라를 갖추고 있었고, 더하여 지리적으로도 남군이 침투할 수 없는 위치에 소재했다. “지리적인 이점과 신의 한 수’ 1848이었으니 시카고는 유례없는 신의 더블 축복을 받은 것 일 터!

 

시카고를 중서부 최대 교역센터로 만든 일등 공신은 뭐니뭐니 해도 곡물 (grain)과 가축  (livestock) 거래였다. ‘시카고역사이야기 <10>”에서 남북전쟁 시기의 곡물 (특히 밀) 생산에 대해 알아보았기에, 오늘은 남북전쟁으로 인한 가축 산업의 성장에 대해 살펴본다. 시카고에서의 가축 거래는 가축 자체를 사고 파는 것이 아니고, 가축을 도살하여 분배하는 “meatpacking”을 지칭한다. 시카고의 스탁야드 (stockyard)’는 실제로는 가축 도살장이었던 것이다. 여하튼, 남북전쟁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어 설립된 후 전 세계의 명소였던 유니언 스탁야드 (Union Stockyard)를 통해, 시카고에서 남북전쟁= 덩굴 째 굴러 온 호박의 사례였음을 살펴본다.  

 

우선, 시카고 최초의 가축 도살장은 언제, 누가, 왜 세웠을까?  기록에 의하면, 시카고 최초의 도살장은 디어본 성채 (Fort Dearborn) 주둔 병력의 육류 공급을 위해 시카고 초기 정착자의 하나였던 후바드 (Gurdon Hubbard)가 세웠다고 한다.  디어본 성채는, 시카고 강 입구 남쪽 둔덕 미시간 호수 변의 미시간 에배뉴와 웨커 드라이브 지역에, 1803 - 1812, 그리고 1816 - 1839년까지 소재하였는데, Hubbard Stockyard가 언제 세워 졌는지, 어떤 규모였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다가, 1848년에 Bull’s Head Stockyard를 시작으로 여러 도살장이 세워져 급증하는 시카고 주민의 육류 공급을 담당하였다.  그러나, 1850년 대 말까지도 시카고의 모든 스탁야드들은 소규모였고, 굳이 “meat industry”라 부르기는 역부족이었는데, 남북전쟁 때에 북군의 고기 공급을 시카고가 전담하면서 ‘meat industry’가 형성된 것이다.  전쟁터는 먼 미 남동부 지역인데, 왜 시카고에게 북군의 육류공급을 맡겼을까?  그것은 물론 1850년대에 완전히 자리잡은 철도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남북전쟁동안 가축들은 기차로 시카고에 실려와서, 도살되고, 손질된 육류가 되어 기차로 곳곳으로 실려 나갔던 것이었다.

 

육류 수요는 1859-1862년 사이에 600 %가 늘어났고, 1862년이 되면 시카고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돼지고기를 생산한 도시, “Porkopolis“가 된다. 1863년 한 해에 시카고에서 도살된 돼지를 가슴을 맞대어 한 줄로 쭉 세워놓으면 뉴욕 시에 닿는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였다. 육류 수요는 기하급수로 급증하는데, 스탁야드가 이곳 저곳에 흩어져 있어 가축을 옮겨오는 것이나 육류 공급이나 아주 많은 불편을 겪게 된다. 그 타개책 강구를 위해 시카고 돈육업자협회 (Chicago Pork Packers’ Association) 9개의 철도 회사의  공동 주관 컨퍼런스가 1864년에 열린다. 결론은? 남북전쟁에서 주어진 미국 육류산업 주도권을 시카고가 계속 유지하려면, 이곳 저곳에 분산되어 비효율적으로 운영되는 여러 스탁야드를 한 곳으로 통합해서 economies of scale을 통한 효율성 증가가 절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통합 맴머드 스탁야드의 명칭은 유니언 스탁야드”. 이는 시카고 다운타운에서 4마일 떨어진 시카고 강 남부지류 서쪽320에이커의 대지 (39가와 47가 사이의 할스테드 서쪽)1865년의 크리스마스에 문을 열었다.  유니언 스탁야드 안에는 신속한 가축과 육류 운송을 위해 자체 철도선이 설치되었고, assembly-line 방식으로 가축 도살과 분류를 하였으며, 2천개가 넘는 임시외양간 (pen), 10마일의 사료공급과 3마일 수도 공급 튜브가 마련되었다. 일단 가동이 시작되면 속도가 붙기 마련인지, 1868년이 되면, 유니언 스탁야드는 21,000마리의 소, 75,000마리의 돼지와 22,000마리의 양을 동시에 수용하고 처리할 수 있게 되었고, 하루에 사용된 사료가 100톤에 달하였다고 한다.  가히 천문학적인 규모이다. 이렇게 엄청난 수의 가축 처리 시설뿐만 아니라, 처리된 육류를 전국적으로 분배하는 사무실 규모도 엄청났고, 비즈니스맨들과 방문자들의 편의를 위해 스탁야드 안에 Swift회사가 260개 방을 갖춘 호화 호텔을 마련한다.  한 마디로, 유니언 스탁야드는 상상을 초월하는 큰 규모로 가축 도살최대 이윤 추구라는 비지니스 개념을 접목시켜 경제 효율성이 껑충 치솟은 사례이다.  

 

자연스레 유니언 스탁야드는 전 미국, 아니 세계적인 시카고의 최대 관광명소가 된다. 1893년 컬럼비안 박람회 방문자들에게 유니언 스탁야드는 반드시 들러야 할 필수 코스가 되었고, 독일의 철권재상 비스마크 (Otto von Bismarck)시카고의 유니언 스탁야드를 보기 위해 미국을 꼭 방문하고 싶다고 했다. 반면에, 이렇게 큰 규모의 도살장에서 나오는 엄청난 양의 가축 폐기물을 30마일의 하수구를 통해 시카고 강에 그대로 방류, 시카고 강 남부지류의 오염이 극심하였고, 북동풍이 부는 날에는 시카고 강에서 나는 악취를 다운타운에서도 감지하였다고 한다.  또한, 유니언 스탁야드 주변에는 여러 이민그룹들의 주거지가 자리 잡았으며 시카고의 대표적 슬럼으로 인식되기도 하였다.

 

유니언 스탁야드의 물량 공세에 소규모로 쇠퇴한 미 동부의 로칼 meatpacker들이 시카고 고기에 대한 부정적 캠페인을 여러 번 펼쳤다. 그리고, 그 대응책으로1870년대에 Swift회사가 냉동 철도를 개발해서  운영하였고 미국 내에서 최초로 육류 검사제도가 시카고에서 시작되었다.  1890년대에 Upton Sinclair가 발표한 유니언 스탁야드에서 일하는 이민자를 주인공으로 한 The Jungle (정글)이라는 소설은 아직도 미국의 고등학교들에서 교재로 쓰이고 있다. 유니언 스탁야드는 오픈한 지 106년만인19711220일에 영원히 문을 닫아 지금은 41가에 작은 규모의 유니언 스탁야드 기념 파크가 있다. 이은택 목사 (최초의 한인교회인 제일연합감리교회 담임목사) 등 많은 한인들을 포함한 수많은 이민자들의 애환이 서린 유니언 스탁야드. 예전의 영광을 볼 수는 없어도 역사를 알면 아직도 가 볼만한 곳이다.

 

유니언 스탁야드를 만들게 한 시카고의 Porkopolis의 명성을 1893년 컬럼비안 박람회 유치전에서 뉴요커 들이 시카고=진주 목걸이를 한 돼지로 비아냥했는데, 다음 번 칼럼은 그 유명한 ”1871년 시카고 대화재를 먼저 살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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