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역사이야기 <18>: 1893년 컬럼비안 박람회 (2)

by skyvoice posted Dec 17,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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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3년 박람회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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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트로 박람회에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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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람회의 얼굴인 "Court of Hon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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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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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rris Whe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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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eral Electric 건물의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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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웨이의 전시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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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이 보낸 컬럼버스의 1492년 선박 모형

 

 

 

< 교수>

 

1893년의 컬럼비안 박람회는 51일 개막하자 곧장 미국, 아니 전 세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클래식한 건물 외형과 그 당시로는 최신인 전기를 맘껏 이용한 야경, 최신 발명품들이 실생활에 주는 유익을 전시한 건물 내부가 전통 (역사)과 변화 (미래)’의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고, 움직이는 램프(walkway)와 안내 로봇(robot)과 함께 미시간호수를 배경으로 펼쳐진 박람회는 와우!” 입을 다물지 못할 만큼 환상적 장관이었다. 컬럼비안 박람회는 시카고와는 완전히 별개인 독립 도시로 운영되었는데, 스캔들과 매관 사례 한 건도 없이 600에이커 박람회장 내의 상하수도와 전기 시설은 물론, 거리 청소, 쓰레기 처리, 치안, 소방, 교통, 언론 등 제반 사회기반 시설 (social infrastructure)을 완벽하게 갖춘 하나의 이상적인 도시였다. 당연히 입소문을 타고, 그 당시 유럽과 미국인들에게 집을 저당해서라도 꼭 가봐야 할 곳으로 자리매김했다.  1031일 폐막일까지 6개월 간 박람회를 거쳐간 타지의 인파가 2750 만명이다.  19세기 역사상 최다인 파리 박람회 관람객 숫자가 2800만명, 그 당시 미국 인구가 6400만명인 것을 참작하면 대단한 숫자이다.  미드웨이 플레이선스 길 좌우에는 미국 각 주와 한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의 전시관이 자리잡았고, 박람회 기간 내내 학술세미나, 퍼레이드, 컨벤션과 정상회담과 박람회의 공식 인가를 받은 온갖 쇼와 콘서트가 줄을 이었다. 한 마디로, ‘볼거리, 들을거리 천국이었다.   

 

오늘은 타지에서 온 관람객이 되어 보자. 들뜬 기분으로, 기차나 선박으로 시카고에 도착. 박람회 장소  안에는 숙소가 없으니까, 어디에서 머문다? 시카고에 친지가 있으면 염치 불구하고 친지의 집으로, 아니면 다운타운의 호텔, 그것도 안 되면 박람회 주위 켄우드 (Kenwood) 지역에 우후죽순처럼 세워진 여인숙 (boarding house)에 여장을 푼다. 다음날 아침 일찍 다운타운-박람회장직통 전차나 보트를 이용하여, 박람회 중앙의 ‘The Court of Honor’에 도착한다. 이 빌딩은 연방 국회 건물의 모습을 닮았고, 큰 분수와 함께 서 있는 조각 “Republic”은 자유의 여신상과 흡사해서, 이곳에 들어서면 미국인의 자부심이 절로 생겨난다. “Travelator”로 불린 moving walkway를 타고 로봇의 안내를 받으며 관람한다 해도200동의 건물들을 한 나절에 돌아볼 수는 없는 노릇이니, 미드웨이 길 시작 지점에 설치된 훼리스휠 (Ferris Wheel)을 타 볼까? 80미터의 높이에 각 60명까지 태울 수 있는 36개의 car가 돌아가는 모습이 멀리서나 가까이에서나 괴물 같다. 저런 쇠덩어리가 80미터나 공중으로 붕 뜬다고? 위험천만? 어찌어찌 용기를 내어 높은 하늘에서 호수와 시카고를 내려다 보았다. “아휴, 어지럽고, 피곤해!”  200여 명의 친절한 경찰의 도움도 받고 최신 필터가 있는 수도꼭지에서 건강한 물도 마시며, 마련된 쉼터 섬 (Island of Rest)에서 쉬었다 가야지.

 

이렇게 며칠에 걸쳐 박람회를 돌아다니면, 누구나 쉽게 긴장의 끈이 해이해지고 낙서와 범죄가 전혀 없는 박람회와 시카고 다운타운을 구별하지 못해 다운타운의 술집에 들어갔다가 범죄에 휘말려 살해, 또는 패가망신한 사람들도 생긴다. 오죽하면, 발 빠른 상술로 개발된, 컬럼비안 박람회와 풀만타운과 유니온 스탁야드를 같이 묶은 사설 관광 상품에 다운타운 술집을 경계하라는 문구를 넣었을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박람회 자체에는 개발된 상품들의 강매 선전이 전혀 없어 편안하게 즐길 수 있게 하였으며, 박람회장의 쓰레기들을 태워서 그 재를 도로 포장이나 비료로 내보내는 등, 새로운 발명과 발견이 실생활에서 어떻게 활용되어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가를, 그리고 온갖 문화 행사에 국적과 인종과 계층에 상관없이 참석하게 하여 이상적인 사회 공동체의 가능성을 보여준 쾌거였다. 재정적으로도 완전히  성공한 흑자 행사였는데호사다마일까? 폐막 3일전에 열린 공식 폐막식 후 귀가한 해리슨 (Carter Harrison) 시카고 시장이 자신의 집 현관에서 저격 당해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여, 1031일에 그의 장례식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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