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역사 이야기 <20>: 1893년 컬럼비안 박람회 뒷풀이 (2)

by skyvoice posted Jan 2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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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심장개복수술 집도의, Dr. Willia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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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즈와 Murder Cas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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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만 파업을 진압하는 연방 군대

 

 

 

< 교수>

 

189351일부터 6개월 동안 시카고 다운타운에서 7마일 남쪽, 미시간 호수변의 잭슨 팍을 중심으로 그 주위의 600 에이커에서 펼쳐졌던 컬럼비안 박람회 (The White City: 박람회)는 전 세계에서 선풍적인  인기 몰이를 하며 시카고의 위상을 드높였지만, 장기적인 경제 효과는 별로,’ ‘미미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시카고역사 #19에서 살폈듯이 산업화와 도시화, 그리고 대대적인 이민으로 ‘Gilded Age (황금빛 계급 형성시대)’가 무르익었던 1890년대의 미국에 꼭 필요했던 박람회였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왜냐하면, 스캔들-free 운영을 통해서도 경제적 이윤을 창출할 수 있다는 것과 새로운 발명품들이 여유로운 일상 생활을 가능케 한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경제, 문화 격차가 큰 아주 다양한 그룹들이 모여 살아도 사회가 붕괴되지 않고 하나의 공동체로 유지되고 발전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1880-1910년대는 미국이나 시카고에게 엄청난 격랑의 시기였다. 정치, 경제, 사회, 여러 방면에서 남북전쟁 (1861-65)보다도 더 미국이 하나의 민주사회로 유지될 수 있을지 위기감이 팽배했다. 특히 시카고에서는 규제없는 자본주의가 주도한 급속한 마켓 산업화와 도시화, 그리고 대대적인 새로운 이민의 유입을 겪으며 어떤 이슈이던지 미국 태생=상류층” vs. “이민자=하류층의 대결로 포장되어 노사 (자본가-노동자) 충돌이 다른 어느 곳 보다도 극심했다. 미 사회주의 정당이 시카고에서 출범된 것도 당연하다 싶을 정도이다. 또한 박람회를 통해 시카고의 만연한 퇴폐 산업과 로칼 정치 부패가 각광을 받아 박람회가 끝난 후에는 (진보) 개혁운동이 힘을 얻었다. 미국 역사에서 이 ‘Gilded Age (황금빛 계급 형성시대)’를 잇는 시기를 진취적 개혁시대 (the Progressive Era)라고 부르는데, 대체로1890년대 후반부터 1차세계대전 까지를 아우른다. 앞으로 몇 차례 시카고에서의 개혁 운동을 다룰 예정인데, 오늘은 컬럼비안 박람회를 전후해서 시카고에서 일어난 3가지 일을 살피며 박람회 뒷풀이 이야기를 한 차례 더 하려한다.

 

미국 최초의 성공적 심장 개복 수술 (open-heart surgery)이 시카고가 박람회에만 올인하던 시기에  박람회장 옆에서 있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189379일에 프로비덴트 병원 (Provident Hospital) 에서는 항생제 (antibiotics), 엑스레이 (X-rays), 현대적 마취 (anesthesia)가 없어 심장 수술위험 천만했고, “절대No!” 였던 그 당시의 의료계 통념을 병원장 “Dr. Dan” (Dr. Daniel Hale Williams)이 박살내는 쾌거가 있었다. Dr. Williams 1912년에 창립된 미 외과의사협회 (American College of Surgeons) 의 유일한 흑인 창립 멤버이고 프로비덴트 병원은 Dr. Williams의 주도로 시카고에서 최초로  흑백 통합 (interracial) 병원으로 1891년에 오픈한 의료 시설이었다. 수술을 받았던 환자였던  흑인 청년,  James Cornish51일 후에 완치되어 퇴원했다. Dr. Dan의 이 용감한 시술은 20세기의 문턱에서 과학적인 의료 (scientific medicine)”의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1922년에는 인큐베이터 (incubator)를 최초로 사용했고, 1937년에 세계 최초의 혈액 은행 (Blood Bank)을 창설했으며, 1989년에는  시카고 대학에서 살아있는 기증자의 간 이식수술 성공 등등으로 이어지면서 시카고는 최첨단 의료 시술의 메카라는 물꼬를 튼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2003년에 출판되어 꽤 오랜 기간 베스트 셀러였던 에릭 라슨 (Erik Larson)“The Devil in the White City”를 읽어 보셨나요? 이 역사 픽션의 부제, “Murder, Magic and Madness at the Fair That Changed America (미국을 바꾼 박람회의 살인, 매직, 광기)”가 말하듯 이 책은 박람회 기간동안 박람회장에서 3마일 서쪽 611 W. 63rd St에서 있었던 “the Murder Castle”에서 있었던 연쇄 살인 사건이 그 주제이다. “살인 도성 (Murder Castle)”은 홈즈 (Dr. Henry Howard Holmes)가 운영했던 만국 박람회 호텔 (the World’s Fair Hotel)’의 별명인데, 그는 박람회 기간동안 주로 타지 여성 관람객을 숙소를 제공한다며 이곳으로 유인하여 살해하고 장기들은 암시장에 팔고 시신은 건물 내에 있는 비밀 화장터에서 소각시켰다. 얼마나 박람회에만 정신이 쏠렸는지, 이 홈즈의 엽기적인 희대 연쇄살인 행각을 그가 다른 지역에서 보험 사기 살인 사건으로 체포되기까지 시카고에서는 깜깜 무소식이었다. 홈즈 (H.H. Holmes)는 원래 뉴햄프셔에서 독실한 감리교 신자였던 부모에게서 태어난 Herman Webster Mudgett로서 1884년에 미시간 대학교  의과 대학을 졸업했고, 1886년에 홈즈로 개명하여, 시카고로 이주하고, 결혼 사기, 보험 사기 등 희대의 온갖 사기와 살인 행각을 시작했다. 그는1894년에 센트루이스 (St. Louise, MO)로 이주하면서 시카고의 Murder Castle 같은 호텔을 만들겠다고 투자자 모집 행각에서 벌어졌던 한 건의 보험 사기 살인 사건으로 그해 7월에 체포되어 18957일에 교수형으로 생을 마감한다. 홈즈가 박람회 기간동안 자신의 호텔에서 살해한 사람의 숫자는 아무도 모른다. 홈즈는 처형될 때까지 27명을 살해했다고 자백했는데, 가스 챔버까지 갖춘 그의 호텔에서의 현장 검증 보고서는 피해자가 200명은 족히 될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의 살해 동기 또한 아무도 단정하지 못해, 홈즈는 미국 범죄사에서 싸이코패스 (psychopath) 연쇄 살인자 1호가 되었다. 홈즈가  처형되지 않았다는 식을 줄 모르는 루머로 인해 2017년 그의 시신을 발굴하여 그의 처형 사망 확인을 하기도 했다.

