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고 어려울 때

by skyvoice posted Dec 28,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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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영 목사 (하늘소리 문화원장)

 

이른 새벽 시끄러운 자명종 소리에

깼다면 그건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이고....

 

10대 자녀가 공부를 좀 못한다해도 그건 아이가

거리에서 방황하지 않고 집에 잘 있다는 것이고,

 

지불해야 할 세금이 있다면 그건

나에게 가진 것이 있다는 것이고....

 

파티를 하고 나서 치워야 할게 너무 많다면

그건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는 것이고...

 

깍아야할 잔디, 닦아야 할 유리창, 고쳐야 할

하수구가 있다면 그건 내게 집이 있다는 것이고,

 

주차장 맨끝 먼 곳에 겨우 자리가 하나 있다면

그건 내가 걷는 운동도 하고 차도 있다는 것이고,

 

난방비가 너무 많이 나왔다면 그건

내가 따뜻하게 살고 있다는 것이고,

 

세탁하고 다림질해야 할 일이 산더미라면

그건 나에게 입을 옷이 많다는 것이고,

 

이메일이 너무 많이 쏟아진다면 그건 나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것이지요.

 

마음 속에 나도 모르게 일궈진 불펑, 불만들

바꾸어 생각해 보면 감사한 일이라는 것을....

 

-좋은글 중에서-

 

굿모닝~!!!!!
어제는 오전 10시 장례식에 운구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이메일을 받고

이건 마땅히 내가 해야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즉각 답장을 보내고 참석했습니다.

사실은 정오에 송년파티 초대가 있어서 운구만 하고 벗어날 예정이었지만 하관식을 하는

묘지에 가서도 운구해야 한다는 것을 미처 생각치 못했습니다.

하관식까지 모두 끝내고 나니 정오였습니다.

참석한 조문객들을 식사자리에 초대한다는 광고도 있었지만 지인들과  함께 교제를

나누는 것도 좋은 일이라 생각되어 함께 어울렸습니다.

이렇듯 우리 인생은 내 계획대로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내 뜻대로 되어지지 않는다고 나쁘게 흘러가는 것도 아닙니다.

 

고인은 육이오 때, 건국 헌법 제정위원이었던 남편이 납북된 후  홀로 네 자녀를 전부 박사로

키우고 당신은 서울에 있는 대학 교수로 정년 퇴임한 자랑스런 어머니였습니다.

향년 아흔 여덟, 이화여전을 졸업하신 후 평생을 후학들을 가르치며 사회봉사도 많이 하셨습니다.

운구를 한 여섯 분은 공교롭게도 전부 목사님이었습니다.

이렇게 마지막까지 복된 분이 있습니까?

심은 것을 거두는 것이 인생인데 뵌 적은 없지만 어떻게 사셨다는 것이 그려집니다.

심고 거두는 인생, 감사를 심고, 베품을 심고, 웃는 얼굴을 심을까요?......

이경환 권사님 고이 잠드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