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준 목사 / 살렘교회>
이번에 창립감사예배를 준비하면서 큰 실수를 하나 저질렀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금년이 창립 36주년인데 지난 한달동안 “창립 37주년” 이라고 내내 광고를 한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초대장에도 창립 37주년이라고 썼고, 신문 광고에도 창립 37주년이라고 인쇄되어 나갔습니다. 다행히 주보를 만들기 위해서 교회 약사를 정리하다가 실수를 발견하게 되어서 주보는 제대로 된 연수로 프린트가 되었습니다.
장로님들께서 신천 장로님들을 위해서 만들어 보내 주신 축하 영상에도 보니 모두 창립 37주년이라고 하셨는데 그 부분만 편집하기가 어려워서 그냥 37주년으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장로님들께도 혼돈을 드려서 송구하기만 합니다.
요즈음 깜빡 깜빡 하는 경우가 자주 있어서 “오늘 할 일”들은 노트에 적고 리스트를 만들어 두번, 세번 체크해 가면서 일을 하는데 엉뚱한 곳에서 일이 터져 버리고 말았네요.
얼마전에 열쇠를 통째로 잃어 버린 적이 있었습니다. 분명히 사무실에 가지고 들어왔는데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없더군요. 그 전에 쓰레기통에 쓰레기를 버린다면서 다른 손에 들고 있던 멀쩡한 물건을 대신 버리고 쓰레기를 주머니에 넣으려 했던 적이 한두 번 있었는데 이번에도 그렇게 열쇠를 쓰레기통에 버린 것은 아닌가 의심하고 있었는데 ... 이번 “37주년” 사건을 겪고 나니 진정 그랬을 거라는 확신(?!) 이 드네요. 아직 60도 안되었는데 (잠깐! 이것도 확실히 체크해 봐야겠습니다 ... 네, 맞네요!) 은근히 걱정이 됩니다.
사실 예전처럼 머리가 빨리 돌아가지 않는다고 느낀 것은 꽤 되었습니다. 생각하는 속도는 약 1.5배 느려진 것 같고요, 신선한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는 것도 50% 이상 줄어든 것 같습니다. 아직 정식으로 은퇴를 하려면 10년이나 남았는데 이렇게 느려진 CPU (컴퓨터의 중앙 정보 처리 장치) 를 가지고 어떻게 버텨낼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그런데 희한한 것이 머리는 느려졌는데 말은 많아졌다는 것입니다. 가끔 후배 목사들을 만나 이야기를 할 때면 할 말을 다 못하고 헤어질 때가 많아졌습니다. 교회 스태프들에게도 잔소리가 전보다 20%는 많아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요즈음 생긴 삶의 목표 중에 하나는 “꼰대라는 말은 듣지 말자” 인데 ... 그런데도 하고 싶은 말은 자꾸 많아지네요.
그러면서 드는 생각이 머리가 도는 속도가 느려진 이유가 혹시 어느새 머리 속에 든 것이 많아서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고보니 30년 목회에 축적된 지식이 적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 할말은 많아지고, 대신 새로운 아이디어가 끼여들 수 있는 머리의 빈 공간은 적어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드네요.
그러고보니 세월이 흘러 어느새 젊었을 때 우습게 생각했던 그 기성세대가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제가 40세에 이 교회에 왔는데, 그때 어린 새댁 같았던 집사님이 지난 번 모임 때 보니 흰 머리가 희끗이 있어 마음 속으로 깜짝 놀랐는데 ... 이번 임직식에는 고등학교때 “까마득한 4년” 후배였던 여학생이 신천장로로 임직하게 됩니다. 40년의 세월이 훌쩍 흘러 어느새 그럴 나이가 되었네요. 그렇게 흘러버린 세월을 돌아보니 그나마 할 말이 있고 들어주는 척이라도 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 오히려 감사하다 생각이 듭니다.
제가 이 교회에 처음 왔을 때 카랑카랑 했던 장로님들의 느려진 걸음걸이가 한 때는 속상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세월의 연륜의 무게가 느껴지는 그 걸음걸이가 존경스럽고 감사하기가 이를 데 없습니다. 지나간 세월이 비록 아쉽지만 결코 헛되게 보낸 것이 아니기에 감사하고, 지금 느려진 몸짓보다 더 부지런히 감당했던 일들이 많았기에 또한 감사하기에 일년이 더해진 연수도 부끄럽기 보다는 37주년을 기대하라는 희망의 사인으로 보여지는 것이 그저 궁색한 변명이 아니라 마음 깊숙한 곳에서 들려오는 (젊어서는 듣지 못했던) 세미한 음성이 아닌가 합니다.
그러고 보니 요즈음은 “쌈빡한” 아이디어 보다는 “깊이 있는” 말한마디가 더 그립던데 그렇게 지나가는 세월이 아쉽기보다는 감사한 “36주년” 가을입니다.
--2021년 10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