  

시카고역사#15에서 언급되었던 미국 최초의 company town, 풀만 타운 (Pullman Town)을 기억하시나요? Pullman Sleeping Car Company의 소유주이고 CEO였던 풀만 (George Pullman) 1880년에 시카고 시 경계 9마일 남쪽 4,000에이커 땅에 일터와 주거를 한 곳에 모은 모델 산업 도시였던 풀만 타운을 세웠다. 임금 (wage)뿐 아니라 집 렌트 (rent)나 유틸리티 등 공과금 등 모든 것을 회사가 결정하였던 풀만 타운은 전원 같은 주거 환경을 제공한 모델 케이스가 되기도 했는데, 1893년에 미 전국에 불어 닥친 경제  불황때문에 풀만 sleeping car의 주문이 급감소하자 렌트와 유틸리티는 줄이지 않고 임금을 30% 삭감했다. 깊어지는 불황에 해고도 이어졌다. “우린 어찌 살라고?” 풀만에게 항의도 하고, 읍소도 해보았지만 요지부동. 역부족이라 여겨 그 당시 미국 철도 일반 근로자 노동조합인 American Railway Union (ARU) 에게 SOS를 보낸다. ARU의 면담 요청도 묵살하니 견디다 못해 풀만 철도 회사의 4,000명 노동자들이 1894511일에 파업을 시작했다. ARU는 풀만 레일 카를 운행하는 다른 지역의 조합원들에게 이 풀만 파업에 동참할 것을 결의하고, 결국은 디트로이트 서쪽의 27개 주에서 250,000명이 간헐적이나 격렬한 파업을 단행한다. (*사족으로, 그 당시 철로 근로자 노동조합에는 ARU 외에도 Railroad BrotherhoodsAmerican Federation of Labor (AFL)이 있었는 데, ARU 외에 다른 유니온의 파업 동참은 없었다. 참고로, 현 미국의 노동조합들을 총괄하는 조직 AFL-CIO (Congress of Industrial Organizations)1955년 발족되었다.)

  

풀만 회사 근로자 4,000, 27개 타주 근로자 250,000명의 파업에도 풀만은 여전히 협상 전면 거부를 고집하는 가운데, 7월 초 클리블랜드 (Stephen Grover Cleveland) 대통령은 당시 일리노이 주지사, John Peter Altgeld의 반대를 무시하고 12,000명의 연방 군대를 투입하여 진압을 시작해1894720일에 드디어 풀만 파업은 종식된다. 511일부터 720일까지 근로자 30명이 사망했고, 57명이 부상 당하고, 당시 추정치 $80 million (2019년 가치로는 $1.2 billion)의 재산 손실이 있었다. 조지 풀만은 1897년에 사망하였고, 곧 이어 일리노이 대법원에 의해 풀만 타운은 시카고에서 하나의 neighborhood로 편입되었다. 군대의 무력 진압이 계속되는 중에 클리블랜드 대통령은 9월 첫째 월요일을 노동절로 정하여  연방 휴일로 공포하였고, ARU President Eugene V. Debs은 재판에 회부되어 형기를 마치고 출옥한 후 Social Democracy of America를 세워 그를 기반으로 미국 사회주의 정당 (Socialist Party of America)을 시카고에서 창당하여 1900년부터 5번에 걸쳐 대통령에 출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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