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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수>

 

지도에 시카고라고 도시 이름을 올린 지34, 중서부의 최대 도시로 성장을 시작한 지 23년이 되던 1871년에 시카고의 중심지를 몽땅 소멸시킨 대화재가 드디어 1010일 새벽, 화재 발생 30여 시간만에 진화되었다.  전 미국과 유럽이어찌 이럴 수가?” 망연자실하여, 구호품과 구호금을 보냈다. 시카고의 리더들은 화재 직후에 무엇을 가장 먼저 하였을까?  

 

시청 건물이 전소되어 제일장로교회 (64)에 임시 시청을 차린 메이슨 (Roswell B. Mason) 시장과 시의회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그나마 남아 있던 비지니스를 보호하는 일이었다. 메이슨시장은 팔머 (John M. Palmer) 일리노이 주지사와는 일언반구 상의 없이, 그 당시 미주리 연방군 지휘관 세리단 장군(Gen. Philip Sheridan)과 함께 화재 진화 이틀(2) 후에 계엄비상령 (martial law)을 선포하였다. 목적은, 물론, 연방 소속 군인들로 하여금 주요 사업체를 지켜 약탈을 방지하는 것이었다. ‘비지니스가 최우선인 시카고의 민낯을 보여준 일이지만 주지사도 모르게 한다고? 1848년 이후 지속된 일리노이 주 정부와 시카고 시 정부의 기()싸움을 감안하면 놀랄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너무 한 것 아냐? 그래서인지, 얼마 후에 이 계엄령은 취소되지만 세리단의 연방 군대들은 축소된 숫자로 시카고에 남아 비즈니스 철통 경호를 했다.

 

당장 의식주를 해결할 수 없는 이재민을 돕는 일은? 시카고 이외의 다른 시, , 연방 정부와 개인들이 보내고 있는 구호품과 구호금은 어떻게 분배하지? 의견이 분분했다. 우선, 시카고시는 구호금품의 분배를  전담할 Relief and Aid Society (RAS)를 조직한다. RAS가 심혈을 기울인 이슈는 누가 얼마나 큰 피해를 보았고 구호를 받을 가치가 있는가’, ‘desirable poor’-- 후에 ‘deserving poor’로 용어가 바뀐다--였다.  이때부터 현재까지도 사용되는 개념이 ‘scientific charity’이다. 참고로, 과학적 구호 (scientific charity)’에는 주먹구구식의 단기적 퍼주기 구호가 아닌, 과학적 판단에 의거한 구호만이 사회 미래에 기여를 할 것이라는 신념이 깔려 있다. 이재민 구호도 그 당시 대세였던 ‘social engineering’의 한 축이 된 것이다.   

대화재에 가장 큰 피해를 본 그룹은 당연히 집이고 일할 곳, 모든 것을 잃어버린 극빈자들이다. 부유한 이들은 친지들의 도움 등 비빌 언덕이 있지만, 극빈자들은 당장 급식소에 줄 서서 기다려 끼니를 뗴워야 했고 저녁마다 잠잘 곳을 찾아 다녀야 했는데 Relief and Aid Society에서는 이들은 ‘undesirable poor’로 여겨서 별 도움을 주지 않았다. 그렇다고, 시카고의 모든 ‘Have’들이 ‘Have-not’들을 그렇게 보았다는 것은 아니고, 시카고시 정부의 공식기관인 Relief and Aid Society (RAS) 가 이런 개념을 바탕으로 구호 활동을 하였다는 말이다.  United Hebrew Relief Association이나 Chicago Y.M.C.A. 같은 비정부 구호단체들이 이러한 RAS의 정책에 많은 반발을 하였다.

 

