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봉주 편집장>
여름이 가기 전 어디라도 가야 겠다 마음 먹었습니다.
아칸사에 왔으니 그래도 첫번째로 갈 곳은 성막이 있고 예수님의 행적들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그린 “The Great Passion Play”를 보러 가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여름의 마지막 자락의 휴일, 노동절 (Labor Day) 연휴 때에 1박 2일의 일정을 잡아 아칸사의 북서쪽, 오쟈크 산맥이 있는 유레카 스프링스 (Eureka Springs)로 떠났습니다. 자동차로 3시간 반쯤 운전하여 가는 길에, 유난히 모터싸이클족들이 눈에 많이 띕니다. 이곳은 모터싸이클족들의 메카라고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이곳에 모인 이들이 많고, 이들의 무슨 행사라도 있나 싶기도 합니다.
사전 검색에 의하면 성막 설교 (In-depth Tabernacle teaching)가 오후 4시반에 있다고 해서 주일 예배를 마치고 출발하였으나 막상 이곳에 오니 이는 노아의 방주, 골리앗 상, 그리고 성막과 함께 둘러보는 “성지순례 (The Holy Land Tour)”에 포함된 두 시간 코스의 버스 여행길이었습니다. 4시 반 시간에 맞춰 도착했는데 막차가 막 3시 45분에 떠났다고 하니, 어려운 길에 헛탕을 치고 만 우리는 아쉽지만 성막을 보려 다음 기회를 기약하며 이번에는 예수님의 일대기를 그린 연극, “The Passion Play”를 보는 것으로 족해야 했습니다.
연극은 밤 8시반부터 시작하는데,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마치 브라질에 세워져 있는 예수상과도 같이, 오쟈크산에 서계신 예수상 (Christ of the Ozarks)을 보러 갔습니다. 7층 높이 건물 크기만한 거대한 이 예수상은 오쟈크산 꼭대기에 세워져 서쪽을 향해 두 팔을 편 모습이 마치 하얀 십자가처럼, 산 아랫 도시, 유레카스프링스를 예수님의 사랑으로 품고 있습니다. 예수상을 중심으로 둘러 걸을 수 있는 여러 갈래의 트레일 길들도 성경 지명들에 따라 이름 붙여져 있는데 등산화라도 갖고 왔었다면, 그리고 시간이 좀 더 여유가 있었다면 한번 둘러보고 싶었습니다.
이곳에는 세 곳의 박물관도 있습니다: The Bible Museum, The Sacred Museum, 그리고 The Biblical History Museum. 이중 성경 역사 박물관을 가보았는데, 각국의 성경책과 함께 역사적인 오래 된 성경들이 진열되어 있습니다. 마르틴 루터가 번역한 성경과 그림책과도 같은 소박한 모양의 위클리프의 “가난한 사람들의 성경 (Bible of the “Poor”)” 등이 제 눈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리고 각국의 성경책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이들 중 한국의 성경책을 찾을 수 없어 의아했습니다. 몇 번을 다시 처음부터 끝까지 훑어보며 찾아 보던 중, 한 섹션의 진열관에 따로 보관되어 있는 낯 익은 한글로 된 성경책과 두툼한 성경 필사본이 “나 여기 있어”하고 손짓을 합니다. 알고 보니, 이 곳에 어떤 한인이 성경의 구약과 신약을 필사한 것을 기증하여 그것을 따로 진열관을 만들어 한국어 성경책을 진열해 놓은 것입니다. 3년이 넘은 기간동안 필사한 것이 마치 전화번호부 책만한 두께가 되었고, 그의 필체도 아주 가지런하니 곱습니다. 이 곳에 기증한 귀한 그분의 마음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이곳에 함께 마련되어 있는 저녁 부페 식당에서 보통의 미국식으로 저녁 식사를 마치니, 연극을 보려 차들이 주차 광장에 모여들기 시작하고, 이내 주차장을 꽉 메웠습니다. 하늘도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합니다. 연극장은 야외 무대로 4000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다 합니다. 