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태환 목사 / 시카고 기쁨의 교회>
해마다 할로윈 시즌이 되면 교회마다 일종의 ‘할로윈 대안 행사’를 한다. ‘할렐루야 나잇(Hallelujah Night)’ 혹은 ‘홀리윈 데이(Holy Win Day)’ 등 이름도 다양하다. 귀신 복장이나 흉측한 모습의 분장을 하고 거리를 다니는 할로윈 문화가 이교적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교회는 할로윈 오후에 아이들이 거리로 나가기보다 교회로 모이도록 초청하여 나름의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물론 대부분 커스튬(Costume)을 입고 오지만, 귀신 복장은 없다. 이런 아이디어는 아이들을 ‘세상 문화’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교회 나름의 자구책이다.
이전에 살던 동네 주변에 노인들이 많았다. 주로 자녀 없이 홀로, 혹은 부부만 사는 집들이었다. 이들에게 할로윈은 누군가 자신의 집을 노크하는, 일 년 중 몇 안 되는 날이다. 언젠가 필자의 아이들이 Trick-or-Treat을 하러 갔을 때, 10년 만에 처음 집에 손님이 찾아왔다며 고마워하는 할아버지를 만나기도 했고, 아이들의 방문에 너무 감격하여 흐느껴 우시며 초컬릿을 건네는 할머니를 만나기도 했다. 이렇게 외롭게 사는 노인들이 우리 주변에 많았구나 느끼는 동시에, 할로윈 문화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할로윈은 사생활을 중시하는 미국인들이 공식적으로 외부인들에게 문을 여는 특별한 날이다. 이 날만큼은 낯선 이들이 찾아와 벨을 누르고 문을 두드려도 집 문을 열어 준다. 요즘 같은 시대에 누가 외부인에게 함부로 문을 열어 주겠는가. 심지어 기독교인이라면 더욱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는 요즘이다. 그런데 할로윈은 사람들이 누군가 올 것을 기대하고 아예 준비하고 기다리는 날이다. 또한 내 집에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문을 열고 환대의 인사를 나눌 수 있는 날이기도 하다.
이 흔치 않은 날을 기독교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배척하거나 굳이 교회에서 별도의 프로그램을 만들어 우리끼리만의 행사를 또 가질 필요가 과연 있을까. 오히려 주변의 노인들이나 소외된 분들을 찾아가는 기회로 삼으면 좋지 않겠는가. 적어도 내 집에 찾아오는 이웃을 웃으며 맞이할 기회이지 않은가. 왜 교회는 세상과의 소통 기회를 저버리고 자꾸 스스로 게토화 하는 것일까.
물론 할로윈의 비기독교적 요소는 경계해야 하고 아이들에게도 가르쳐야 한다. 할로윈부터 시작되어 크리스마스 시즌까지 이어지는 미국의 소비 문화도 그 중의 일부다. 창조적이고 새로운 방식의 할로윈 문화를 모색하고 사회와의 소통에 고민해야 한다. 교회는 세상과 담을 쌓으라고 부름 받은 것이 아니라, 세상 속으로 보냄 받은 존재이다. 세상 등 지고 십자가 보는 것도 필요하지만, 십자가 지고 세상을 향해 가는 건 더 중요한 일이다.
오늘날 교회는 세상과 단절된 채 ‘우리만의 천국’을 만들려 한다. 세상 속 교회는 보이지 않고, 교회 속 세상만 보인다. 이교문화가 못 들어오게 교회 문을 닫는다지만, 이미 세상의 질서와 가치관이 교회 안으로 침투해 들어와 똬리를 틀고 있다는 사실은 내남이 다 아는 일이다. 귀신 복장보다 더 위험하고 큰 해악은, 내 이웃이 누군지도 모른 채 살아가는 이 차가운 세상이다. 교회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도 바로 이것이다.
중동에 “손님이 찾아오지 않는 집에는 천사도 찾아오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다고 한다. 성경은 “부지 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다고 말한다(히13:2). 천사는 못 될지라도, 천사를 맞이할 기회를 놓치지는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