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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시카고 플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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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날과 클린턴 길에 있는 시카고 유니언 스테이션 (Union St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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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건 애비뉴 (Michigan A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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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지역의 하이웨이 시스템

 

 

                                                                                         

<김 신 교수>

 

시카고는19세기 후반 내내, “시간이 돈(Time is money)” 하며 시장 자본주의에 등 떠밀려 단기적 경제 효율성 극대화에만 몰빵했고 주먹구구식 (ad-hoc) 지리적 확장으로 일관했다. “도시 계획? 시간이 없어! 시간이하며. 그리하여 시카고는, 물 불 가리지 않고 자신의 경제 이익만을 추구하는 졸부로 가득 찬 도시로서 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문화 (culture)와 사회적 배려가 없는 야만의 도시라는 평판을 받았다. 찰스 디킨스의 소설, ‘두 도시 이야기’ (Charles Dickens, A Tale of Two Cities)를 읽는 느낌인데, 새로운 세기 (Century) 20 세기가 시작된 1900, 시카고의 리더들은 산만한 시카고를 재정비하고, 도시 계획과 도시 미화를 시작해야 할 시점 아닌가 한 듯하다. 그 결과가 ’1909 시카고 플랜’ (1909 Plan of Chicago- aka Burnham Plan)이다. 그래서 오늘은, 미국 최초의 도시 지역 계획 (city regional planning)이고 20세기동안 줄곧 시카고 urban planning의 청사진 (blueprint)이었던 ‘1909시카고 플랜(통칭,번함 플랜)’을 살펴보겠다.

 

흔히 번함 플랜’ (Burnham Plan)이라 불리는 ‘1909년 시카고 플랜190974일에 시카고 커머셜 클럽 (Commercial Club of Chicago) 이 발표하였다. 시의회 (City Council)가 아니라, 비즈니스 리더들의 사조직인 커머셜 클럽이 발표했다면 갸우뚱하겠지만, 상업도시로 계획되고 개발된 시카고는 초창기  (1837)부터 비즈니스 유지들 (기름종이들)의 모임이 Shadow Council로 불릴 정도로 실질적 파워를 행사하였다. 1909년 당시의 커머셜 클럽에도, 풀만(George Pullman), 필드(Marshall Field), 맥코믹 (Cyrus McCormick), 아머(George Armour), 에이브리 (Sewell Avery), 로젠왈드(Julius Rosenwald) 등 시카고 비지니스 리더(Who’s Who)가 멤버였다. 시카고 커머셜 클럽의 막후 파워는 많이 약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지금도 여전하다. , … “역시 (사람보다 비지니스가 우선인) 시카고!”

 

공식적으로는, ‘번함 플랜은 번함 (Daniel Burnham)배넷 (Edward Bennett)의 공저이지만, 실질적인 리더는 단연코 번함이다. 1893년 컬럼비안박람회를 성공적으로 기획, 운영하였던 건축가 다니엘 번함을  기억하시나요? 번함은 컬럼비안 박람회 이전에 이미 최첨단 건축기술을 개발, 사용하여 고객이 원하는 효율성 (efficiency)과 미적 감각 (aesthetic)을 잘 조화시킨 건축의 시카고 학파를 시작한 명망 높은 건축가 중 하나였다.  컬럼비안 박람회를 통해 도시 미화의 선구자로 인식되었던 번함은 박람회 폐막 이후 워싱톤 디씨 (Washington, DC), 샌프란시스코, 클리블랜드 (오하이오)와 필리핀 마닐라 시의 도시계획과 미화 작업 주도를 끝내고1907년 시카고로 돌아온 직후 커머셜 클럽에게서 산만한 시카고 모습에 질서와 안정감을 부여해 줄 장기적 계획, 청사진을 만들어 줄 것을 요청받는다. 실제로, 이 프로젝트는 번함의 시카고 귀환 직전인 1906년에 시작되었는데, 번함에게 전권을 위임하며 리더가 되어 달라 했던 것이다.     