연극 무대는 산자락을 이용한 자연 무대인데 3층으로 만들어져 각각의 연극 장면들을 연출하며 연극 배우들이 자리 잡고 연극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과 우물이 있는 마을, 장터도 있고 최후의 만찬이 열렸던 다락방, 헤롯의 궁전, 빌라도의 궁전과 위로는 겟세마네 동산과 골고다 언덕 등이 있어, 이 무대에서 250여명의 연극 배우들의 연기로 펼쳐질 입체적이고 스펙터클한 라이브 연극을 연극이 시작되기 전에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연극은 밝은 조명이 켜지고 마을 언덕에서 내려오는 떠들썩한 염소 떼들과 그를 쫓아오는 소년과 함께 시작합니다. 예수님은 지혜롭게 사람들을 가르치시고 필요한 사람들에게 여러 이적들을 행하시며 사람들은 사랑과 은혜 받음에 감사하는 평화로운 세상이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시기하는 사람들의 음모가 시작되고 드디어 유다에게 들어간 사탄과 함께 평화로왔던 세상은 긴장이 고조되고 어두워지기 시작합니다. 우리 머리 위의 하늘도 더 어두워져 있었고 그 어둔 하늘에도 구멍이 뻥뻥 뚫린 듯이 별들의 전쟁이 시작됩니다. 제자들의 발을 하나씩 하나씩 씻기시며 최후의 만찬을 드시고, 겟세마네 동산으로 올라가 기도를 마친 후 체포되고 빌라도와 산헤드린을 오가며 재판을 받으신 후, 골고다 언덕에서 돌아가십니다.
약속대로 삼일 후 부활하시고 40일간 이 땅에 계시다가 하늘로 오르시고, 우리에게 성령을 주십니다. 두 시간의 연극이 하나도 지루할 새 없이 무대 곳곳을 움직이며 조명과 뻥뻥 터지는 화약음과 같은 음향들로 눈과 귀를 사로 잡습니다. 성막을 못 본 것이 못내 서운했지만, 오랜만에 본 연극의 감격을 안고 산을 내려와 첫날을 마쳤습니다.
둘째날에는 집에 돌아가기 전 여러 곳을 분주히 다니기로 하고 부지런히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묵었던 호텔의 브런치 식당은 이 동네에서 꽤 유명한 듯 벌써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고 –아직 코로나 시대이긴 하니, 우리는 마스크를 쓰고 손 세정제를 사용하는 등 코로나 방역 규칙들을 엄수했습니다—음식도 맛있었습니다. 첫번째로 간 곳은 쏜크라운 채플 (Thorncrown Chapel). 사면이 온통 유리로 지어진 유리 건물, 그 이름처럼 뾰족 뽀죡하게 철골제로 가시관의 모양을 만들어 기하학적이고 현대적인 미로 숲 속에 지어진 아름다운 예배당입니다. 실제로 이 예배당에서는 일년 내내 주일에 예배를 드리며, 그 아름다운 건축미로 결혼식 등이 열린다고 합니다. 예배당 문을 열고 들어가니 대형 교회는 결코 아니지만 은은히 들려오는 천상의 음악과 함께 마치 천국의 문을 열고 들어온게 아닌가 잠시 환상에 빠졌드랬습니다.
이어 우리는 500피트의 땅 속 깊이에서 매일 3800만 갤론의 파란 물이 샘솟는다는 블루 스프링 (Blue Spring)과, 사람들의 해수욕장 겸 낚시터가 되고 캠프 야영지가 된다는 비버 댐 (Beaver Dam)—다음에 여기 올 때는 이 곳에서 야영을 하며 낚시도 하고 카약을 해볼까 생각했음--을 둘러본 후 다시 유레카 스프링스로 돌아가 이 곳의 역사적인 다운타운을 돌아보고 점심 식사를 하기로 합니다. 산 아래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고풍스럽고 아기자기하게 색색의 옛 건물들이 산세를 타고 이어져 이 작은 도시 전체를 굽이 굽이 잇고 있었습니다. “유레카 스프링스”라는 이름처럼 길 아래에는 곳곳이 지하수가 흐른다는데 실제로 직접 확인해 보지는 못했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챠밍한 도시 중 하나라는 아칸사의 유레카 스프링스, 이 도시의 시그니쳐 코너에 자리잡은 호텔 건물 안에 들어가 정말 “유레카!” 소리가 절로 나오는 허클베리 파이를 먹으니 마치 천국에 온 듯.
어제 본 오쟈크산 꼭대기에서 예수님이 이 도시를 껴안 듯 바라보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