대화재가 진화된 것이 10 10일이니 가장 시급한 문제의 다른 하나는, ‘다가오는 혹독한 시카고의 겨울을 어찌 대처할까 였다.  시청에서는 목재 회사 (lumber co.)에서 기증한 목재를 나누어 주며 화재 진화 일주일 안에 5,000개의 가건물--임시 숙소로 쓸 수 있는--을 짓게 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세워지는 가건물을 보는 부자들의 시각 – “훌륭한 건물()이 있던 자리에 허름한 엉터리 집이라니…. 시카고가 어찌 될까?” --도 극심했던 그 당시 빈부의 격차를 말해 주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큰 재해가 일어나면, “왜 이런 일이? 하늘은 왜 이 엄청난 재해를 주셨나?”라며 설왕설래하기 마련이다. 대화재에 대한 시카고 밖에서의 반응도 두 가지였다. 첫째는 시카고가 겪은 참상은 우리가 다 겪을 수 있는 것이니 시카고를 도와야 한다. 유럽과 미국 각 지역에서 답지한 많은 구호금이 이러한 견해의 결과이다. 동시에, 이 도움의 손길들은 그 당시 시카고의 규제되지 않은 시장자본주의 체재의 기득권자들 자본가, 사업가, 산업가--이 자신들의 이권을 보호하기 위해서 시카고 재건설에 자금을 풀 수밖에 없었다고 보는 삐딱한 시선도 있었다. 두번째 시각은 시카고 대화재는 시카고가 범한 여러가지 죄악 (?)에 대한 보응이라고 보는 것이다. 예를 들면, 첫째, 어바나 (일리노이)Sons of Temperance지는 대화재는 시카고시가 일요일에 saloons을 문닫지 않은 것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다; 인디아나의 한 신문에서는 시카고 대화재는 (남북전쟁 중에) 셔먼 장군의 아틀란타 전소에 대한 책임을 묻는 하나님의 공의의 표현이다;  뉴올리언스의 신문은 시카고의 영광은 이젠 과거의 일이고, 시카고의 미래는 없다”; 세인트루이스 지도자들 그룹, “공적으로는 시카고에 구호금을 보내는 것이 옳지만, 사적으로는 시카고 대화재는 죄악이 만연한 소돔과 고모라 (시카고)에 내린 하늘의 불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하늘의 경고를 경청해야 한다.”

 

시카고 밖에서는 어찌 보든, 시카고에게 재건설은 반드시 해야만 하는 명제 그 자체이었다.  18711011일의 시카고트리뷴 사설에서는 “CHEER UP 세계 역사에 유래 없는 큰 참사로, 지난 30년간의 성장이 재 (ashes)가 되어 버린 것을 보면서, 아름답던 도시 시카고 주민들은 결단한다 시카고는 반드시 복구될 것이다” (Chicago Shall Rise Again). 워낙 규모가 큰 참사였고, 사회의 모든 계층이 직접 피해를 보았기에, 시카고 주민들의 재건설 의지는 강하였다. 전소된 지역에 첫 번째로 부동산 사무실을 내면서 Kerfoot‘all gone but wife, children and energy’라고 한 것이나, William Bross가 화재 직후부터 뉴욕시에서, ‘Go to Chicago now! Young men, hurry there! Old men send your sons! Women send your husbands! You will never again have such a chance to make money! Chicago will be rebuilt in 5 years, and will have one million by 1900’ 라고 하며 시카고 재건설을 도운 일은 널리 알려져 있는 일.

 

대화재 후의 재건설에는 2단계가 있다: 첫 번째는 1871-1873. 그리고 7년의 공백기를 걸친 후에 1880년에 시작된 두번째 단계. 오늘은 첫 번째 단계만 살핀다.

 

첫번째 단계의 시카고 재건설은 한마디로 잃어버린 것의 빠른 회복이다. 어떻게 복구할 것인가? ‘시카고를 더욱 높게, 더욱 아름답게, 더욱 웅장하게, 더욱 (화재에서) 안전하게!’  그리하여, 화재 진압 일주일 안에 200개의 영구 건물의 건축 허가와 함께 한층 강화된 건물 fire code가 시의회를 통과한다. 새로운 건축 기술과 자재로 --소금과 mortar24시간동안 계속 섞어 벽돌을 만드는 일-- 건축 붐이 일어난 것은 당연지사였다. 1872년 초에 시카고 다운타운을 묘사한 글, “동서남북 사방에서 하루 24시간 일주일 내내 들려오는 소리는 망치 소리 등 공사 소음 뿐이 떠오른다. 이 일의 주동 역할은 Potter Palmer, Marshall Field, George Pullman“New money”들이 담당하였다.

 

187112월에 출판된 대화재 복구의 공식 청사진, Elias Colbert & Everett Chamberlin, Chicago and the Great Conflagration에는 시카고 대화재는 시카고에 너무 많은 판자집촌이 있었기 때문이니 다운 타운에서 판자집은 No More!”라는 법적 규제 강화가 있다. 대화재에 가장 피해를 크게 입은 이들이 다운타운의 소위 brick area 밖에서 housing을 찾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한마디로 밀려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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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재 후 1872년 시카고 다운타운 (La Salle St. & Madison)의 재건설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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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재 후 1872년 시카고 다운타운 (La Salle St. & State St.)의 재건설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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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 후 가장 먼저 세워진 가건물, Kerfoot 부동산 변호사 사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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