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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란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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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준 목사 / 살렘교회>

 

오래 전에 한강 대교에서 어느 아버지가 자신의 어린 자녀를 강물에 던져 살해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자신을 붙잡고 살려 달라는 어린 아들을 매정하게 강물에 던져 죽게 시민의 신고로 경찰에 잡힌 그는 생활고가 너무 힘들어서 아이들과 같이 죽으려 했다고 자백했답니다. 그런데 자신도 강물에 몸을 던져 죽지 않은 이유는 자신이 기독교인으로서 자살은 용서 받지 못하는 죄라고 믿기 때문이라고 했다는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물론 아버지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었지만, 그보다도 내가 구원받는 일이 자식을 죽이는 일보다 중요하다는 자기 중심적 구원론을 가르친 교회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지난 주에 아틀란타에서 22살난 백인 청년이 자신에게 성적 유혹을 제공해서 죄를 짓게 한다고 군데의 마사지 팔러를 돌면서 6명의 아시안 여성을 포함한 8명을 총으로 죽이는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범인은 침례교 목회자의 아들로 교회를 열심히 섬겨온 기독교인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런 그가 “자신의 거룩함”을 지키기 위해서 미국 사회에서 가장 연약한 계층인 소수민족 여성들을 죽였다는 것은 사회적 강자인 “백인 남성의 구원”을 위해서는 아시아계 여성과 같은 약자들은 희생되어도 상관 없다는 자기 중심적 구원론에 의거한 행동이라는 생각을 다시금 마음 아프게 보게 됩니다.

 

예수님 때도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자신들의 거룩함과 구원을 위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열심을 냈지만, 그러는 가운데 부모도 챙기지 않고 ( 15:4~6), 죽어가는 사람도 모른 하고 ( 10:31~32), 이웃의 아픔을 자신들이 키우는 양보다도 못하게 여겼던 ( 12:9~14) 당시의 종교계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런 종교인들에 비해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목숨을 살리는 일을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여기셨습니다. 그렇기에 간음하다 끌려 여인의 목숨을 살려 주셨고 (8), 믿음을 고백하지도 않았던 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려 주셨고 (7), 사람들이 죽은 사람 취급하던 세리를 제자 삼으셨고 (9), 유대인들이 상종도 하던 이방인의 종까지 고쳐 주셨고 (8), 아무 댓가 없이 5천명을 배부르게 먹여 주신 것을 (14, 6, 9, 6) 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믿음은 자신을 구원하는 것뿐 아니라 자신을 버려 또한 남을 구원하는 믿음인데 ( 16:25, 8:35, 9:24, 12:25), 우리는 자신만을 위한 극히 개인주의적 믿음에 열심을 다하고 있지는 않나 하는 고백을 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나의 믿음을 위해서는 다른 사람은 목매달아 죽여도 되고, 불에 태워도 되고, 총과 폭탄으로 죽여도 된다는 극단주의자들의 테러가 난무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나의 안녕을 위해서는 남에게 침을 뱉고, 손가락질 해서 쫓아 내고, 욕을 하고, 비하해도 괜찮은 것으로 착각하며 십자가를 버젓이 목에 건채,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런 짓거리를 거리낌없이 행하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반면, 그렇게 몰상식 하지는 않더라도, 우리는 또한 내가 살아야 한다는 약자의 개인주의 속에 내게 피해가 오지 않는 침묵하며 강자에 붙어 살아 남으려는 비겁한 개인주의적 신앙을 답습하며 살고 있지는 않는지요! 영원히 살기 위해서는 죽음을 무릅쓰는 믿음과 용기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땅에 잠시 살아남기 위해서 스스로 영혼의 죽음을 자처하는 신앙생활을 오고 있지는 않는지 사순절에 깊이 고민하게 됩니다.

 

이번 사순절에 함께 묵상하고 있는 이사야서에 계속해서 나오고 있는 말씀 하나가 “하나님 나라의 공의와 정의”입니다. 진정 우리의 소중한 자매들이 무참하게 살해되는 “불의”가 행해지고 있는 동안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자문해 보면서 예수님께서 택하시고, 가르쳐 주신 생명의 길을 함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길이 쉽지는 않겠지만, 예수님이 함께 하시는 길이기에, 그리고 우리가 함께 가는 진리의 길이기에 신명나는 길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걸음으로 오늘 (21, 주일) 저녁 7시에 있는 이민자 보호 교회 네크워크에서 주최하는 “아틀란타 총격 희생자를 위한 추모 기도회”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함께 불의를 규탄하고, 피해자들과 애통해 하며, 공의와 정의를 향한 마음을 모을 때에 예수 믿는 자들이 가야할 길이 더욱 명확하게 보여질 믿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때에 예수님 한번 제대로 믿어 보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아멘!

 

--2021 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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