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c Chagall. "White Crucifixion" (1938) Oil on Canvas; 155X139.5cm (Art Institute of Chicago, Chicago, IL)
시카고와 샤갈이 무슨 인연이 있는지는 모르나 시카고에 샤갈의 중요한 세 작품이 있습니다. Chicago Art Institute에 소장되어 있는 두 작품, “하얀 책형 (White Crucifixion: 1938년 작)”과 대형 스테인드글라스 벽화, “America Windows (1977년 작)” 와 시카고 다운타운 한가운데 Chase Tower에 위치한 모자이크 벽화, “Four Seasons (1974년 작)”입니다. 시카고에 있는 샤갈의 두 벽화 작품은 샤갈이 즐겨 제작한 스테인드글라스나 타일 모자이크로 종교적인 작품은 아니지만, “색채의 마술사”답게 그의 화려한 색상들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America Windows”는 파란색 위주로 아주 화려한 색상들을 사용하고 있으며, “Four Seasons”는 파스텔 색상을 사용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화려하고 밝은 색상을 만들어 4면으로 각각 4 계절의 모티브를 보여 주고 있으나 샤갈은 어느 면이 어느 계절인지를 지정하지 않고 보는 이들이 상상하도록 했습니다. 저도 이 벽화를 보며 제 나름대로 어느 면이 어느 계절인지를 상상해 보았습니다.
“하얀 책형”은 명암을 달리한 하얀색 위주의 색채를 사용하여 전체적인 배경을 하얀색으로 꾸미고, 곳곳에 액센트 색채로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 초록색 등을 아주 조금만 사용할 뿐입니다. 비교적 샤갈의 초기 작품으로 “책형”을 주제로 그린 첫 작품이기도 하고 이외에 “책형”이란 주제로 그린 다른 그림들, “노란 책형 (Yellow Crucifixion: 1943년 작)”이 있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모습은 이후 샤갈의 다른 성화들에서도 자주 등장합니다. 그는 이전에 그린 “갈보리 (Calvary: 1912년 작)”에서도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을 그렸었는데, 이 작품은 초록색을 많이 사용한 큐비즘 풍의 그림이고, “노란 책형”은 노란색 위주로 “하얀 책형”과 비슷한 풍의 그림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이 “하얀 책형”이 그중 가장 아름다운 그림이라고 생각합니다. 현 교황이신 프란치스코 교황이 가장 좋아하신다는 그림이라고도 하는데 “십자가 처형을 잔혹하지 않고 희망적으로 표현하여 평정심을 가지고 고통을 묘사”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그림 속의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있으나 아주 평온한 얼굴입니다. 예수님 주변의 광경은 온통 혼란의 도가니입니다. 습격 당한 회당과 마을, 내동댕이 쳐진 율법책 보관함, 기도책, 촛대들과 도망치는 사람들, 그리고 그 위에 샤갈이 그의 그림에서 많이 그리고 있는 공중에 둥둥 떠있는 인물을 배치하고 있는데 이 그림에 있는 4명의 사람들은 이 혼란상을 슬퍼하며 기도하는 성경 인물들 (아브라함, 이삭,야곱, 라헬)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위로 비추는 한줄기 밝은 빛은 가장 밝은 흰색깔로 표현해 우리에게 곧 올 새 세상의 희망을 예시한 듯 합니다.
샤갈이 이 그림을 그린 배경은 1938년 11월 8-9일에 일어난 Kristallnacht (깨어진 유리창의 밤=Night of broken glass)를 고발하기 위함이었다고 합니다. 이는 독일 나찌당에 의해 독일 내 유대교 회당, 가정, 학교, 사업체들을 습격, 방화하고 유태인들을 살해하고 강제수용소로 체포한 사건인데 이를 시작으로 유럽에서 대대적으로 유대인 대학살이 자행된 사건입니다. 이 그림에서 샤갈은 흰색을 압도적으로 사용했고 흰색 외의 다른 색들은 절제하였는데 이는 어둡고 절망적인 상황에 대한 슬픈 이야기를 우리에게 해주고 싶었던 겁니다. 뿐만 아니라, 샤갈이 이 그림을 그려 세계에 이 사건을 고발함으로써 이천년동안 만연했던 반유대주의 (Anti-Semitism)를 종식시킨 역할을 한 용감한 예술 활동이었으며 지식인의 행동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날을 기다리는 대강절이 지난주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을 기다리는 요즘, 그때의 혼란한 세상 속에서도, 그리고 십자가 책형의 극한 고통 속에서도 홀로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던 예수님의 모습을 그린 이 작품, “하얀 책형”을 여러분에게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이 대강절에 이 그림을 보면서 이 세상에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감사하며, 찬양하고 묵상하는 이 대강절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말구유에서 태어나셔야 했던, 그런 미천하고 못난 모습으로 오셔서 많은 사람들이 못 알아보고 급기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한소리로 외쳤던 유대인들, 그 죗값으로 이천년 이상동안 박해 받고 "홀로코스트" 대학살이라는 큰 희생을 치뤄야 했던, 진실을 외면한 죄. 우리는 오늘도 과연 진실이 무엇인지를 분변하며, 가장 작은 자로 오셔서 아무도 몰라봤던, 그래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기까지 했던, 같은 잘못을 저질러서는 안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신 성탄절이 다가오는 이 때, 예수님을 기다리는 대강절 동안 우리 주변의 작은 자들을 돌아보고 돌보는 때가 되기를 바랍니다.
“내가 진실로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마태복음 25:40)