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형제에게 보내는 편지 5

by skyvoice posted Oct 26,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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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 목사 / 두란노 침례교회>

 

 

안녕하세요, 형제님.

 

오늘 새벽 공기는 청량 음료 같더군요. 기도회를 마치고 오랜만에 찾아간 산책로엔 가을 냄새가 이미 스며있었습니다. 물론 여름의 몸체에 가려 보일듯 말듯 산책로 구석구석에 숨어 있지만, 가을에 예민한 감각을 피해갈 없습니다. 산책하는 내내 머릿속은 벌써 노랗고 빨갛게 물든 산책로를 그리고 있었고, 가슴은 상상의 풍광 속에서 이미 벅찬 감동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가을이 하루빨리 시카고를 점령해주길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계절이 바뀌는 모습 속에서, 창조 이후 우주 전체를 일관되게 운영하시는 하나님의 변함없는 성품을 봅니다.     

 

형제님, 성경책을 펼치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부분이 창세기입니다. 창세기의 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땅에 손을 대시기 전의 상태를 혼돈과 공허와 흑암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런데 완전하신 하나님께서 창조의 손을 대시자 혼돈의 자리가 질서로 공허의 자리가 충만함으로, 그리고 흑암의 자리가 빛으로 대신 채워집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은 이상 손을 필요가 없는 완전한 모습을 갖추고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형제님, 인간이 죄를 짓고 나자, 완전했던 세상은 일그러지고 말았습니다. 다시 혼돈과 공허와 흑암, 3 단어가 기승을 부리는 세상이 되고 겁니다. 창조를 통해 혼돈과 공허와 흑암이라는 부정적인 단어를 땅에서 몰아내셨던 하나님께서 이번에도 가만히 계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선 인간의 죄로 일그러진 세상을 다시 회복하기 위해 그분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땅에 보내주신 겁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형제님, 성경책 중에서 예수님의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 부분을 복음서라고 합니다. 그중 하나가 요한 복음인데, 복음서를 기록한 사람의 이름이 요한이라서 요한 복음이라고 부릅니다. 요한 복음의 부분은 때문에 일그러진 세상 속에서 혼돈과 공허와 흑암에 눌려 지내는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동시에 일그러진 세상으로부터 인간을 구해내고 계신 주님의 모습도 그리고 있습니다. 형제님, 오늘은 이야기를 함께 나누며 예수님께서 땅에 오신 목적을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요한은 장에서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그런 2장부터 5장까지 불안하기 짝이 없는 인간의 모습과 이들을 건져내주시는 예수님의 이야기로 채워가고 있습니다.    

 

먼저 2장에는 가나라는 지방에서 있었던 혼인 장치 장면이 등장합니다. 유대인들에게 혼인 잔치는 가장 잔치였습니다. 혼인 잔치에 초대될 손님들은 지금처럼 RSVP 미리 약속을 받는 과정을 통해, 잔치 전에 이미 정해집니다. 당시와 같은 작은 공동체에선 누가 누군지 너무나 압니다. 평소 식사량이 어느 정도 되고,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이고, 마시는 포도주의 양은 얼마만큼인지를 미리 알고 있는 겁니다. 그렇게 정확한 데이타를 가지고 준비하니 잔치 중에 음식이 모자라거나 술이 떨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겁니다.

그런데, 형제님, 이게 일입니까?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술이 떨어지고 겁니다. 났습니다. 잔치의 흥겨움이 일순간 수그러들 있는 위기에 직면하고 겁니다. 완전하게 준비했다고 자신했는데, 생각지도 않은 일이 발생하고 겁니다. 형제님, 잔치집 주인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어찌해야 좋을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봐도 답이 나오질 않아서 앞이 깜깜했을 겁니다. 

 

형제님, 어디서 많이 것같은 장면 아닙니까? 바로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있는 장면들입니다.

목표로 삼은 대학에 충분히 합격할 있을 정도로 열심히 공부했고, 모의 시험을 때마다 결과가 좋게 나와서 장담했는데, 시험 전날 갑자기 몰려든 불안과 초조 그리고 긴장이라는 덫에 걸려 밤새 한잠도 못자는 바람에 결국 시험을 망쳐버리는 경우를 주위에서 종종 봅니다.

원하는 명문 대학에 들어가서 4 내내 철저하게 취업을 준비했는데, 갑자기 불어닥친 글로벌 경제 위기 때문에 백수가 되어 집에서 부모님 눈치나 보고 있는 청년들도 주변에서 수두룩하게 있습니다.

직장에서 열심히 일해서 남들보다 좋은 실적을 올려 승진을 바로 앞에 두었는데, 없이 낙하산을 타고 내려온 회사 오너의 자녀 때문에 이를 악물고 참아야 하는 경우도 얼마든지 생길 있는 겁니다.

이민와서 자존심 내려놓고 자식들도 희생해가며 죽어라 일해서 자수성가했는데, 그래서 이제부터는 모아놓은 돈을 풀어서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하며 즐기려고 했는데, 덜컥 병에 걸려 사형선고를 받고 좌절하는 경우도 있을 있는 겁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혜와 힘을 동원해,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항상 불안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슬픈 현실인 겁니다. 형제님, 인간이 이땅에 죄를 초대한 결과입니다. 결국 요한은 포도주가 떨어진 가나의 혼인 잔치를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일그러진 모습을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형제님, 다행히 가나의 혼인 잔치 이야기는 비극으로 끝나질 않습니다. 투덜거리며 자리를 박차고 떠난 손님들, 때문에 뒤숭숭해져 버린 잔치 분위기 앞에서, 괴로워하며 자신의 머카락을 쥐어뜯는 주인의 모습이 크로즈업 되면서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겁니다.

 

오히려 잔치는 흥겨워 집니다. 주인이 새로 내놓은 포두주가 이전 보다 훨씬 맛이 좋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주인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처음엔 좋은 포도주를 내놓고, 사람들이 취하면 그때 질이 떨어지는 포도주를 내놓는 것이 잔치의 상식이거늘, 당신은 어째서 좋은 포도주를 뒤에 내놓는 것이요?” 형제님, 질문에서 흥겨운 기분이 듬뿍 묻어나지 않습니까? 잔치 주인의 마음을 가득 채웠던 위기감, 괴로움, 불안, 실망의 부정적인 기운이 일순간 사라지는 모습을 그려볼 있습니다. 자리를 안도감, 기쁨, 감사가 재빨리 채우는 모습을 상상해볼 있습니다. 이야기가 헤피 엔딩으로 마무리되고 있는 겁니다.           

 

형제님, 비극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이야기가 졸지에 헤피 엔딩으로 끝날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바로 예수님 때문입니다. 잔치 자리에 예수님께서 계셨기 때문에 상황은 반전될 있었던 겁니다. 그분이 능력을 사용하셔서 물을 최상의 포도주로 만들어 주셨기 때문에 잔치가 무사히 끝날 있었던 겁니다.

 

형제님, 예수님께서 땅에 오신 목적은 바로 죄로 일그러진 인간을 원래의 모습으로 회복하기 위해서 입니다. 비극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우리의 삶을 헤피 엔딩으로 만들어주기 위해 오신 겁니다. 우리 영혼에 잔뜩 쌓인 부정적인 것들을 씻어내고 안에 하나님의 영적인 축복들로 채우기 위해 땅에 오신 겁니다.

 

형제님, 이제 예수님을 붙들어야 하는지, 그분과 항상 동행해야 하는지 이유를 분명히 아시겠지요?

 

다음 편지를 통해 다시 교제 때까지 형제님의 중심에 예수님을 모시고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오늘도 주님의 축복으로 가득한 하루되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