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언 변호사>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를 강타한 한국 드라마, “오징어 게임”으로 화제만발한 지난 한 달입니다. 대단한 대한민국입니다. 이제 우리 조국은 경제, 사회, 문화, 국방, 거의 모든 분야에서 실제로 선진국의 자리에 오른 것으로 느껴집니다.
잔인하지만 흥미로운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등장 인물 중에서 이민 변호사인 제게 남달리 다가오는 이가 있습니다. 알리 압둘이라는 파키스탄 출신 외국인 노동자는 한국에 나와 일하는 공장에서 임금을 체불당합니다. 한국인 사장과의 다툼 끝에 사고를 치고 도망가다 오징어 게임에 참여하게 됩니다. 극 중에서 한미녀라는 참가자가 궁지에 몰리자 알리에게 퍼붓는 대사 가운데 미국에 사는 우리 귀에 낯설지 않은 말이 나옵니다. “너 비자 있어? 불법체류자지?”
미국에서 트럼프 후반에 터진 코로나로 수많은 멕시칸 위주 중남미계 이민자들이 미국을 떠났습니다. 이들이 복귀하지 않는 3D 업종의 현장에 지금 인력난은 심각한 수준에 있습니다. 그들이 받았던 연봉에는 이제 일할 사람을 구할 수가 없습니다. 구인난은 결국 물가 상승으로 연결됩니다. 장 보는 엄마들은 계산대 앞에서 매주 깜짝 놀라기 일쑤입니다.
공화당은 의회에서 이민법 개혁안을 두고 불법 체류를 한 사람들을 사면해 주는 것은 법을 어긴 사람들에게 페널티 없이 이익을 주는 것으로서 법치주의에 반하는 것이며 미국민의 일자리를 빼앗아 가는 것으로 국익에 반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사실이 아닙니다. 백인들과 이미 자리 잡은 이민자들이 하지 않는 수많은 불편한 일을 신규 이민자와 불법체류자들이 저임금에 감당해 주지 않으면 이미 미국은 돌아가지 않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습니다. 과거 40년간 딱 두 번 있었던 불체자 사면은 레이건과 부시 대통령, 즉 공화당 정부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현실을 인정하고 오히려 어둠에 있던 비정상을 수면 위로 올려 미국민의 이익을 추구했던 일입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지금 안양과 시흥의 공단에서 손에 검은 기름을 묻히고 산업 재해의 위험을 무릅쓰며 한국 산업의 아랫 부분을 지탱해 줄 인력을 한국인으로만 채울 수 있을까요. 시골에 장가가지 못하는 노총각을 위해 아내를 베트남에서 수입해 오는 현실을 뻔히 알면서 외국인이 우리 한국의 순수성과 국익에 반한다고 말하는 언론과 정치인은 진실을 말하고 있는 것인가요.
세계가 다 비슷해졌습니다. 이민 제도는 결코 어느 한 쪽이 희생하는 시스템이 아니라 서로 이익을 얻는 현시대의 공존의 한 방식입니다.
알리 압둘이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실패한 엘리트 증권맨에 의해 속임을 당해 극 중에서 “탈락” 하는 에피소드는, 냉정한 현실을 상징하는 모습이면서 제게는 이 슬픈 대박 드라마에서 가장 가슴 아픈 장면으로 기억됩니다. 누구든 언젠가는 탈락하겠지만 꼭 그렇게여야 하다니요.
바이든 대통령과 연방의회 민주당이 3.5 조 달러의 인프라 법안에 포함시켜서 통과시키려던 드리머를 포함한 대사면 이민 법안은 10월 초 연방 상원 법제처장의 차디찬 법리적 판단으로 인해 좌초되었습니다. 수정안도 재차 거절되었습니다. 제3의 방안을 고민 중인데 어떤 길이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러다가 이민법 개혁을 인프라 법안에 넣는 것은 포기하고 나중에 별도로 시도하겠구나 체념도 듭니다.
단풍은 이런 현실을 알 리 없이 나날이 짙어지며 2021년 가을을 우리에게 선물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