 

번함은 기존의 프로젝트 팀을 그대로 유지하며 배넷 (Edward Bennett)을 공저자로 내세운 것도 그 일환이었고, 아주 멀리 보는 광대한 플랜을 만들자고 독려한다. 그가 한 말, “현실 가능성을 고려한 작은 스케일의 플랜은 역설적으로 실현되지 못하니 작은 플랜이 아닌, 상상력을 총동원한 스케일이 큰 원대한 플랜을 만들어 후손들에게 꿈을 꾸게 하자. 꿈을 꾸게 하는 플랜이어야 장기적으로는 현실화될 것이다.” (Make no little plans; they have no magic to stir men’s blood and probably will themselves not be realized. Make big plans; aim high in hope and work, remembering that a noble, logical diagram once recorded will not die)은 지금도 자주 인용되고 있다. 

 

또 한가지: 번함은 도시는 혼자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시카고 시 하나만 고려하는 기획은 장기적인 원대한 플랜이 절대로 되지 못한다고 믿었다. 그리하여 그는, 시카고 다운타운에서 75마일 반경-- 북쪽으로는 케노샤 (위스콘신), 남쪽으로는 미시간씨티 (인디아나), 서쪽으로는, 드칼브 (DeKalb, IL), 동쪽은 미시간 호수-- 전 지역을 아우르는 광대한플랜을 마련하였다. ‘번함 플랜을 미국 최초의 지역 개발 계획 (regional planning)이라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언급한대로,1909 7 4일에 발표된 시카고 플랜164페이지에 걸쳐 시카고 다운타운, 산업 지역, 미시간 호수 변의 레익프론트, 공공 건물의 지역적 배정, 쉼터 공원과 주민들의 주거, 휴식, 문화 공간을 부채살로 퍼져 나간 넓은 기간 도로망과 함께 마련하고, 그리고 시카고 다운타운에서 75마일 반경의 지역으로 뻗어 나가는 하이웨이 건설 계획을 수채화로 아름답게 그려져 있다. 어찌나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었던지, 애초에 도시 계획을 반대했던 이들도 토를 달지 못하고 “Wow!”를 연발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번함 플랜으로 시카고는 평원 위의 파리 (Paris on the Prairie)’라는 새로운 닉네임을 얻기도 했다.

 

원래 시카고 다운타운의 동쪽 끝은 현재의 미시간 애비뉴 (Michigan Avenue)이었고, 미시간 호수와 미시간 애비뉴 사이에 질펀한 습지가 있었다. 그런데, 이 플랜에서 번함은 이 질펀한 습지에 레익쇼어 드라이브와 20마일 길이의 공원을 만들어 시민들에게 쉼터를 개방할 것을 아주 강력히 주장하였는데, 이를 위해서 미시간 애비뉴와 호수 사이에 있었던 철도 라인을 옮기는 것을 포함시켰다. 물론, 현재의 그랜트팍 (Grant Park)이 완성되기까지는 몽고메리 워드 (Montgomery Ward)의 공헌이 크지만--이에 대해서는 다음 칼럼에서 부연 설명하겠다시카고 플랜이 기폭제를 마련해 주었던 것이다. 또한, 19세기 말에 시작된Cook County Forest Preserves 시스템의 든든한 구원 투수가 되었다.  시카고 플랜은 개인 자동차가 별로 없었던 시기에, 번함은 시카고 다운타운에서 부채 모양으로 퍼져 나가는 하이웨이를 계획하고, 워커 드라이브 (Wacker Drive)를 현재의 이중 도로 (double decked)로 만들 것을 주장하는 등 멀리 내다보는 안목을 과시했다. 워낙 거창하였던 이 플랜의 모든 것이 곧바로 시행될 수는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유니온 스테이션 (Union Station), 네이비 피어 (Navy Pier), 그랜트팍 (Grant Park) 등 번함 플랜의 많은 부분이 현실화되었다.   

 

번함은 1912년에 세상을 떠나 자신의 플랜이 실행되는 것을 보지는 못했지만, 도시 계획이라는 분야를 개척하고 시카고 주민들에게 아름다운 호수변 공원을 선물하여 시카고의 레익 프론트를 유명하게 만들었고,  오고 오는 모든 세대들에게 원대한 꿈을 꾸게 해준 다니엘 번함의 공헌은 참으로 지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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